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 금오도의 명포수로 알려진 명경현(26) 씨가 지난 3일 국립공원관리공단과 멧돼지 합동포획 작전 중 멧돼지를 발견한 뒤 목표물을 향해 엽총을 겨냥하고 있다.

사냥의 시즌이 도래했다. 부유층의 인기 레저로 각광받는 사냥. 그렇지만 낙도 오지마을에선 금수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방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스물한 번째 큰 섬 여수시 남면 금오도. 비렁길로 입소문타면서 ‘힐링의 대명사’가 된 섬이지만 이곳 주민들에게는 큰 골칫거리가 있다.

야생 멧돼지들이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

주민들은 “멧돼지가 육지에서 헤엄을 쳐서 건너왔다. 실제 바다에 쳐놓은 그물에 멧돼지가 걸린 경우도 있다”며 “생존력이 지독한 놈들”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멧돼지 소문이 퍼지면서 최근 비렁길 관광객 수가 줄고 있다며 주민들은 걱정하고 있다.

멧돼지는 연로한 섬 주민들에게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애써 경작한 고구마, 방풍 등 농작물을 파헤치고, 닥치는 대로 가축을 잡아먹는 포악성을 목격한 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을과 인가에 출몰하면서 마을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이를 보다 못한 주민들은 사냥대를 결성해 멧돼지 퇴치에 나섰다.

▲ 명경현 씨가 사냥에 나서기 전 사냥견 상태를 살피고 있다.

명사수로 소문난 명경현(26) 씨는 섬에선 멧돼지로부터 주민안전을 책임지는 보안관으로 통하고 있다.

여수시 남면 면사무소에 근무하며 행정선 선장을 맡고 있는 명광석(58) 씨의 막내아들로 어릴적부터 야생동물 사냥재주가 남달랐으며, 열정을 부모도 못 말렸다고 주민들은 그를 기억했다.

경현 씨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자마자 국가 수렵자격증을 땄고 돈을 모아 사냥총을 샀다. 그때 돈으로 320만원을 줬다.

부모의 권유로 젊은 나이 섬과 바다가 좋아 금오도 정착을 결심하게 됐다는 그는 평소 어머니가 운영하는 펜션일을 도맡아 하고, 연로한 주민들을 대신해 동네 일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교시절 때 우연히 꿩, 고라니 사냥을 따라갔다가 그 광경을 보고 사냥에 빠졌어요. 솔직히 말하면 총이 좋았어요. 현역병 시절에는 사격실력이 뛰어나 포상휴가도 자주 나왔고요”

“원래 섬에는 멧돼지가 살지 않아요. 아마 2년 전부터였을 겁니다. 한두 마리씩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개체수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난거죠”

번식력이 뛰어난 멧돼지는 천적이 없어 사냥을 하거나 덫을 놓아 포획하는 것 외에는 구제방법이 딱히 없는 실정이다.

특히 겨울이 다가오는 요즘 같은 시기면 먹잇감을 찾지 못해 굶주린 멧돼지들이 마을로 내려오는 횟수가 부쩍 늘고, 피해도 점차 커지고 있다.

사냥은 허가시간이 야간에만 제한되기 때문에 낮 시간 생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파출소에서 총기 대여 허가를 얻어 오후 5시부터 다음날 8시까지만 할 수 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포악한 야생동물을 사냥을 하는 일이 담력이 여간해선 선뜻 나서기 어렵다.

일주일에 보통 3~4일을 사냥하는데 경계심이 많고, 인기척이 빠른 멧돼지와  그야말로 술래잡기 연속이다.

▲ 지난 3일 국립공원관리공단과 금오도 마을 주민들이 합동으로 포획한 멧돼지. 엽총 수발을 맞고 사살됐다.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마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걸고 하는 거죠”

멧돼지 사냥의 단도리는 사냥개를 풀어 흔적을 추적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수풀을 헤지고 수시간여의 추적 끝에 멧돼지를 발견하면 사냥개와의 일전이 벌어진다.

