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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향순 '동편제 흥보가' 명창"판소리로 창자 속 감정을 부른다"

   
 
서양에 오페라가 있다면 한국에는 판소리가 있다. 오페라에 프리마돈나가 있다면 판소리에는 명창이 있다. 여수시의 자랑인 3인의 무형문화재 중 '동편제 흥보가' 명창인 김향순(60) 선생을 만나 판소리에 대한 소회를 들어봤다.

Q. 판소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 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한 평생 판소리를 하시던 양어머니에게 수양딸로 보내졌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평범한 여자의 일생 대신 선택한 것이기에 양어머니에게 판소리는 삶 그 자체였다. 그리고 본인이 아는 모든 걸 나에게 가르치려고 노력하셨다.
판소리를 잘 하려면 음계를 알아야 한다고 가야금을 가르치셨고 발림(소리에 맞춰 부채를 펼쳤다 접었다 하는 동작)을 적절히 해야 하니 무용도 배우게 하셨다. 긴 호흡을 위해 시조도 가르치셨다. 양어머니가 시켜서 시작했지만 3~4년 지나면서 '아, 음악이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때부터 판소리가 내 삶이 되기 시작했다.

Q. 무형문화재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 보통 한 분야의 기능 보유자로부터 전수를 받고, 전수 장학생으로 5년간 부단한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면 이수자가 되고 그 중 경연을 거쳐 단 한 명의 전수 조교, 즉 준 문화재를 가린다. 이후 기존의 무형문화재가 타계하면 그 뒤를 이어 새로운 무형문화재가 탄생하는 것이다.
나도 흥보가를 전수받아 그 과정을 거쳤고 그간 남도창에서 대통령상을, 민속놀이로 여러 개의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지난 2006년 무형문화재로 등재됐다.
큰 명예인 것은 분명하지만, 무형문화재가 되기 전이나 후로 별반 차이는 없다. 그간 열심히 해 온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받았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Q. 책임감이 클 것 같다.
- 그렇다. '무형'이기 때문에 한 순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 그래서 요즘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이 바로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다.
깨끗한 도화지 같은 어린 제자들도 가르치지만, 이미 흥보가를 전수받은 몇 명의 제자들과도 매년 연창 공연을 하며 새로워진 나의 흥보가를 다시 전수한다. 그 중 누군가는 '동편제 흥보가' 명창으로서 후대에 이 판소리를 들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Q. 최근 통신사 CF에 국악인이 등장하는 등 판소리가 대중화된 것 같다.
- 그렇다. 사실 판소리 가사는 중국어 고사에서 따온 것이 많아 쉽게 알아듣기 어려웠다. 근래 들어 대학교에 국악과가 생기면서 학생들에게 보다 쉽게 전수하기 위해 판소리도 악보화 됐다. 그렇게 양성된 젊은 국악인들이 더 쉽게, 대중 친화적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데는 나도 동감한다. 하지만 국악, 특히 판소리 자체의 고유성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원래 판소리에는 악보가 없다. 그래서 '구전심득(口傳心得)'이라고, 스승과 제자가 마주보며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는 게 유일한 전수 방법이었다. 이후 녹음기나 비디오에 담아 전수하는 방법도 등장했지만 직접 마주보며 전수하는 느낌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하물며 오선지를 통해 판소리 고유의 맛과 멋을 살리는 게 가능하겠는가.

Q. 판소리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 판소리는 창자에서부터 나오는 소리가 목덜미를 지나 온 몸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말 그대로 온 몸을 울려 내는 소리다. 그만큼 내 심경을 가슴으로 토해낼 수 있다.
판소리에서 골격음 앞이나 뒤에 '아~~, 아흐~~'하는 소리를 들어봤을 것이다. 길 때도 짧을 때도 있는데, 이를 '시김새'라고 한다. 이 시김새는 어느 악보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저 매번 소리를 할 때마다 자신만의 느낌으로 그 시김새를 새롭게 완성해갈 뿐이다. 슬플 때는 슬픈 대로, 기쁠 때는 기쁜 대로의 시김새가 존재한다. 이런 부분이 판소리의 매력인 것 같다.

성지영 기자  isop0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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