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정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우리의 삶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삶을 삶답지 못하게 하는 모든 비인간적인 풍습과 제도와 문물과 사고를 통틀어 우리 삶을 억압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삶을 동물과 다른 진정한 것으로 삼기 위해 문명을 발달시켰고, 서로를 배려할 수 있도록 질서와 체계를 잡아왔다. 그 질서와 체계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우리는 서로에게 비판과 질시의 시선을 보내며, 어긋난 행동들은 다시 법이나 질서의 체계로 편입시키기 위해 또 다른 질서의 판을 짜기도 한다. 근대 국가에서 인간은 벌거벗은 생명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 태어나는 것도 국가의 출산 정책에 따르며, 양육이나 보육에 관한 것들, 인간성을 키우는 교육도 국가 정책에 맞춰서 국민으로서의 요건을 갖추도록 되어 있다. 건강이나 개인적인 취향이나 정체성도 온전히 개인이 자유에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관습이나 제도는 물론 국가 정책에 맞춰 개선되거나 조율해야 하거나 통제되며, 허용의 선도 정해진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 정치의 영역에서 다뤄지게 되었다. 푸코는 이것을 생명정치라고 말한다.

이런 근대 국가에서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으며, 개인의 개별성을 지켜낼 수 있을까?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세워진 체계들은 모두 국민의 투표에 의한 동의를 얻은 것이라는 정당성을 획득하면서 전적인 당위성과 권력을 지니고 있다. 법규나 규범들은 민족이라는 특수성, 각각의 집단이 가진 부분적인 특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들일 수 있지만 그것은 일반 모두에게 포괄적으로 적용되면서 배제와 소외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굳건한 체계와 당위들 앞에서 이 법의 테두리 밖에 있던 이들은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 힘없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말할 수 없으니 그들은 없는 것처럼 취급되며 여전히 그 부분적이고 특수한 것들을 중심으로 한 법은 언제나 절대적이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절대적이고 억압적인 비인간적 풍습이나 제도와 문물과 사고들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권력의 유지를 위한 정치적 담론이나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들이 배태하는 모순과 부조리에 눈감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러한 체제들 앞에서 처절하게 실패를 절감하는 이들이며, 자신 뿐 아니라 그 실패한 다른 이들의 아픔을 내재화하는 존재이다. 그들은 문학을 동원해 자신과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복수를 시행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청준은 「지배와 해방」이라는 소설을 통해 스스로의 작가관을 피력한다. 이 소설을 통해 이청준이 자신의 문학을 통해 이뤄보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청준은 자신을 포함해 실패한 이들의 모습을 부끄러움, 주눅 들림, 가위 눌림의 상태로 표현한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 질서 지워진 것들은 하나의 당위로 자발적 순응이나 무선택적 적응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게 한다. 그 정도는 견뎌내고 인내해야지라는 묵시적인 억압이 도처에 존재한다. 스스로도 자기 검열을 통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부끄러운 주체들은 고개 숙이고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주눅 들린 채 주위의 비난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의 존재를 점점 지워가고 감춰간다.

가위 눌림이란, 의식은 뚜렷한데 자신의 육체에 명령을 내리거나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상태이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있다. 육체는 살아 있으나 살아있음을 증거 할 수 있는 어떤 행동이나 말도 할 수 없다. 영혼은 있으나 그를 드러낼 신체와 연결될 수 없으니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니 있음을 증거 할 수 없는 사라진 상태일 수밖에 없다. 즉 심각한 자기 부재의 상태이다. 체제에 순응하게 되면 자신의 의식을 부재상태로 두어야 하고, 순응하지 못하면 옴짝달싹 못하게 몸이 묶이니 육체의 부재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이청준은 이 체제들의 강력함을 전짓불 공포로 표현했다. 모든 것이 노출되고 감시당하면서, 불빛 뒤의 권력자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사라져버렸으면 하고 바라기만 하는 주눅 들릴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 주목한다. 이청준은 이들을 구원하는 방법, 사라져버리기만 바라는 이들을 다시 불러와 스스로를 증거 하게 하는 복수를 문학적으로 모색한 작가이다. 이청준은 스스로 그것을 씻김질로서의 소설이라고 말한다. 삶의 생기를 잃은 이들에게 ‘본래의 자유롭고 화창한 삶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고자 한다.

그의 복수의 방법은 자신을 증거 할 수 없으니 우선은 적의 정체, 견고한 담론과 체제가 내포하고 있는 불합리함을 폭로하는 방식이다. 그를 위해 이청준은 끊임없이 말하기를 시도한다. 진술 공포증을 느끼지만 진술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같은 메타포를 가지고 매번 다른 작품으로 그것을 다시 말해보려고 한다.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어 침묵하게 되는 수밖에 없어질 때까지 더, 더, 더 말하려고 한다. 그것은 결국 잘못말하기일 수밖에 없더라도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을 매번 다르게 바라보고, 그것이 가진 균열의 지점이 무엇인지를 폭로해서 그 정체를 똑바로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복수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배까지 나아가야 한다. 자신을 옥죄는 질서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창조와 확대를 통해 적들마저 새로운 질서로 편입해 들이겠다는 작업이다. 이때 새로운 질서는 곧 자유의 질서이다. 이청준은 “자유의 질서야말로 우리의 가장 크고 깊은 삶의 진실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 개인의 것만이 아니라 독자들의 삶에 깊이 관계되는 것, 인간들의 삶의 진실과 맞닿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의 더 자유로운 삶, 보다 더 풍족하고 의롭고, 정직한 삶, 더 사람다운 삶과 관련된 자유의 질서일 것이다.

이청준은 어린 날 좌우 이념 갈등으로 생목숨을 죽이고 죽는 일들 앞에서, 국가 보안법이나 유숙계 등을 통해 신체와 정신마저 규율화하고 억압하는 국가 권력의 작동 앞에서, 지독한 가난 때문에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게 하고, 무의미한 노동으로 삶을 갉아먹게 하는 자본의 논리 앞에서 늘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던 작가이다. 생의 활기를 앗아가는, 살아있어도 진정 살아있다고 할 수 없게 만드는 억압들 앞에서 모두를 살리는 씻김질을 하고 싶어 했다. 부끄러워하는 주체가 아니라, 위대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해도 각각의 자유를 성취한, 자신의 삶의 진실을 지켜나갈 수 있는 ‘키 작은 자유인’을 꿈꾼 작가이다.

깊어가는 가을, 조락을 앞둔 것들의 마지막 화려함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존재는 스스로를 이렇게 증거 한다. 그리고 미련 없이 사라진다. 자기 증거는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단계이지만 그것을 영원히 지속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학이, 한사람의 진실이 굳어지고, 공고해져서 또 다른 것을 억압하는 기제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각각의 자기 진실을 반짝 빛낸 후에 자연의 전체성 속에서 흔적으로 남는 어떤 작용들만을 하고 기꺼이 사라질 수 있어야 한다. 이청준은 자신의 문학 역시 해체해버리려고 한다. 매번 결론은 다시 원점의 질문으로 돌아가고, 이야기는 되풀이되고, 답을 낼 수 없는 난제들만 다시 내어놓고 사라진다. 자신의 문학은 떠도는 말, 소문으로나 풍문으로 전해져, 듣는 이들의 마음에 자유의 씨앗 하나 뿌리고 사라지길 바라는 것이다. ( 2018. 11.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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