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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26> 망각했으므로 세월이 가도 무엇 하나 구하지 못했구나임성순, <몰 : mall : 沒>

송은정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이라고 했다. 망각하지 못하면 가라앉을 수밖에 없음에 대한 니체의 생각이었으리라. 그러나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했듯이 죽어버린 신의 축복이란 어쩌면 저주일수도 있다. 우리는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마저 잊어버림으로 인해 자유로운 인간으로 가는 길에서 그만 발목을 잡혀 주저앉고 가라앉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임성순의 <몰 : mall : 沒>은 가라앉음에 대한 서사이다. 가라앉음은 피치 못하게 우리에게 참혹한 하나의 침몰을 떠올리게 한다. “망각했으므로 세월이 가도 무엇 하나 구하지 못했구나”라는 말은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침몰사고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가운데에 위치한 ‘mall’이란 쇼핑몰을 말함이고, 소설 속에서 구체화되지는 않지만 ‘삼풍백화점’을 뜻한다. 1995년 6월 29일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이 기억들의 소환으로 우리가 침몰시키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환기시키는 소설이다.

소설의 서술자는 전역한지 6시간 만에 인력회사를 찾아 일자리를 찾는다. 재개발지역에 사는 서술자의 누이 역시 학교의 한 학기를 마치지 못한 채 아파트 입주를 위해, 동생의 대학학비를 대기 위해 이른 아침 나가 새벽에서야 돌아오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서술자는 아버지가 아파트 분양권을 얻기 위해 매달리다 죽자 군대를 갈 수밖에 없었다. 이 빈곤한 삶을 벗어나는 것이 인물들에게는 절대적인 과제이다. 그들에게 먹고 살 길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사이다.

전역하고 일을 하는 중에 백화점이 무너졌고 같이 일하는 이들에게 걱정거리는 무너진 백화점보다 관련된 중견 건설사와 하도급 업체들이 연쇄 도산할 것이라는 소문이 더 걱정이다. 그렇게 되면 당장 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들부터 먹고살 길이 막막해질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었다. 그런 서술자가 오늘 도착한 노동 현장은 쓰레기 산인 난지도이다. 이곳에 트럭들이 와서 버리는 것은 삼풍백화점 잔해들이고, 주어진 일은 이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시신과 유품을 수습하는 일이다. 한여름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노동자들이 주어진 일과 별도로 함께 챙기는 것은 금가락지와 귀금속 금시계 따위이다. 앞뒤 주머니가 불룩하게.

 

눈앞에 당장 보이는 금붙이 몇 개만 주워도 방학 내내 짊어져야 할 벽돌이 수만 개는 줄어들 터였다. 주인은 없었다. 이제 매몰되어 사라질 것이었다. 불편한 것은 얄팍한 양심과 알량한 자존심뿐이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감시자들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표정만 짓고 있다. 저기서 줍게 되는 금붙이들은 공짜가 아니었다. 그것은 침묵의 값이었다. 오늘 보고 겪을 일에 대한 비밀을 묶을 오랏줄이었다. 아무것도 줍지 않은 내게까지. 비밀은 무거웠으므로 갑자기 손목이 저렸다. (「몰 : mall : 沒」, 『2018 올해의 문제 소설』, 한국현대소설학회, 푸른사상, 241쪽)

 

서술자는 잔해 더미에서 쑥 튀어나와있는 팔을 발견한다. 누이의 손 같았다. 봉숭아물을 들인 손톱이 보인다. “어쩌면 늦지 않았는지도 몰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거는 심정으로 틈 사이로 나온 손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것은 손만 쑥 올라왔다. “잡았어요! 손을 내밀어서 내가 잡았다고요!” “근데, 구할 수가 없어요……. 손을 잡았는데…… 왜? 왜?” 절망감이 뜨겁게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난 그저 죽은 이의 손을 발견했다. 내 일이었고,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이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은 철거된 담배가게나, 무너진 백화점처럼 산산조각 나버린 채 쓰레기 섬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243쪽)

기다리라 해 기다렸고, 잡았으나 구하지 못한, 내 누이였고, 가족이었고, 내 아이, 혹은 나 자신이었을지 모를 꽃 같은 손이었다. 움켜잡았으나 스르르 빠져나가버린 차가운 손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망각했으므로 세월이 가도 무엇 하나 구하지 못했구나. (245쪽)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 세계가 나에게 훅 들어온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이 사건들 앞에서 눈 감지 않아야 하고, 제대로 보고 기억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망각으로 인한 똑같은 죄를 반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았다가 컵라면을 먹었다는 교육부 장관, 그날 밤 광화문 서울청사에서 야근 끝에 치킨을 시켜먹었다는 안전행정부 장관 등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들, 노래방에 간 한 언론사 사장 후보는 징계를 받거나 질타를 받는다. 우리가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한 뼈아픈 각인의 제의일 것이다.

한 달 전 70년이 지난 기억을 소환하기 위한 ‘여순 10·19 특별법 제정을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시작되었다. 한 달이 지난 며칠 전 ‘한 달 안 20만 서명’이란 목표에 턱없이 모자란 숫자로 운동을 펼친 이들에게 참담함을 가져다주었다. 아직도 ‘반란’이라는 잘못된 기억의 고정 장치는 풀리지 않고, 가라앉은 자들의 침묵은 말이 될 수 없는 것만 같다.

망각도 죄악이지만, 가해자들이 만든 잘못된 기억을 그대로 체화한 채 오해를 계속하는 것은 방관자에 머무는 것을 넘어 또 다른 폭력에 가담자가 되는 일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무력했음과 공포로 침묵했음에 대한 부끄러움을 고백해야 한다. 그때 침묵했음으로, 진실이 무엇인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자기 생존을 위해 고개 돌렸던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후로도 주어진 죄목을 목에 걸고 가라앉아 살았음을 증언해야 한다.

최초로 시작한 이들의 거역의 정당성을 굳이 따지고 역설하겠다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문제는 그 이후 부당한 정권이 그들의 치부를 가리고,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행한 무자비한 학살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어떠한 저항 없이 지속했던 잘못된 기억의 덧씌움 작업이다. 권력의 폭력성 아래 침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말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국민청원운동은 실패가 아니고 시작이다. 권력자들이 휘두른 이데올로기 담론이 만든 거대한 올가미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현재성을 확인하는 데 성공한 운동이다.

실패만을 기억하면서 다시 가라앉아서는 안 된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힘없는 이들을 침잠시키는가이다. 우리가 저항해야 하고, 또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억의 성찰이다. (2018. 11. 21.)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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