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ㆍ특집 기획
화동마을에 목장 관련 유적 수두룩…문화재보호 의식 없어 훼손 남발

   
▲ <사진1> 화양고등학교 입구에는 ‘목관선정비’가 모두 5개가 있는데 3기는 세워진 비이며 나머지 2기는 고인돌위에 기록되어 있다.
 화양고등학교 입구에는 고인돌이 무더기로 있는 등 유서가 깊은 문화유적이 많다.<사진 1>
그중 1기는 3명, 다른 1기는 2명 등 전체 8명의 목관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목관선정비는 감목관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비이다. 도로변에 나란히 세워진 비석 3기 비문은 판독이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어 있다. 이들 비석이 세워진 연도는 확인할 수 없으나 화양초등학교 교정에 남아 있던 비석의 건립연대는 청나라 연호인 함풍(咸豊) 4년으로 기록되어 있어 1838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목관선정비가 훼손이 많이 된 원인에 대해서 감목관의 지방민에 대한 횡포가 심했던 대해 앙심을 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화동마을 이봉주 이장(71세)은 “1970년대 이전에는 감목관비 9기가 잘 보전되어 있었으나 당시 청년회장이 비석을 파손하는 등 소중한 유적이 심하게 훼손됐다”고 털어놓았다.

   
▲ <사진2> 임진왜란 때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된 조선시대의 관정(우물)
감목관사의 터에 화양초등학교가 들어섰다. 특히 임진왜란 때 사용됐던 관정(우물)은 조선시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사진 2> 이봉주 이장은 “예전에 골동품 수집가가 이 관정을 탐을 내 뜯어가려고 했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지켜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관정의 기단 위 부분을 시멘트로 접합해 놓았다. 

 분지 형태의 화동리는 화동천이 동천과 서천으로 나눠져 흐르는 등 수량이 풍부해 목장으로써의 기능을 갖췄다. 돌산 다음으로 큰 마을이었던 화동마을은 현재 쇠락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뭘까? 감목관 휘하의 관노들이 횡포가 심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당초 면사무소가 이곳에 설치하려 했던 것을 반대해 다른 지역으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상석 기자  yeosunews@hanmail.net

<저작권자 © 여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황상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