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정 (순천대 외래교수)

노랑이와 복술이.

“알겠지만 나는 노랑이와 복술이 놈을 구해 내야 했었어. 그 개백정들로부터 말이야.”

경북 영천의 기온이 40도를 넘어섰다는 소식과 함께 폭염으로 인한 기록들이 연일 갱신되고 있는 요즘이다. 삼복더위에 너도나도 지쳐가니, 돌아보고 챙겨야할 할 존재들도 많다. 노랑이와 복술이, 동네 골목마다 어슬렁거리던 흔한 개들의 이름이다. 개들은 이 삼복더위를 가장 두려운 때로 알아야 할 존재들로 여겨졌던 때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반려견으로 보는 동물 보호 단체들과 식용을 위한 가축으로 키우는 이들의 갈등이 이슈가 되고 있다.

개.

인간 곁에서, 가장 친밀하게 가족처럼 자라기에 개는 우리 스스로를 비유할 때 동원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을 개에 비유할 때 그것은 가장 하찮은 존재에 대한 비유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인간들에게 개가 만만한 존재로 무시당하듯이, 인간이 거대한 운명, 자연 혹은 역사 앞에서 한없이 연약하고, 고통 받는 불쌍한 존재가 될 때 우리는 누군가의 눈에 비친 개처럼 보일 것이다.

문학은 이 같은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 앞에 닥치는, 우리에게 주어지며, 우리를 벗어날 수 없게 사로잡는 고통의 원인들과 그로 인해 인간들이 구체적인 삶 속에서 절감하는 아픔들을 드러내놓는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가장 먼저 상처받고, 눈물짓는 제일 연약한 이들, 벌레 같거나 개 같은 존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을 똑바로 보고, 기억해내고, 말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무한반복하며 재생되는 아픔을 견뎌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 이청준은 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말할 수 없다고 말하고자 하는 역설의 진술을 멈추지 않은 작가이다. 특히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여순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을 자를 찾아내는 편 가르기와 서로에 대한 손가락질과 같은 우리 민족의 모순의 역사가 그의 작품 속에서는 끊임없이 되새김질 된다. 담장을 맞댄 채 이런저런 사정을 내보이며 사는 이웃들끼리 서로에게 준 상처는 두고두고 이들 스스로를 가해자로, 혹은 피해자로 몰아갔다. 이 아픔의 시절을 난 이들은 그 지워지지 않는 기억 속에서 서로에게 떳떳할 수 없는 불안한 죄의식을 갖고 살아내야 했다. 이런 사정들을 다룬 이청준의 소설은 「개백정」,「지하실」, 「숨은 손가락」,『흰옷』『그곳을 다시 잊어야했습니다』 등이다.

「개백정」,「지하실」과 같은 작품은 작가의 경험을 따라 어린 소년의 눈과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거대한 폭력적 사건 앞에 놓인 어찌할 도리가 없는 힘없는 연약한 인간들의 모습을 여실히 표현하게 된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제시대 유복한 생활을 했던 것이 죄가 되어 인민군에게 죽음을 당한 외가 일족. 그 중 목숨이 채 끊어지기 전에 시체 구덩이에 내던져진 외숙모는 아이러니하게도 "인민군 만세"를 부르며 죽어간다. 반대로 인민군에 부역했다며 국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는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목숨을 구걸하다 죽는다. 자신들을 죽음으로 모는 존재에게 마지막까지도 생명을 구걸하기 위한 것이든, 스스로의 소신을 드러내며 억울함을 표현한 것이든 모두 개 같은 경우인 것이다.

「개백정」은 이청준의 이 외가 일가의 죽음과 그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외종형에 대한 생사를 염려하는 초조함이 쉰 줄에 들어선 과부인 어머니의 행동과 그를 지켜보는 어린 소년 화자를 통해 그려진다. 동시에 마을에 떨어진 개가죽 공출(이는 일제 강점기였던 37년경에 일제가 군수물자의 한 방편으로 가죽의 필요성 때문에 시행된 바 있다.) 명령에 초조하게 노랑이와 복술이라는 두 마리 개를 지키려는 소년의 마음이 우회적인 주제 전달의 역할을 한다. 이편과 저편을 가르는 전쟁이라는 폭력적 현실 앞에 놓인 개같이 연약한 인간 존재, 각자 목숨을 연명하고, 누군가의 생명을 지켜내려 하지만 어떤 것도 뜻대로 하지 못한 힘없는 미약한 존재들의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특히 어머니와 누님)은 놈들을 대견해 하기보다는 역시 재롱둥이로만 여겼지. 놈들은 처음부터 재롱이나 부리고 귀염을 받기에 알맞게 태어난 것 같았어. 여느 강아지들 같으면 아직 훨씬 더 자랄 수 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놈들은 중개 요량이나 되어서부터는 영 더 자라지를 않더군. 언제나 고만한 몸집으로 재롱이나 부리고 지냈어. 그 몸집에 재롱이 꼭 알맞았거든. 그래서 놈들이 하는 짓은 뭣이나 재롱으로만 보였지. 좀 더 지나서 놈들이 이젠 댓돌에 의젓이 버티고 앉아 사립 쪽의 인기척에 목청을 돋워 컹컹 짖어대거나 기를 쓰고 쫓아 나가거나 해도 그게 우리에겐 여전히 재롱으로만 여겨졌지.

이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연약한 존재가 결국 두 마리 모두 차례로 희생된다. 그중 뒤늦게 죽은 복술이는 개가죽 공출 할당량이 다 채워진 가운데서도 이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이 뱃속을 채워줄 고기를 얻어내겠다는 탐욕을 부려서 죽게 된다. 게다가 비가 오는 날 몽둥이에 맞은 복술이는 피투성이인 채로 도망쳐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아연실색하게 하고, 결국 가족들에게도 내쳐지는 고통까지 안고, 가마솥에서 펄펄 끓게 된다.

고통스런 역사의 기억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에 대한 문제의식과도 연결되며 현재화 되고 있다. 펄펄 끓고 있는 여름날의 고통보다 더 처절한 기억들을 안고 사는 이들, 개백정의 손에서 지켜내고, 구해냈어야 하는 노랑이와 복술이의 이야기, 결국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 이들의 아픔과 죄의식.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비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잔인하게 짓밟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개와 같아지는 일이다. 우리는 그런 역사를 지나왔다. 여순사건 발발 70주년이 되는 올해, 앞으로 이와 관련된 문학작품들을 계속 소개하며 화해와 상생을 위한 모색을 해 볼 예정이다. (2018. 7. 25.)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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