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정 (순천대 외래교수)

7월 23일 한국의 지식인 소설가로 치밀한 사유의 화두를 건낸 최인훈이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같은 날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1936년생 최인훈과 스무살 터울인 1956년생 노회찬이 그 어느 해 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7월의 여름날 세상을 뜬 것이다.참 슬프고, 충격적인 날일 수밖에 없었다.

최인훈은 ‘광장’이나 ‘회색인’이란 대표작이 그러하듯 한국 현대사의 화두와 난제들에 대해 고독한 암중모색을 거쳐 문학적으로 형상화해냈다. 전쟁과 분단, 불합리하고 모순에 찬 우리의 정치 현실 속에서, 거대사와 개인의 미시사 사이에서 고뇌하고 좌절하는 개인은 끊임없이 바른 가치 판단과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는 역사적 현실 앞에서 선택이 강요된다. 대의를 위한 광장에서의 분명한 행동과 참여의 촉구, 개인의 사랑과 욕망을 지키고 싶은 동굴에의 갈망 사이. 전쟁 포로로 잡혀 남과 북, 혹은 중립국으로의 소환에 대한 선택 사이. 이편과 저편 선택의 당위. 언제나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결국은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들. 그 선택은 그들이 회색분자이거나 회의론자 혹은 허무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어떤 폭력적 힘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또 어떤 억압적 힘도 구가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일 수 있다.

최인훈 소설 속 인물들은 결코 강인하지 않다. 그들은 흔들리며, 괴로워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인으로서의 의지를 관철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흔들림은 자유를 억압하는 세상 속에서 자유의 조건에 대한 모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회찬은 1970∼80년대 노동운동을 시작해 평생 노동자의 편에 선 정치인이었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편에서 웃음으로, 부드럽고 쉬운 말로 그들의 형편을 대변하고자 했던 이. 결국은 견딜 수 없는 무언가의 압박과 힘 앞에서 몸을 던져버린 그의 결연한 선택.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문제에만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의 삶, 세상의 문제, 체제의 모순 역시 나의 것으로 온전히 사랑했다는 것이다.

최인훈의 ‘웃음소리’라는 단편은 유명하다. 암울한 자신의 현실과 실연의 아픔 때문에 자살을 결심하고 P온천지를 찾은 여인. 죽을 자리를 찾아갔다가 남녀가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본다. 다음 날도, 다음날도 그 여인에게 두 사람은 행복해 보이기만 한다. 실제는 그 두 남녀는 이미 일주일 전에 죽은 시신들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분명 누워있던 여인의 웃음소리를 생생하게 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눈으로 분명히 보고,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과는 다른 것이었다.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정작 그것은 그녀가 진정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들이었음을 확인한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함이었다는 걸 깨닫게 하는 것이다.

힘겨운 현실의 억압과 폭력 앞에서 문학으로 타파해 가보려 했던 소설가 최인훈과 노동자의 편에 섰던 정치인 노회찬은 과연 줄창 무엇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현실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었을 것 같은 두 사람. 세상과 현실에 산재한 문제들과 어려움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던 사랑의 마음을 가진 두 사람. 그들이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힘을 내어 믿고자 하는, 들리지 않지만 생생하게 듣고 싶어 한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우리들이 듣고 싶은 것을 그들은 더 분명하게 믿었던 이들일 것이다. (2018.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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