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윤 수필가

혀 구르는 경상도 아낙네의 정겨운 목소리도 듣고 싶었다. 어쩌다 전화를 할 때면 우체국 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의 메아리, 경상도 익살스러운 말들이 뇌리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삶의 오 분 후 내일일도 모르고 사는 인생, 오직 한번 꼭 보고 싶다. 는 생각밖에 그 이상 무엇도 바람이 없었다.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운 후 오동도 동박새 울음소리와 고요의 바다를 깨우는 뱃고동도 뒤로 한 채 여수 공단 앞을 달리기 시작했다.

희뿌연 연기만 나의 차창을 애절하게 노크했지만 나에겐 별 상관이 없었다. 남해 고속도로를 진입해 매화꽃 흐드러진 섬진강을 지나노라니 푸르른 강물은 바람에 나부끼어 하이얀 물보라를 일으켰고 물결에 물결은 스멀스멀 애무에 빠져 보고픔과 그리움은 더더욱 가슴 속에 소용돌이 쳤다.
 

구마 고속도로를 달리다 금호분기점, 도동 분기점을 지나 북 영천, 포항IC에 진입해 한 참 후 청송 부남에 도착하게 되었다. 제주에서 헤어진 지 3년 후 처음으로 청송 부남 꽃을 만나게 되었다. 청순한 마음씨 해맑은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 주었으며 점심으로 영롱한 달빛에 추억을 심는다는 달기 약수 마을의 달기약수 탕을 먹으러 가시자고 하였지만 약수에 촌닭을 삶아 먹자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내일 근무를 하려면 바쁘다는 생각이 들어 여수까지 내려가 일정이 바빠 간단히 주왕산 밑 산채 비빔밥을 먹게 되었다.

내 앞에 마주한 그녀는 정말 볼수록 아름다웠고 애교 있는 경상도 말씨에 풍기는 지성미가 철철 넘쳐흘러 너무 매혹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걷다보니 꽃 돌이 눈에 들어왔는데, 다른 지방을 다녔을 때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꽃들이 돌에 박혀 있었고, 너무 너무 아름다웠다. 잠시 후 부남 꽃은 단밤을 하나 사와 함께 하나 둘씩 먹는데, 고추가 작아도 맵고 참새가 작아도 알 낳고 제비가 작아도 강남 가는 것처럼, 조그마한 밤이 너무 너무 달고 맛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매표소에 이르렀을 때 안내소 아가씨가 “언니 왔어?”하며 반갑게 맞아 주더니 그냥 들어가란다. 평소 마음씨가 고와서인지 인간관계 잘하며 살아 온 게 여간 기특했다.

우린 주왕산 폭포수 쪽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학소대에 이르니 옛날 주왕산 자락에 청학과 백학이 사랑 속에 단란하고 오붓하게 잘 살았는데 사냥꾼이 백학을 쏴서 죽여 버려 청학은 백학의 그리움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하는데 학소대의 전설을 읽노라니 수달래 꽃들은 상큼한 미소로 예쁘게 지어 반겨주며 제 1,2,3 폭포수의 물은 울타리 안에서 티 없이 맑은 물로 흐르고 있었다. 청송군에서 잘 관리해 온 탓인지 주왕산 큰 바위 밑 산수가 너무 빼어나 극치의 미적감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우리 사람들도 저 물처럼 맑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로나 행동이나 물질적으로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며 애틋한 그리움과 사랑 속에 산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에 젖어 보았다. 이런 생각 속에 잠긴 나, 제주 워크샵때 사례 발표이야기 만찬 석에서의 에피소드, 눈알 튕겨 나올 정도로 환한 웃음으로 박수 해 주었던 순간들을 대화로 엮어가며 서로의 취미, 종교, 가정 이야기 등으로 유쾌하게 보내고 내려오다 주왕산 밑 대전사에 들르게 되었다. 오늘 따라 절의 풍경소리가 은은하고 애처롭다. 우리의 작별을 예견이라도 한 모양이다.

우리는 기념으로 사진 몇 컷을 찍었다. 수줍으면서도 당찬 데가 있었고 얼굴엔 시종 박꽃 보다 환한 웃음이었다.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우체국 앞에서 뜨거운 악수만 남긴 채 작별을 고했는데, 그 때의 서운한 눈빛이 너무 마음 아리고 가슴 진저리 친다. 잠시 후 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차 안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조심해서 가이소. 지금 어디쯤 가십니까?

‘어느 지점에서 길 잘 못 드시면 안동 쪽으로 빠질 수 있으니까 곧 바로 가이소’등 길 안내를 자세하게 해 주었다. 누가 뭐라 해도 심성이 곱고 미모가 빼어나 초록별처럼 예쁘며 보석처럼 빛나며 일 잘하고 글씨도 예쁘게 쓴 그 이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주저리주저리 시가 엮어 질 것 같은 여인네다.

그런 연유에서 그를 소재로 해서 4집 『청송에 핀 부남 꽃』과 『영혼 속에 핀 부남 꽃』을 연속적으로 펴내게 되었는지 모른다. 참으로 만남은 아름답다. 특히 육체적 밀착된 관계가 없이 보고픔과 그리움으로 동경하게 될 때 더 아름답고, 숭고하고, 영혼 속에 꽃으로 피어 영원히 남으리라 생각된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으로 남으리라.

장동윤(63): 시인. 수필가,   전남보성 벌교 출생, 여수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전남문협회원, 공무원문학회 회원, 여수수필문학회 회원.
저서, 바닷속에 피는 꽃이 되어, 아내에게, 청송에 핀 부남꽃, 여수 해상케이블카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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