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정 (순천대 외래교수)
1960년의 4·19 혁명. 시민의 힘으로 독재자를 끌어내린 역사적인 그 혁명이 일어났던 날이 다가오고 있다. 4·19혁명을 문학으로 형상화 한 대표적인 작가는 시인 김수영 (1921년 11월 27일 ~ 1968년 06월 16일)을 들 수 있다.
김수영은 1930년대 모더니즘의 탈정치성과 형식주의를 구현한 시인으로, 1940~50년대 모더니즘의 추상적 비판의식과 지성 결핍을 극복한 시인으로, 1960년대는 ‘풍자와 해탈’의 실천과 산문을 통한 ‘현대성’ 쟁취투쟁을 한 작가로 평가된다. 특히 1960년 4·19 혁명을 경험하고, 이 역사적 사건을 시에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저항시인의 대표로 남았다.
김수영의 4·19 혁명 직전의 시는 자본주의 사회와 왜곡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거대 담론이 아닌 먹고 사는 문제에 사로잡혀 고뇌하는 소시민으로서의 자신, 시인의 삶을 솔직하게 그려내며 고뇌하곤 했다. 그 배경에는 이승만 정부의 부패한 통치가 있다. 이승만 정부는 1955년 사사오입 개헌을 시작으로 56년에는 장면부통령 저격 사건, 58년 조봉암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진보당간첩사건 조작, 보안법 제정, 59년 경향신문 폐간 등 영구집권을 위한 반민주적 행위들을 잇달아 일으켰으며, 60년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 선거를 자행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1960년 4·19 혁명으로 12년간의 자유당과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것이다.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김수영
(전략)
너도 나도 누나도 언니도 어머니도
철수도 용식이도 미스터 강도 유중사도
강중령도 그놈의 속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무서워서 편리해서 살기 위해서
빨갱이라고 할까 보아 무서워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편리해서
가련한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서
신주처럼 모셔놓던 의젓한 얼굴의
그놈의 속을 창자 밑까지도 다 알고는 있었으나
타성같이 습관같이
그저그저 쉬쉬하면서
할 말도 다 못하고
기진맥진해서
그저그저 걸어만 두었던
흉악한 그놈의 사진을
오늘은 서슴지 않고 떼어놓아야 할 날이다
밑씻개로 하자
이번에는 우리가 의젓하게 그놈의 사진을 밑씻개로 하자
허허 웃으면서 밑씻개로 하자
껄껄 웃으면서 구공탄을 피우는 불쏘시개라도 하자
강아지장에 깐 짚이 젖었거든
그놈의 사진을 깔아주기로 하자.......
민주주의는 인제는 상식으로 되었다
자유는 이제는 상식으로 되었다
아무도 나무랄 사람은 없다
아무도 붙들어갈 사람은 없다
(후략)
<1960. 4. 26. 이른 아침>
김수영은 누구보다 들떠 4·19혁명에 의미를 부여하며 시를 썼다.「기도」, ‘4·19순국학도 위령제에 부치는 노래’라는 부제목의 시에서도 혁명의 뜻을 실현하기를 바라는 바람이 간절함을 확인할 수 있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 꽃을 꺾는 마음으로 /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후략) <1960. 5.18>”
그러나 한 달여가 지난 이후부터 혁명의 완성이 어려워지고 있는 정치적 현실에 좌절하기 시작한다. 「육법전서와 혁명」에서 ‘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 혁명이란 /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 불쌍한 백성들아 / 불쌍한 것은 그대들뿐이다 /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뿐이다’와 같은 구절을 통해 혁명 이후의 실현 방법에 회의를 드러내며 “혁명이란 말을 걷어치워라”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혁명은 순간이 아니라 늘 새롭게 폭발하며 실천해야 할 지속태인 것이다.
김수영의 좌우명은 상주사심(常住死心)이었다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늘 죽음을 기억하라는, 생의 한 가운데에서 늘 죽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죽음을 의식할 때 타성에 젖지 않고 순간순간 폭발적인 생명력을 발산할 수 있다. 김수영의 이런 삶의 자세는 그의 ‘온 몸 시학’에 그대로 녹아 있다. ‘온 몸 시학’은 그의 시에서는 격렬하면서도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산문에서는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전달되면서 인간 김수영의 내면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세상을 향해 온 몸으로 밀고 나아가며 곧은 소리를 뿜어내며 권력에 대해선 ‘불온할 자유’를 주장하였고, 문단의 동료작가들에게는 현대적 지성과 양심을 촉구하였다. 김수영은 시의 내용과 형식을 기존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한 부단한 시적 자유를 이행하고, 이를 통해 현실적 자유를 확보하며 민족사의 혁명까지 이끌어 내기를 바란 시인인 것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온 몸으로 보여주었다. 하루하루 삶의 나날은 지갑에 얽매인 쪼잔한 소시민의 과정을 지날 수밖에 없지만, 그 최선을 다하는 일상이 혁명의 순간이 될 수 있게 마지막인 것처럼 열정적으로 부서지며 자유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이다.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지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1960. 6.15>
(2018.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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