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전 금오도에 정착해 써니아일랜드를 차린 김선일(47)·이미숙 부부. 직접 설계를 하는 등 2년여의 공사 끝에 1000여평 부지에 카페와 펜션, 야외 캠핑장까지 모두 갖췄다.

섬사람들의 시계는 느리다.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와 뱃고동 소리에 귀 기울이고, 섬 곳곳에 핀 야생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릉도원에 와 있는 것 같은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느림의 미학으로 형용되는 섬에 순응하고 그 일부분으로 동화되는 삶을 누구나 한번은 꿈꾼다. 섬은 느리지만 고유하게 바다의 시간을 살아가는 삶을 제시하며 우리를 유혹한다.

섬을 귀촌의 장소로, 동경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자칫 고독과 유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섬은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성공적인 인생 2막을 꿈꾸며 낙도 오지에 정착한 40대 부부의 도전기가 흥미롭다.

금오도 살이 3년차에 접어든 김선일(47)·이미숙 동갑내기 부부의 이야기.

대기업에 입사해 간부를 지낸 선일 씨는 회사 선배의 권유로 경북 상주 내서면으로 귀촌하기로 굳은 결심을 내리고 사표를 썼다.

도시에서의 각박하고 고단한 삶, 경제적 물질적 대가를 과감히 포기하고 행복을 택했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던 부인과 두 자녀를 데리고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왔다.

아담한 전원생활을 목표로 황토흙집을 지어 7년 동안 생활했다. 벌이가 넉넉지는 않았지만 남편은 전공을 살려 읍내에 나가 전기업을 했고, 아내는 중학교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하며 생계를 간간이 이어갔다.

어느날인가 여수에 사는 시동생에게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금오도라는 섬이 있는데 땅을 보러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아내 미숙 씨가 처음 발을 디딘 금오도는 신비의 섬, 미지의 세계로 다가왔다.

바다에 두둥실 떠있는 기암괴석과 해안선을 둘러싼 섬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은 그녀의 마음을 출렁이게 했다. 금오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그녀와 가족들을 섬으로 인도했다.

▲ 김 씨 부부가 일과 시간 정원을 가꾸는 도중 흔들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무엇보다 금오도는 풍광이 좋아서 선택했어요. 방풍밭 너머로 뻥뚫린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이 멈춘 시공간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여기선 사계절 날마다 풍경이 달라요”

펜션을 지어 운영하면서 생계를 이끌 계획을 세웠다. 유럽풍의 고건물을 컨셉으로 잡았다. 유독 바람이 강한 지역이기에 바람에 강한집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벽돌을 선택했다. 시중에 판매하는 벽돌로 지어선 경쟁력이 없단 생각이 들어 웃돈을 얹어주고 고(古) 벽돌을 사왔다.

남편 선일씨가 직접 도면을 치고, 각 공정마다 따로 업자를 불러 공사를 시작했다.

배를 타고 자재를 이동해야하는 섬 특성 때문에 공사비는 두 배로 증가했다.

2년여의 공사 끝에 1000여평 부지에 카페와 펜션, 야외 캠핑장까지 모두 갖추게 됐다. 40~50명이 함께 묵을 수 있을 만큼 넑직하다.

▲써니아일랜드 카페 내부 모습(왼쪽)과 외부 전경.

연초면 기업연수와 워크숍이 주로 이뤄지고, 여름·가을에는 주로 캠핑족들이 찾는다.

단체샤워장, 공용화장실, 개수대 등 이용객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한 세심한 배려도 곳곳에 묻어있다.

“금오도는 풍광도 좋지만 물이 좋아요. 상수원이 워낙 청정해서 그런지 몸도 좋아지고 피부도 깨끗해지고…그런걸 많이 느끼시고 다시 찾아오시는 것 같아요”

정원 곳곳마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눈길을 끈다. 바다에 떠내려 온 침목 등을 주워 활용한 소품도 특이하다. 심지어 도로변에 심은 꽃까지 곳곳마다 남편 선일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다. 때문에 손수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크다.

부부는 하루 대부분 함께 한다. 아내 미숙 씨는 카페를 운영하고 선일 씨는 펜션을 고치거나 정원을 가꾼다. 성순(17), 창순(14) 두 아들이 오후 일찍 방과를 마치면 집안일을 돕거나 자연을 벗삼아 뛰어노는 것도 도시에선 있을 수 없는 오롯이 섬에서만 가능한 평화스러운 일상이다.

“집짓기는 이제 절반 정도 이뤘다고 생각해요. 큰 화폭에 생각한 그림들을 하나하나 그려나가는 단계이고 진행형인거죠. 완성은 없어요. 바램이 있다면 금오도의 특징 하나하나를 담은 마루지(랜드마크의 우리말)로 꾸며보고 싶어요”

미숙 씨는 “금오도를 여행하는 여행객들에게 잔잔한 여운을 줄 수 있는 그런 펜션으로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 김 씨 부부가 도로변에 꽃을 심고 있다.

섬 내에선 정식 카페 허가를 낸 곳은 ‘써니 아일랜드’가 유일하다. 국립공원 지역이다 보니 웬만한 조건을 갖추고 허가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런 만큼 특화상품도 직접 개발하고 만들어내야 한다. 이곳 특산품인 방풍으로 빵과 쿠키 등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이제는 ‘써니아일랜드’를 알아 차리고 일부러 찾는 비렁길을 걷는 관광객들도 있다. 비렁길 4코스 초입 지근거리에 위치한 덕분에 찾기도 수월하다.

섬에 대한 일반의 관심 높아지면서 귀촌과 함께 수익창출 모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러나 그녀는 “수익을 내는 데만 치중해서는 귀촌에 성공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공동체 일원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공사할 때도 시끄럽고 불편도 많았지만 이웃주민들이 다 이해해 주셨어요. 일부러 모셔와 함께 식사도 제공하고, 신랑이 마을 전기시설도 고쳐주고…손내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거에요”

소통의 노력없인 귀촌의 성공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금오도의 문화와 생활을 대변하는 플랫폼이자 문화허브로 가꿔가겠다는 생각이다.

관광객들과 섬주민을 연결하는 소통창구로 작은 음악회, 시낭송회, 영화관람회 등을 열어보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섬에서의 삶은 동전의 양면 같아요. 고립됐기 때문에 단조롭고 조용한 생활이지만 그런 것을 과감히 버릴 수 있다면 결정해도 후회는 없어요. 섬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비록 소박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값진 그림을 그릴 자신이 있다면 섬은 당신에게 천국이 될 거에요”

▲ 써니아일랜드에서 바라본 금오도 앞바다의 풍경. 방풍밭 너머로 푸른바다가 가슴을 탁트이게 한다.

조승화 기자  frine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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