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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政治)의 ‘정’이 ‘바를 정(正)’이 아닌 이유데스크칼럼> 김현석 편집국장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인류를 사랑하는 게 더 쉬운 일이다” -에릭 호퍼
‘Eric Hoffer(에릭 호퍼1902~1983)’의 이 코멘트는 오늘날 여전히 정치권과 SNS(Social Network Service: 페이스북, 카카오톡, 라인 등)에서 화두로 회자되고 있는 ‘소통’의 의미를 되집어 보는데 유용하게 인용되는 말이다.

눈앞에 있는 가까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곁에 있는 이웃의 허물은 내 눈에 너무나 뚜렷하게 보이고 또 신비감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에 이들과 소통하며 잘 지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산 속에서 도 닦는 심정’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소통을 잘한다’는 평을 받는 사람은 내 이웃의 허물도 감싸 안고 잘 지낼 수 있는 사람, 자신과는 다소 불편한 관계이지만 그럼에도 이들마저 기꺼이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그런 내공을 갖춘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하지만 자신을 바꾸려고 하진 않는다” -톨스토이
개혁을 말하고, 새정치를 말하는 자는 ‘感動’(감동)이 무엇인지부터 말해야 한다. 이어령 교수는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그의 저서에서 ‘낙타의 눈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감동과 변화를 이야기했다.

낙타는 사막이라는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인지 등에 물주머니를 지녔고 모래바람을 막는 긴 눈썹을 가졌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낙타의 성격이다.

프랑스 말에 ‘낙타 같은 사람’하면 이기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욕으로 통하며, 성경에서도 낙타는 60행에 걸쳐 63번 언급됐는데 그리 좋은 뜻으로 인용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낙타 중에는 모성애 없는 낙타들이 있다고 한다. 새끼가 굶주려 죽게 생겼는데도 젖을 물리지 않고 가까이 오면 발로 차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낙타들도 제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정을 들여 키우게 할 수 있는 놀라운 비법이 전해온다. 바로 몽골 사람들이 터득한 방법이다.

몽골사람들은 매정한 낙타를 다스리기 위해 마두금이라는 현악기 연주와 함께 노래를 들려준다. 마두금 악기를 잘 다루는 악사를 먼 데까지 가서 초대 한 다음 낙타를 앞에 두고 마을 사람들이 연주회를 연다. 이때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로 그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인 할머니가 나선다. 이 할머니는 자식 손자를 많이 키워 본 여인이어서 자장가와 같이 다정다감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구슬픈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아름다운 선율과 사랑의 노래를 들은 낙타는 그 눈에 눈물방울이 맺히며 이내 눈물이 흘러내리게 된다. 이 낙타는 모성애를 되찾고 제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정을 들여 잘 키우는 어미낙타가 되고, 이러한 장면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이어령 교수는 이것을 극적인 장면이라 말하면서 ‘감동’에 대한 한자어를 다시한번 상기시켰다. ‘감동’은 뜻 그대로 ‘느끼고(感) 움직인다(動)’는 것. 그리고 변화는 감동을 통해서 온다는 것이다.

정치의 한자어는 ‘政治’이다.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면서 정책을 구현시켜가는 과정을 일컫는 용어다. 우리가 흔히 ‘정치’하면 떠올리는 ‘정’이 ‘바를 정(正)’자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가의 정치행위가 때로는 갈등을 유발하고 또 불편한 세력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것도 결국 정치의 불가피한 한 측면일뿐더러 정치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정국도 정치인이라면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풀어가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특히 올해 정유년에는 ‘소통을 잘하는 정치인’, 국민들을 ‘감동시킬 줄 아는 정치인’을 간절히 소망해 본다.

김현석 기자  arguskim@outloo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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