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자수첩
코카콜라와 펩시의 전쟁, 도전자는 펩시처럼 과감해야데스크칼럼> 김현석 편집국장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싸움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전개됐다.

바로 코카콜라와 펩시의 대결이었다. 시장 점유율과 브랜드 파워면에서 절대우위의 위치를 점하고 있던 강자 코카콜라는 뭘 모르고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것 같은 신생 펩시의 도전을 애써 무시로 대응했다. 하지만 곧이어 시장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위기의 순간에 봉착했다.

청량음료 시장에서 펼쳐진 펩시의 도전은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변화의 조짐은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펩시가 꺼내든 광고와 마케팅 전략이 신선했으며 그 대상은 시장1위 자리였다. 왕의 자리를 정조준한 것이다.

당시 지역매장 매출이 4~5위 정도에 불과했던 펩시는 코카콜라를 앞서는 것 보다는 경쟁자만 되어도 좋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아예 1위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으로 달려들었다.

펩시는 미국 각지의 상점가에 시음대를 마련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음테스트를 권했다. 코카콜라와 펩시라는 표시가 없는 두 개의 잔을 마시게 한 뒤 맛을 비교하는 전략이었다.

수 많은 시음자들이 양쪽 잔을 홀짝거리며 마신 뒤 펩시의 맛이 더 부드럽고 달콤해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것은 코카콜라를 향한 펩시의 도발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광고전략이었다.

그러나 코카콜라는 7년 동안 펩시의 도전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적이라고 할 만큼 펩시를 무시했다.

코카콜라 회장 로베르토 고이수에타는 펩시라는 이름을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알파독(부키 출판사)’의 저자 제임스 하딩은 이 대목에서 “(이는 마치) 케임브리지를 ‘그 동네’라고만 부르는 옥스퍼드 신사와 꼭 닮은 꼴이었다”고 비유하면서 “마치 펩시 이름을 입에 올리면 그것이 현실이 될 거라고 불안해 하는 사람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네가 어떤 말을 입 밖에 내면 그것은 그대로 굳어져서 너는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지”라고 인용하면서 코카콜라 중역들은 코카콜라가 펩시의 도전에 대응하면 돈 안 받고 펩시를 광고해 주는 꼴이 된다면서 무대응 정책을 합리화 했다고 설명했다.

코카콜라 중역들이 펩시의 도전을 애써 무시하는 동안 정작 코카콜라 공장 현지 관계자들은 불만 가득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들은 펩시 배달기사가 ‘코카콜라를 부수자’라는 광고판을 들고다닐 정도로 기세등등하다고 불평했고 실제 펩시의 매출확대가 정점에 오르고 있다는 것도 체감하고 있었다.

펩시의 도전 전략이 성공 궤도에 오르자 타 청량음료업체도 일제히 따라하기 시작했다. ‘알씨 콜라’, ‘코트’, ‘더블 콜라’, ‘씨앤드씨’ 등의 콜라 회사들이 갑자기 시음행사를 열면서 코카콜라를 만만하게 보고 달려들었다.

상황이 이쯤되니 코카콜라도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유명한 코미디언 빌 코스비를 광고에 등장시켰다. 내용은 간단했다. 코스비는 각종 콜라가 줄줄이 놓여있는 탁자 옆에 서서는 이렇게 말한다.

“얘네들 지금 코카콜라를 물 먹이려고 시음행사를 하고 있다지. 얘도 시음행사를 하고 얘도, 얘도, 얘도 죄들 코카콜라를 물 먹이려고 시음행사를 하고 있어” 그리고는 코카콜라 병을 가리키며 “그래서 사람들이 이걸 진짜라고 부르는구나”며 씨익 웃는다. 코카콜라는 ‘진짜’를 광고전략으로 내세워 도전자들과 맞선 것이다.

펩시는 1983년에 마이클 잭슨을 광고에 등장시켰다. 효과는 강력했다.

광고 는 거리를 가득 메운 십 대들이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빌리진’의 격정적인 리듬을 펩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고 화면에는 꼬마 한 명이 등장해 한 손에 장갑을 끼고 다른 한 손에는 펩시 캔을 들고 마이클 잭슨 특유의 문워크 동작을 하면서 뒤로 이동하는 모습이 나왔다.

