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렌식 복원’ 범죄입증 결정적 단서 제공 사건해결 실마리
각종 의뢰건 전국에서 몰려 와...의뢰인 보안 최우선 가치

▲ 여수 데이터복구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손정권(47) 씨. 복원작업을 통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자료를 되살려 주는 직업이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게이트를 수사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범죄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담은 태블릿PC와 안종범·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폰 속에서 삭제된 녹음파일 및 통화기록, 문자메시지 등을 복구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디지털포렌식 기법을 이용한 데이터복구는 하드디스크를 포함한 각종 저장매체에 기록됐다가 삭제된 기록을 되살려내는 작업으로, 최근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수에서 데이터복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손정권(47) 씨. 아내와 함께 신기동에서 컴퓨터판매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건물 2층에 복구 작업실을 두고 있다.

작업실을 들어서자 벽면에 빼곡히 쌓여있는 하드디스크가 눈에 띄었다. 사무실 곳곳을 차지하고 있는 생소한 복원 장비들도 호기심을 자아냈다.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의 경우도 포렌식 데이터복구를 통해 국정원의 증거조작을 입증한 사례로 유명하죠. 바닷물에 부식된 세월호의 CCTV 영상을 일부분 되살릴 수 있었던 것도 포렌식 복원이라는 기술 덕분에 가능했던 거고요”

포렌식(Forensic)은 고대 로마시대의 포럼(Forum)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법의학적인, 범죄 과학 수사의, 법정의, 재판에 관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형용사다.

일반적으로 법정 변론을 위해 이용되는 법정과학 개념으로, 범죄수사 및 민형사 소송 등 법정에 사용되는 증거의 수집‧보존‧분석을 위한 응용과학 분야를 통칭하는 용어이다.

▲ 손 씨가 자신의 복원 작업실에서 파손된 스마트폰에서 메모리칩을 분리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기록매체 상에 존재하는 메타데이터를 이용해 복원하는 기술로 포맷 등 논리적 삭제의 경우 100% 복구 가능하다.

하지만 삭제된 트랙을 ‘0’으로 채워버리는 이른바 ‘제로필(Zero feel)’ 처리가 되면 복구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근래 이 방식을 이용해 삭제 후 복원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고 증거 인멸 역시 날로 지능화되면서 복원기술 또한 발전하고 있다.

정전에 의해 디스크가 파손되거나 침수 또는 화재 등으로 훼손되는 최악의 경우에도 플래터의 보존상태가 양호하면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손 씨의 사무실에는 전국 각지에서 복원을 의뢰한 하드디스크와 스마트폰, 블랙박스, CCTV 등으로 빼곡하다.

“주로 정보‧수사기관에서 복원 의뢰를 하는 사례가 많고요. 모 언론사에서는 세월호와 관련된 녹취 문건 등 1급 보안으로 분류되는 정보 복원을 맡긴 경우도 있어요”

지난 2014년 침몰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스마트폰 복구에 참여하기도 했다.

휴대폰에서 EMMC메모리를 회수해 언터필(방진방습) 코팅을 벗겨낸 뒤 외부회로를 연결해 정보에 접근하는 고난도 작업이었다. 바닷물에 닿는 순간부터 부식이 급속화돼 더욱 애를 먹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복원작업은 지난 2013년 3월20일 발생한  ‘농협  3. 20 해킹 대란'이었다.

디도스 바이러스의 침투로 농협 전산망 전체가 마비된 최대 규모의 사이버테러였다.  손 씨는 수십여대의 컴퓨터의 복구작업에 참여한 경력이있다.

요즘에는 개인이 스마트폰 해킹을 의뢰하는 경우도 심심찮다. 불륜이 의심되는 카톡 내용 등 치정관계에 얽힌 의뢰건도 제법 많다.

“수사기관에서 직접 데이터복구를 시도하는 사례는 많지만 성공 만족도는 따라오지 못한다고 봅니다. 아직까지는 민간과의 기술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 업계 전반의 시각이고요”

각 전문분야와 기술도 다르기 때문에 전국 해커들과 팀을 이뤄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휘발성이 강한 USB나 SD카드 등 플래시메모리의 복구는 특히나 더 어렵다. COB UBS메모리 복구 기술은 손 씨를 포함해 전국에 고작 2명밖에 없어 기술격차가 매우 큰 편이다.  180배율의 전자현미경을 통해 수십개의 단자에 일일이 와이어 작업을 해야 하는 등 고도의 정밀작업이 요구된다.

