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성 시각장애인으로서 울트라마라톤(100km 이상의 초 장거리 마라톤)에서 여성 최초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여자와 페이스메이커로 그 옆을 꼬박 지켜내는 남자가 있다. 마라톤 계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로 통하는 김효근(54)․김미순(54) 부부의 이야기다. 그들이 지난 5일 ‘2014년 새해 첫 여수마라톤대회’를 찾았다. <편집자 주>
▲ 김미순․김효근 부부 마라토너
Q. 마라톤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A. 27년 전 딸을 낳은 지 1년 만에 베체트병에 걸렸고 시력을 잃어갔어요. 병원에서는 10년이 지나면 시력을 잃을 거라고 했죠. 병원에서는 치료법이 없으니까 ‘무리하면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어요. 그 때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사를 만났어요.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기뻤죠. 당시 마라톤이 붐이었어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스트레스도 풀리고 적성에도 맞더라고요.
Q. 체력적인 부담이 상당할 텐데요.
A. 정상인보다 2~3배는 힘들어요. 그걸 고스란히 남편이 감당해주고 있지요.
남편에게 기대 뛰다 보면 저도 모르게 심장 쪽으로 몸이 기울어요. 한 쪽으로 계속 무게가 쏠리면서 남편이 경기 도중 부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때는 정말 미안해요. 그래서 이를 악 물고 연습하는 거예요. 요즘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남편과 풀코스를 완주하고 있어요.
Q. 마라톤은 두 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앞으로 몇 년 안에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떨 것 같아요? 그것도 이제 막 예쁜 딸을 낳았는데 말이에요. 정말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요.
마라톤은, 그런 제 삶을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삶을 일으켜 세운 버팀목 같은 존재예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남편과 대화할 수 있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줬지요.
남편도 딸도 제가 풀코스 뛰고 싶다고 하면 거절한 적이 없어요. 모든 일정을 제쳐놓고 제 손을 잡아 주지요. 그렇게 사랑을 받아서인지,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제가 장애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만큼 밝고 유쾌하게 산대요. 정상인 중에서도 그렇지 못한 분들이 많으니 감사할 일이지요.
물론 ‘사서 고생한다’는 말도 들어요. 하지만 매달 전국 대회에 참가하고 정상인도 힘들어 하는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하면서, 사람 몸에는 한계가 없다는 걸 느껴요. 정신력이 강하면 몸도 지배할 수 있지요.
제가 가진 장애에 지고 싶지 않아요. 그 장애를 지배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마라톤대회는 그런 저희 부부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해요.
Q. 오늘 마라톤은 어땠나요?
A. 저희 두 사람 다 4시간35분에 동시 골인했지요. 한 겨울인데 날씨도 포근하고 해안에 맞닿은 주로도 너무 아름다워서 기분 좋게 뛰었어요. 남편이 구간 구간을 지날 때마다 경치를 자세히 묘사해주니까 저도 상상하면서 그 느낌을 간직하려고 해요.(웃음)
사실 전라도 지역에 특별한 연고가 없어서 이런 대회 아니면 여행오기가 쉽지 않은데 여러 모로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끝까지 잘 즐기고 가렵니다.
성지영 기자 isop0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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