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급 태풍 ‘페이’가 한반도를 강타한 1995년 7월23일.

삼려통합 전인 당시 여천군 남면 소리도 해상에서 호남정유(현 GS칼텍스)의 키프로스 선적 14만5000톤급 씨프린스호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됐다는 비보가 전해진다.

이 사고로 원유 5000톤과 배에 남아있던 대량의 벙커씨유 등이 유출되면서 다도해해상국립공원과 광양만을 초토화시켰다.

봇물처럼 쏟아진 엄청난 양의 기름에는 말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기름띠가 전남 고흥 가막만과 경남 남해 앵강만까지 급속도로 퍼졌고, 일본 쓰시마섬 인근까지 기름띠가 흘러들었다.

조기방제는 실패했고, 사고 발생 사흘 후에야 대책본부가 꾸려지는 등 대응체계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다.

공식 피해 집계만 3800여ha, 1500억원의 천문학적 재산피해가 났다.

청정해역을 자랑하던 다도해에는 검은 파도가 출렁였다.

인근 바다의 어류들은 폐사해 수면으로 떠올랐고, 해조류는 기름때와 뒤엉켜 갯바위를 나뒹굴었다.

기자는 당시 학생 신분이었음에도 브라운관 TV의 흐릿한 화질로 방송된 아비규환의 현장을 잊을 수 없다.

기름을 둘러쓴 채 쓰러져 죽어가는 갈매기떼, 마치 시커먼 먹물을 천지에 풀어놓은 듯 온통 기름으로 뒤덮인 바다를 보며 넋을 잃은 채 통곡하던 어민들의 모습은 21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다.

지난 23일은 우리나라 최대의 유류 해양오염사고 씨프린스호 사건이 터진지 꼬박 21년째 되는 날이였다.

사고 지역인 소리도에는 당시 죽어가는 섬을 되살리고자 거대기업에 맞서며 목소리를 냈던 청년들은 어느새 노년의 세대가 되어 일부는 외지로 떠나고 일부만 섬을 지키고 있다.

씨프린스호 사고 책임을 의식해 지난 세월동안 봉사활동과 선물공세로 주민들의 상흔을 달랬던 그 기업도 수년 전부터는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보상했으면 할 만큼 했다는 판단이었을까.

그저 씁쓸한 따름이다.

씨프린스호의 악령은 기억에서 잊혀질만 할 때 다시 찾아왔다.

지난 2014년 1월31일 낙포동 GS칼텍스 원유2부두에서 싱가포르 선적 16만4000톤급 우이산호가 송유관 3개와 충돌해 원유와 납사 등 기름 800㎘가 바다로 유출됐다.

이 사고로 인근 삼일동 신덕마을 일대가 쑥대밭이 됐다. 이 마을은 씨프린스호 사고로 직격탄을 맞은 곳이었다.

이때 역시 씨프린스호 때와 마찬가지로 초동조치 미흡으로 대형사고로 발전했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인재였다는 비난이 온갖 매체를 타고 빗발쳤다.

기업이 대형사고가 터질 때 마다 임기응변식 대처로만 일관했던 탓이다.

사건축소에 급급했고, 사고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사탕발림 보상 후 사고를 재빨리 수습하려고만 했다.

사고 법적 책임 또한 선주와 일부 회사 책임자들에게 묻는데서 그쳤다.

올해는 어찌된 영문인지 해마다 7월23일이면 성명을 발표하던 환경단체도 꿀먹은 벙어리마냥 조용하기만 하다.

언론에서도 일체 조명하고 있지 않다.

정부와 기업은 사고만 터지면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입버릇처럼 떠들어 댔지만 지금껏 달라진 것은 없다. 사고재발 방지를 위해 구성된 민관 공동 기구나 협의체도 전무하다.

주민들은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누가 세월이 약이라고 했나, 세월가면 잊혀진다고 했던가.

지금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병든바다와 평생 치유되지 못할 트라우마, 그리고 절망 뿐이다.

그들은 지금도 뉴스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기름 유출사고가 터질 때마다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는다고 한다.

조선 세계1위, 해운 세계5위를 자랑하는 21세기 초해양강국에서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이 그저 아이러니 할 따름이다.

기자는 말하고 싶다. 씨프린스호 사고는 더 이상 꼭꼭 숨겨야 할 지역의 암울한 과거가 아니라고.

매년 7월23일 만큼은 ‘재앙의 날’이 아닌 이제는 그날의 아픔을 더 이상 반복하지 말고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환경의 날’로 기념일을 지정했으면 한다.

아울러 사고해역에 기념탑과 기념비를 세워 민·관·산이 함께 기념행사를 치루는 방안도 제안하고 싶다.

조승화 기자  frine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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