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23전 23승의 신화를 달성할 수 있었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그의 출중한 리더십과 신출귀몰한 전략전술과 게릴라 활동을 펼쳤던 의병의 분투, 위민정신으로 민과 관이 하나가 되어 싸웠기 때문에 대승을 거뒀다고 봤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순신장군이 전승을 달성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혹시 오래전부터 나름대로 준비를 해온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품고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의 여수 행적을 쫓아다녔다. 그가 일기로 남긴 이충무공 진중일기(임기봉 역, 주해․도서출판 범우, 2007)와 난중일기(정희선 역, 사단법인 여수문화원, 1993년)를 토대로 장군도와 좌수영성, 방답진선소, 돌산둔전, 선생원, 석창석보, 곡화목장 등을 둘러봤다. 본지는 이를 토대로 '이순신 장군, 임진왜란 어떻게 대비 했을까?'라는 주제로 기획시리즈를 마련, 8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 고락산성은 주변에 호랑산성, 수문산성 등 여러 부속성을 거느리고 있었다.
<글 싣는 순서>
1. 잦은 왜구의 침입과 조선의 대비책
2. 장군도와 수중성
3. 진례포와 내례포, 전라좌수영
4. 위민사상과 돌산둔전 방답진 선소
5. 석창석보와 군수물자
6. 수군훈련 어떻게 했나
7. 역참 선생원과 채석장
8. 곡화목장과 군마공급
여수의 전라좌수영 본영에는 산성(山城)이 유독 많았다. 조선시대 읍 단위 행정구역에는 읍성 한 개정도 밖에 없었는데 여수에는 무려 20개가 넘는 산성이 축성되어 있었다.
특히 이들 산성은 역사적으로, 군사적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예컨대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204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락산성은 백제시대의 기와로 추정되는 와편이 대량 수습되었던 탓에 백제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락산 정상(335m)과 동쪽 아래쪽 봉우리(200.9m)에 각각 성을 쌓은 테뫼식 석성인 고락산성은 낮은 봉우리에 본성이 있고 높은 봉우리에 부속성이 있었다. 이 산성은 부속성으로 호랑산성, 검단산성, 자산산성 등이 있다.
또 하나의 산성은 고돌산진성이다. 지금은 흔적이 거의 사라졌지만 화양면 용주리 고내마을의 고돌산진(古突山鎭)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 수군진(水軍鎭) 주변의 산 능선을 둘러쌓아 성곽이 있었다. 고돌산진은 수군전진배치의 정책에 따라 방답진이 설치되면서 폐쇄됐다.
국내 성(城)의 대부분이 산성인데 반해 여수 석창석보(石堡:·돌로 쌓은 성)는 평야지대에 세워진 희귀한 케이스이다.
특히 15세기 중반 조선시대에 널리 활용되었던 산지(山地)나 평산(平山)지역이 아닌 평지(平地)에 축조된 방형(方形)의 성곽시설로서 유일하다. 이 성의 이름은 석창성, 여수석보, 석창석보, 석창성지 등 다양하게 불러지고 있다. 국가사적으로 등록된 이름은 여수석보이다.
그렇다면 여수석보는 언제 세워졌을까?
여수석보는 통일신라 혹은 그 이전에 계획된 도시의 정방형 평지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석보가 존재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40 순천도호부 관방 항목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이 기록에 앞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순천부 읍성과 함께 고속현 (古屬縣: 여수)에 ‘목책도니성(木柵塗泥城)’의 이름이 등장한다.
여수목책도니성은 읍성과 멀리 떨어져 방어에 취약한 바닷가 촌락에다 지역별 실정을 맞추어 목책(木柵)이나 석보 혹은 토축(土築)으로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목책도니성이 여수석보가 있었던 자리에 위치했을까? 그동안 석창성지는 2001년 순천대 전남대 명지대 등 3개 대학이 공동으로, 2007년 남도문화재연구원 등 두 번에 걸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한국성곽학회 2011년 특별학술대회 자료집: 여수석보의 종합적 검토), 여수석보의 자리에서 목책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두 성이 같은 위치에 있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여수목책도니성 또는 여수석보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전문가들은 여수목책도니성이 고려말 조선초에 여수현의 치소(治所:관청)였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여수가 순천부의 속현으로 편입되면서 관청의 역할이 필요없기 때문에 왜적의 급작스런 출현에 대비해 지역주민의 위난 대피시설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소수의 군인과 그 일대 주민들이 유사시에 입보(立保)하여 스스로 무기를 들고 지키면서 영(營)과 진(鎭)의 구원군이 오기를 기다리던, 일종의 주민자위시설로서의 성격이 강한 성보(城堡)였다.
어떻든 작은 규모이지만 군사시설이기 때문에 장수의 지휘아래 상비군을 주둔시켜 외적의 침입을 방비하는 진보(鎭堡) 내지는 방어시설이었다. 그러나 세종 말에서 세조 초에 추진된 일련의 군제정비에 따라 여수석보의 역할에 중대한 변화가 온다.
여수석보의 변천사
세조 3년(1457) 전라도 순찰사가 보고한 기록에 따르면 “순천 돌산포의 경우 동쪽에 내례(진)가 있고 북쪽에 여수(呂水) 석보가 있는데, 바다와 거리가 멀리 떨어져서 방어에도 긴요하지를 않으니 이제 돌산포(고돌산진)를 혁파하고 그 선군은 내례와 여도진(呂島鎭)에 나눠 소속시키도록 하소서”라는 상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여수석보의 기능은 쇠퇴해졌음을 알 수 있다.
성종 10년 전라좌수영 설치와 더불어 중종 17년(1522)에 여수석보를 지키던 군병들이 돌산포로 옮겨가고 여수석보의 군사적 기능은 폐지됐다. 이후 여수석보의 기능은 삼일포, 소라포 등 3곳 마을의 환곡을 거두어 보관하였던 창고로서 기능을 유지하다가 1618년 창고의 기능을 상실되었다. 1729년 다시 창고기능 회복된 후 환곡을 수집 보관했다. 이 시기에는 여수석보 주위에 상당수의 인구가 밀집해 거주했으며 유동인구도 역시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석창에 장시(場市: 시장)가 들어서 물류기능이 추가되었다. 18세기부터 매월 5일과 10일이 개장일이었던 석창의 장시는 19세기말에는 전라좌수영에서 社倉(각 지방의 촌락에 설치한 곡물대여기관)을 두어 운영되다가 1922년엔 보관기능 업무마저 폐지됐다.
<자문위원>
⊙∙임용식 여수시문화원장 ∙
⊙ 김준옥 전남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교수
⊙ 임기봉 좌수영박물관 관장
⊙ 김상우 사)21세기이순신연구회 수석부회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황상석 기자 yeosu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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