미국의 미래 세대들이 펩시를 선택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이 장면은 마케팅 광고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한 방으로 부각됐다.

‘그들은 어떻게 전 세계 선거판을 장악했는가?’를 부제로 단 책 ‘알파독’에서 제임스 하딩은 “펩시가 마련한 싸움판에 들어와서 싸우기를 주저하는 코카콜라의 태도는 오만한 기득권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코카콜라는 기득권층이자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를 동경하는 미국이며, 경력을 앞세워서 재선을 노리는 정치인이었다. 반면에 펩시는 약자의 처지를 최대한 활용했다. 펩시는 차이를 약속하고, 젊음을 구현하고, 미래를 지향했다.

펩시는 변화를 제공하고 그 결과 미국 대중과의 대화 통로를 장악했다”고 기술했다.(p106)

1980년대에 코카콜라 회장이 된 로베르토 고이스에타는 쿠바 카스트로 독재하에서 망명한 이민자 출신으로 회사를 개혁가의 열망으로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CEO중 한 명이다. 1982년에 다이어트코크를 출시했고 2년 뒤엔 체리코크를 개발했다. 화학 관련 전문가인 고이스에타 회장이 격의 없이 직원들과 어울리면서 만들어낸 결과다.

그는 행동했다. 펩시가 시장에서 거침없이 치고 올라오자 해마다 펩시보다 1억달러나 많은 돈을 광고에 투입했고, 자동판매기 수도 늘렸고, 매장 진열대도 확장했다. 1984년에는 단맛과 부드러운 맛을 강화한 새 제품 뉴코크를 출시했다.

또 펩시가 하던 시음 전략을 그대로 본받았다. 새 제품 출시 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시험 결과 원래의 코카콜라를 고른 사람의 비율은 펩시보다 무려 18%나 뒤처지고, 새로 개발된 음료는 펩시를 8% 가량 앞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열 번 가운데 일곱 번은 펩시를 고를 정도로 펩시의 맛에 길이 든 사람들도 열 번 가운데 다섯 번은 뉴코크를 골랐다.

약 400만 달러를 시장조사에 투입했고 20만명을 대상으로 신제품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펩시가 눈치채지 못하게 신제품 비밀 개발실을 마련하기도 했다.

고이수에타 회장은 코카콜라가 미국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며 대대적인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코카콜라가 직면한 대 위기가 세대교체 이슈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지에 “코카콜라는 미국이고, 미국은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코카콜라 역시 변화에 대해서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이 낫다”며 변화를 선언했다.

1985년 4월23일 신제품 뉴코크를 알리면서 기자들을 향해 코카콜라가 새로운 조제법을 발견했노라고 발표했다. 그리고는 다분히 펩시를 의식한 마케팅 행사를 화려하게 진행했다.

온통 븕은색으로 도배된 기자회견장 대형스크린에 밝게 웃고 있는 존 F 케네디와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 누렇게 익은 밀밭,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는 도시의 아침, 야구하는 아이들, 제복을 갖춰 입은 남자들 등 미국을 상징하는 영상들을 잇따라 상영했다.

덧붙여 펩시의 도전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장을 낸 펩시의 기백과 전략, 그리고 이들간에 전개된 치열한 시장점유율 선점 전쟁 과정이 지금의 정치 모델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내년 전국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기득권 위치에 있는 현역 지자체장은 가능하면 진입장벽을 높이 쌓으려고 한다.

도전자의 ‘도전’을 쉽게 허용하지 않겠다는 욕심이다. 애써 무시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측근들의 조언도 수 없이 듣고 있다.

현역단체장 혹은 현역시의원들 입장에서는 새 도전자의 등장이 눈엣가시일 수 밖에 없을 터, 그렇다고 전가의 보도처럼 꼼수와 음모의 패를 쉽게 꺼내들 수도 없는 시대다.

변화의 요구에 과감히 응해야 한다.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업그레이드 시켜 유권자들이 체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도전자 입장에서는 무엇이 필요하랴. 펩시처럼 기발하고, 과감한 전략으로, 차근차근하게, 현역을 정조준하면서 밀어붙여 나가는 수 밖에. 때로는 도발도 불사하면서. 이것이 도전자의 숙명이다.

김현석 기자  arguskim@outlook.kr

<저작권자 © 여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현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