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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의 ‘오징어다리 하나’<데스크 칼럼> 김현석 편집위원장

영화 ‘1987’을 봤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장면들이 그때 그 시절을 생생히 떠올리게 하며 가슴을 후빈다. 당시에는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소위 운동권이었다. 영화를 본 이 운동권 동기들이 모처럼 SNS를 통해 안부를 물어왔다. 80년대 후반, 캠퍼스에서 치열하게 투쟁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1979년 12·12 쿠데타를 통해 정국을 장악한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는 완전한 권력 장악을 위해 ‘김대중내란 음모사건’을 조작했고 문익환, 인명진, 고은, 리영희 등 수많은 민주화 지도자들을 사회혼란 및 학생·노조를 배후조종했다는 이유로 체포했다.

신군부는 민주 인사들을 검거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돌릴 목적으로 권력형 부정축제 혐의자 체포를 끼워 넣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두 야당지도자 중 김영상 신민당 당수는 구속대상에서 제외됐고 김대중만이 구속됐다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 정권의 오랜 정치공작에 따라 급진적 이미지가 국민들 사이에 유포되어 있고 지역기반 역시 소외된 호남인을 상징하고 있는 김대중을 내란혐의로 구속함으로써 향후 정국을 호남고립 상황으로 몰고가려는 전략이었다.

신군부는 지역분열주의 공작을 줄기차게 펼쳐 나갔고 급기야 ‘인간사냥’을 위한 ‘화려한 휴가’ 작전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지상의 지옥을 연출한 신군부는 어떻게 해서든 광주항쟁을 김대중의 음모와 공작으로 엮으려고 발악했고 이후 일부 비호남인들의 호남 모멸과 박해의 역사는 그 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이들이 호남을 정치권력 장악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데는 호남이 끈덕진 저항의 역사를 가지면서 경제력에서 약하고 또 역사적 투쟁에서 싸움의 좌절과 처절함에 익숙해져 있고, 좌절 속에서 체념을 체득해 왔기 때문이라 판단해서였다.

운동권을 제외한 일부 비호남 지역 사람들의 호남인들의 한에 대한 모진 모멸과 박해는 우리 정치사의 정당구조를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고 싹쓸이 몰표 현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호남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자질과 함량 보다는 정당만 보고 찍고 마는 ‘묻지마 투표’로 일관하게 되었다.

리영희 교수는 언론인 출신이자 민주화 지도자이다. 리 교수가 1974년 6월에 쓴 ‘전환시대의 논리’는 1978년까지 9쇄가 나왔다.. 이 책은 당시 운동권에서는 ‘전논’이란 줄임말로 불러졌고 대학가에서는 학생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중에 필독서로 인식되었다. 민주화를 외치다 연행된 학생들은 모두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 교수는 1980년 5월의 소용돌이 속에서 2개월간 남산 지하실에 감금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민주 인사 리영희는 수많은 운동권 학생들과 민주 인사들에게 등대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의 글과 말, 행동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가시밭길을 기꺼이 걸으려는 이들에게 큰 희망이자 위로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그가 민주인사들과 대학생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따뜻한 성품이었다. 그는 당시 글과 말은 ‘진보적’이었지만 실제 성품에서는 폭압적인데다 싸가지까지 없다는 평을 받아 온 일부 진보진영 인사들과는 확연히 구분된 존재였다.

민주 인사 이호철은 남산 지하 고문실에서 같이 지내던 리영희가 “어쩌다 얻은 오징어 다리나마 결코 혼자 먹지 않고 내 방으로 보내 오곤 했다”면서 “그 형님같은 따뜻하고도 인정스러운 마음씨는 평생 지울 수 없는 귀한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회상했다.

80년대 학생들은 1977년에 발간된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을 읽었고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민주주의적 시각을 갖게 되었다. 80냔대에 불타올랐던 학생운동의 대열에는 리영희와 닮은 분신들이 대거 등장해 영화 ‘1987’을 있게 했다.

극장에서 영화 ‘1987’를 관람한 동시대의 대학 친구들은 어떤 회상이 들었을까. 벅찬 감동으로 눈시울이 붉어졌다고들 한마디씩 전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아직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갈 길이 멀다고 덧붙여 강조한다. 바로 대한민국 ‘정치’가 그렇다는 것이다. 2018년에 들어 선 우리 대한민국 정치는 비로소 문재인이라는 희망의 아이콘을 마주하게 되었다. 문 대통령의 리더십을 떠올릴 때면 자꾸 리영희의 ‘오징어 다리 하나’가 오버랩 된다. 따뜻하고 자상한 품성의 소유자! 이런 리더를 주변에서 많이 보고 싶다.

김현석 기자  arguskim@outloo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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