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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기획된 국가 폭력에 맞선 5․18 광주민주화운동-송기숙, 『오월의 미소』송은정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너희는 어느 나라 군대냐?”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으로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협을 당할 때는 대항할 도리가 없이 공포감에 휩싸이게 된다. 공포가 아닌 분노와 저항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적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게 해야 한다. 무차별 가해지는 총격에 이해할 수 없는 광주 시민이 던진 “너희는 어느 나라 군대냐?”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적을 가시화하려는 맞섬의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일어났다. 전두환을 위시로 한 신군부 세력과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항거한 사건이다.

 ‘비상계엄 철폐’, ‘유신세력 척결’ 등의 외침은 당시 정부에 의해 간첩의 사주로 일어난 폭동이거나 빨갱이들의 난동이라니 하는 말로 왜곡되었다. 이후 1985년부터 이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이 출간되며 80년 5월 광주의 참상들이 알려지고, 진상 규명을 위한 움직이며 본격화 되었다. 그로부터도 10년이 지난 1995년에 '5.18 특별법' 이 제정 되었으며, 1997년부터는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5.18은 <화려한 휴가>라는 당시 작전명을 제목화 한 영화와 지난해 여름 개봉해 관객몰이를 한 <택시운전사> 같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국민의 인권과 국가 권력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장편소설 『오월의 미소』의 작가 송기숙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본말을 목격하고 이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꾸준히 활동을 한 작가이다. 1935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1966년 단편 <대리복무>, 장편 <자랏골의 비가>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부터 전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과 교육운동에 참여하며 두 차례 옥고를 치러야 했다. 1984년 전남대학교 교수로 복직했으며, 1987년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창설하여 5. 18 진상 규명 등에 적극 나선 작가이기도 하다. 단편 <재수없는 금의환향>, 동학 장편 소설 <녹두장군> 등을 펴내면서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금호예술상, 요산문학상 등을 수상한 장흥이 배출한 걸출한 작가 중 한 명이다. 

『오월의 미소』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17・8년 후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담은 소설이다. 1980년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지고, 광주에서는 대학생들이 데모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수대원들이 광주에 투입된다.

“고정간첩과 빨갱이 등 불순분자들 주동으로 일어난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라는 명령에 공수대원들은 거침없는 행동을 자행했다. 당시 남녀를 가리지 않고 발가벗겨 곤봉을 휘두르는 등의 폭력과 총구를 공중으로 향하는 사병들에게 폭력과 강압으로 시민들에게 정조준 하도록 했던 공수단 장교들의 무자비함 등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당하기만 하던 시민들을 시민군으로 무장하게 했고, 야만적 폭력 앞에서 시위대가 아닌 노래들로 맞서는 군중으로 뭉치게 했다. 공수단은 진압 뿐 아니라 이후 자신들이 행사한 폭력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문을 이어갔다. 

그날부터 날마다 ‘통닭구이’ ‘물고문’ ‘송곳찌르기’ 등 갖가지 고문으로 밤이 새고 날이 갔다. 유일한 바람은 이대로 숨이 끊어져버렸으면 하는 한가지뿐이었다. 전등불 꺼지듯 딸깍 숨이 멎으면 얼마나 편할까?(135쪽)

지난 달 말 당시 가두방송을 진행했던 차명숙씨가 당시 수감되어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고 폭로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 가두방송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되어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은 확성기를 통한 한 여인의 목소리가 어두운 골목 안에 울려 퍼지는 장면이다.

신군부는 야만적 폭력을 통해 불안과 공포를 심어준 후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복종이 아닌 저항으로 맞서며 스스로의 목소리가 울려나가게 했다. 시민군은 노래로 맞서다가 자발적 모금으로 확성기를 구입한 것이었다.

폭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민중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노래와 확성기라고 할 수 있다.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복종을 요구하는 국가권력에 맞서서 침묵이 아닌 목소리를 내면서 존재를 확인하려 했던 시민들의 저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진실의 소리가 아닌 거짓으로 사실을 은폐하려던 대상에 대해 단죄하겠다는 결의이고, 작품 속에서 MBC 방송국을 불태우는 행위 등으로도 강조된다. 

『오월의 미소』는 이 같은 뼈아픈 역사와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치유에 대한 고민들이 드러난다. 방식은 두 가지이다. 보복과 화해이다. 보복은 작 중 인물 김중만이 17년이 지난 후  ‘전두환 일당을 사면한다고 나팔 부는데 그 자식들 사면만 하면 대번에 갈겨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당시의 가해자였던 하치호를 살해하고 방식으로 실현된다. 화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저승혼사굿이다.

5・18 때 공수단 장교로 참가한 가해자인 김성보와 공수대원들에게 겁탈을 당하고 아이까지 낳은 피해자인 김영선 두 사람의 영혼 결혼식이 치러진다. 이들은 모두 소안도에서 사고나, 자살로 죽은 이들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표격인 이들의 영혼의 결합으로 치유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김중만이 시도한 폭력으로 잘못을 인정하게 하고 용서를 구하게 한다는 목적은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 폭력을 통해 가해자가 얻을 깨달음은 찰나이거나 확인할 길이 쉽지 않다. 폭력의 끝은 가해자의 즉각적인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응징의 폭력을 각오하고 그것의 실행을 위해 기다린 17년의 세월 역시 그에게는 치유가 아닌 또 다른 통증과 상처의 연속일 뿐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죄에 대한 단죄 없는 무조건적인 용서가 진정한 화해가 될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일 수밖에 없다. 또 다시 5월 광주의 저항의 함성을 상기해야 하는 이즈음이 우리에겐 아픔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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