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는 소중한 책이 우리지역에서 발간됐다.

여수에서는 '웅천 정씨'로 더 알려져 있는 이들 문중이 800페이지에 달하는 '압해정씨 창원파 월천공문중 5백년사'라는 책을 펴낸 것이다.

우선 이 귀한 책은 우리 지역에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임란 당시의 좌수영민(오관오포 관할지역)의 역할에 대해서 다양한 사료와 해석을 통해 입증한 것이다.

그동안 품어왔던 의문이 풀렸다.

이 책은 임란 당시 '누가, 어떻게 하여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를 이룩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문을 풀어줬다.

그동안 이순신 제독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23전 23승의 전승신화를 달성한 것은 그의 리더십 때문이었다고 배웠다.

물론 이순신의 리더십은 신상필법을 통한 투명한 신뢰관계를 구축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추종하는 영민(營民)들이 많았다. 그렇다하더라도 그의 리더십만으로 전승신화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영웅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이순신 제독의 리더십에 이의를 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순신 제독이 전승신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곁에 있던 핵심 참모는 물론 적군 깊숙이 들어가서 정보를 수집하고 해안의 지대와 조수의 흐름, 바람의 패턴, 지형지물에 대한 자료에 대해 육감적으로 갖고 있었던 수군들의 한 사람 한사람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이순신 제독의 핵심참모는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정운, 정걸과 나대용, 송희립, 동명이인 이순신 등의 이름이 기록되었다. 이들 영웅들의 용맹은 오늘날 해군 잠수함정에 붙여져 계승되고 있다.

하지만 난중일기에 등장한 참모들은 어떤 의미에서 공식적 라인에 등장했기 때문에 이순신 제독의 일기에 등장하게 됐던 것이다.

정작 중요한 참모는 전승신화를 달성할 수 있는 제반의 조건들을 체크하고 움직였던 무명의 장졸들이었다. 이들 장졸들은 좌수영 영민(營民)들이 임금의 명령으로 동원되어 왔던 현지 출신의 수군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남해안의 지대 특성과 조수의 흐름, 바람의 패턴, 지형지물(關防)에 특히 익숙했으며 항해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적의 규모와 이동상황 및 진지정보에서부터 적의 행군을 통한 억측, 가능한 작전까지 민간으로부터 얻은 정보는 적의 동태를 분석하는데 크게 활용했다.

전승신화의 귀중한 밑거름에는 이같이 '살아 있는 정보'가 큰 역할을 했다. 이들 무명 장졸들은 전투가 없을 때에는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둔 전병으로 일하며 식량의 자급자족을 도왔다.

게다가 아버지 또는 자식, 남편을 수군으로 보내 까닭에 영민들은 이순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온갖 정보를 수집하여 보고해준 것이다.

그런데 월천공문중 오백년사에 보면 전라좌수영의 핵심참모의 대부분이 여수출신들이었다.

특히 여수 입향조는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좌랑까지 올랐던 월천(月川 ) 정계생(丁戒生)의 손자 3명과 증손자 6명이 충무공 휘하로 참전했으며 안타깝게도 모두 전장에서 순국을 당하는 등 멸문에 가까운 전화를 입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이들 중에는 충절공 정철(丁哲)과 충의공 정춘(丁春), 충숙공 정린(丁麟), 충정공 정대수(丁大水)들도 월천공 문중에서 태어났다.

좌수영민을 기반으로 한 이순신 제독의 수군은 무엇보다도 일본의 해군력을 능가하는 조건을 갖고 있었다. 일본군은 창검을 잘 다룬다면 조선군은 활에 능숙하게 다뤘다.

특히 판옥선은 조선 수군의 주특기인 궁술과 포격전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전함이었다. 판옥선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막강한 원거리 화력에 있었다.

판옥선은 많은 화포로 무장하고 있으며 화포의 구경도 일본의 화포(30미리)보다 월등히 커서 천자총통의 경우 130미리, 지자총통 100미리, 현자총통(75미리) 황자총통(40미리)에 달했다.

따라서 왜군의 수군과 이순신 제독이 이끄는 근접전투에서는 조선수군의 활약상이 그대로 나타났다. 게다가 거북선을 제조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나대용도 나주 출신이고 백전 노장으로 팔십 노구를 이끌고 이순신 제독에게 자문했던 정걸장군은 고흥이다.

다만 이들 좌수영의 營民들은 자신의 역할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신 임란의 공훈은 엉뚱한 사람들이 챙겼다. 더 이상 이런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기록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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