이 과정이 끝나면 FE라는 플래시이펙트 장비로 담긴 정보를 추출하게 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해 해박하고, 경험이 많을수록 성공확률도 비례해진다.

인간이 이용하는 10진수는 컴퓨터에게는 무용지물. 16진수인 ‘핵사코드’로 변환해 파일시스템을 분석하고, 조각난 데이터를 모으면 비로소 데이터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삭제된 사진이나 문서의 위치를 찾아내 복구할 수 있는 단서가 완성되는 셈이다.

▲ 손 씨가 분산된 파일시스템 분석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조각난 데이터를 모아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다.

데이터복원을 사칭한 사기 피해도 많다.

근래 지역 내 한 사진스튜디오에서 사진복구를 맡겼다가 돈만 날린 사기피해를 입은 해프닝도 있었다. 의뢰자가 귀중하고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는 자료일수록 착수금을 요구하거나, 복구비용을 높게 부른다면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한다.

손 씨는 현장에서 복구과정을 일일이 지켜보는 것만이 피해를 예방을 할 수 길이라고 조언한다.

출장 의뢰는 90% 이상이 사기이니 일단 의심부터 해보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최근 의뢰건 가운데서는 광주광역시의 모 회사에서 직원이 8000여만원을 횡령한 뒤 범죄사실을  숨기기 위해 삭제해 버린 회계프로그램을 복원해 준 사례도 있었다.

회사 측은 횡령 직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또, 한 중년여성의 의뢰건은 그 사연이 황당했다. 남편이 아내의 불륜을 의심해 다수의 녹음기를 자택과 자가용 등에 몰래 설치했다가 발각됐는데 녹취내용이 삭제돼 여성이 복원을 의뢰한 경우도 있었다.

법정에서 범죄사실이 인정되기 위해선 증거의 무결성이 증명돼야 하는데 복원 상태에 따라 승패소 여부가 판가름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쟁, 금전, 불륜 등 쌍방 소송을 목적으로 한 데이터 복원이 대다수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일을 하다보면 볼 것, 못볼 것 다보게 됩니다. 퇴락한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의뢰인과 피의뢰인 양자동의가 없으면 복구작업은 불가하다. 인감증명, 보안각서, 신원확인서 등을 제출한 뒤 정확한 신원확보가 선행돼야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반면 손 씨는 추억과 사연이 담긴 자료를 복구하는 작업은 즐겁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추켜세운다. 자녀들이 커가는 사진을 담은 성장앨범이나 누군가에게 보냈을 이메일 편지 등 사랑이 담긴 데이터를 복원하는 작업은 꽤나 의미있다.

얼마 전에는 조카가 휴대폰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 파손돼 복원을 맡긴 청년의 사연을 접하고는 훈훈한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손 씨는 기계결함이 없는 논리복구의 경우 15만원을, 저장매체가 파손된 데이터복구에는 25~35만원을 받고 있다.

가격이란 소비자가 납득해야 하고, 업체도 먹고 살 수 있는 합리적 결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

금오도에서 태어나 섬에서 고교를 졸업한 손 씨는 군복무 시절 사진병으로 활동하다 우연히 컴퓨터그래픽에 매료돼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피시통신이 주류를 이뤘던 시절. 체계적인 복원 기술은커녕 데이터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당시 전국을 떠다니며 전자 관련 기술을 동냥하다시피 했다.

소자 하나하나의 특성을 익혔고, 회로흐름을 읽는 경지까지 오르면서 시간과 돈의 투자는 불가피했다. 손 씨에게 복구작업실은 내공을 쌓는 연구실이자 미래를 설계하는 특별한 곳이다.

하드디스크가 사라지면서 낸드플래시 같은 저장매체가 날로 발전하고 있고, 데이터 암호화 기술도 고도화되는 현실에 대해 손 씨는 말했다.

“인공지능(AI)에서 탄생된 알파고의 놀라움을 보셨을 거예요. 빅데이터라고 하죠. 데이터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복원 기술 역시 분명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조승화 기자  frine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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