멧돼지와의 사활을 건 전투에서 죽거나 다치는 사냥개도 비일비재하다.

실탄을 장전한 뒤 궁지에 몰린 멧돼지를 겨눠 방아쇠를 당긴다. 총성이 적막을 깨우며 산야에 메아리친다.

피를 흘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휘청거리는 멧돼지의 정수리와 심장부를 향해 회심의 일격을 가한 뒤에야 비로소 상황은 종료된다.

워낙 지방층이 두꺼워 급소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게 되면 부상만 입은채 덤불속으로 줄행랑 치기 일쑤다. 그만큼 순발력과 고난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혈흔이 낭자한 전장에서 얻은 멧돼지 사체는 말그대로 전리품. 평균 300㎏ 이상 되는 육중한 무게의 멧돼지를 마을로 옮기기 위해선 오밤중에 주민들을 동원해야 한다.

멧돼지를 메고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마을잔치가 벌어진다. 멧돼지 고기는 별미 중 별미. 일반돼지보다 껍데기는 단단하나 안은 쫄깃한 식감이 일품으로 꼽힌다.

주민들은 고기를 손질해 수육을 삶아 나눠먹거나 경로당에 제공한다. 남은 고기는 숯불에 노릇하게 구워 파티를 연다.

▲ 손질된 멧돼지 고기. 쫄깃하고 담백한 식감으로 별미 중 별미로 꼽힌다. 수육 또는 숯불구이로 조리해서 먹는다.

“담백한 식감을 자랑하는 고단백의 멧돼지 고기는 시중에 파는 항생제 덩어리 돼지고기와는 비교가 되질 않아요. 이 고기를 먹고 기력 챙기신 어르신들도 알게 모르게 많습니다”

주민들은 “섬에선 경현이 사격실력을 이길 사람이 없다. 백발백중의 사격실력을 갖춘 경현이 덕에 지금껏 수십 마리의 멧돼지를 사살할 수 있었다”면서 “마을 안전과 주민건강을 도모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사냥하면 귀족스포츠로 알려져 있잖아요. 비용 따지면 할 수 없죠”

경현 씨는 사냥이 소위 ‘가성비’가 매우 낮은 스포츠라고 했다. 많은 비용이 따르기 때문.

300~400만원 가량 되는 엽총을 비롯해 총알 한발에만 1만5000원 가량 한다. 사냥복과 신발에도 많은 돈이 들고, 보험료도 24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정찰병 역할을 하는 사냥개는 러시아가 고장인 '라이카'의 혈통을 교배시켜 사냥성을 극대화시킨 개체만을 엄별해 훈련시킨다. 

한 마리에 1000만원을 육박하는데 훈련과 치료비용으로 매달 수백만원이 들어간다. 사냥개가 멧돼지와의 싸움에서 죽게 되면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때문에 주민들은 여수시가 타 도시처럼 사냥에 따른 포상금이나 지원금 제도를 마련해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광양의 경우 총기 반출 시 4만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구례는 사냥 보험에 가입해 멧돼지 포획 시 마리당 5만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본지 취재에 적극 협조해 준 김동석 남면장은 경현 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시다시피 요즘 섬에 청년들이 어디 있나요? 무엇하나 부탁해도 군소리 없이 척척 알아서 다하고…마을 주민들로썬 자식 이상으로 고마울 따름이죠”

아버지 명광석 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부모사업 물려받아 안정적으로 섬에 정착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어. 예전에야 다들 육지로, 도시로 떠났지만 요즘 힐링이니 웰빙이니 하면서 귀농귀촌 하잖어. 오히려 각박한 도시생활보다 낫고 본인 인생이나 자식들 키우는데도 도움되는 측면도 크다고 봐. 혼사가 큰일인디 주변에 참한 색시감 있으면 하나 소개시켜 줘”

조승화 기자  frine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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