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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29> 살랑거리는 바람이 지나는 푸른 긍정의 채소밭신병은 『휴(休) 쉬다』

송은정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겨울, 아침 생각

신병은

말끔히 쓸어낸 마당 넓은 아침이면 좋겠다
햇살 닿은 산마루에 모여 앉은 키작은 바람소리면 좋겠다
엊저녁의 눈물 자국 피어난 해맑은 웃음이면 좋겠다
희뿌연한 눈빛으로 그대 바라보는 여유면 좋겠다
그대 아침을 위한 나의 기지개면 좋겠다
가만히 다가와 귓불에 풀어놓은 입김이면 좋겠다
몸살 끝에 밀려온 살가운 그리움이면 좋겠다
제 혼자 불쑥불쑥 키를 세우는 사랑이면 좋겠다
그대 기슭에 숨어 그대 생각 엿보는 겨울잠이면 더 좋겠다


  2019년 새해, 새해를 시작하면서 그대에게 축복하며 함께 나누고 싶은 시를 옮겨 적다가 저도 모르게 시에 물들어간다. 시가 내어 준 영혼 한 조각의 흔적에 힘입어 당신의 한해도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탄탄하게 다져진 그대의 마당에서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새로 시작하는 새해.
  따스한 햇살 아래 서로와 손잡고 함께 하는 해.
  지난 어려움이 보람으로 보상받는 나날들.
  비판의 눈길이 아니라 감쌈의 눈빛으로 풀어지는 따뜻함.
  매일 아침 새롭게 힘을 내며 누군가에게 기운을 북돋워주는 에너지.
  따뜻하고 부드러운 다가감으로 소통하는 그대.
  잘 견뎌낸 이후에 간절했던 것들을 마주할 수 있는 흐름.
  애 쓰지 않아도 사랑의 열정에 성큼 자라나는 인생.
  서로의 가슴 한켠에 편안함으로 깃들어가는 관계들.

  여수의 시인 신병은은 곱슬머리를 가볍게 나풀거리며 경상도 말을 쓴다. 보조개가 생기는 미소로 가만가만 말하는 그는 아마도 초록의 식물들과 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하다. 그의  <바람과 함께 풀잎이>, <강 건너 풀의 잠>, <식물성 아침을 맞는다> 같은 시집 제목도 그렇지만 실제로 그는 온갖 화초들을 재생시키고 키워내는 묘법을 알고 있어, 늘 생기 넘치는 초록 사이에 앉아있다.
  그의 시는 풀잎처럼 가볍게 살랑거리거나 햇빛에 반짝이는 초록잎처럼 가만가만 흔들리는 서술어들로 가득 차 있다.
  나도 숲이 되어 살랑거려요 / 나도 길이 되어 살랑거려요 (<살랑대다> 中) , 눈빛, 바람도 없는데 조금 흔들렸다 (<첫눈이었을까> 中), 붉은 꿈이 늦가을 햇살에 파르르 떨고 있었다 (<어느날 문득> 中), 생존의 무게중심을 허공에 가뭇없이 날리고 있다 (<군무>中), 연초록 잎새 혹은 홀씨 되어 떠돌던 바람의 기억을 / 다시 풀어 세우는 것이다 (<기억의 힘> 中)
 
  2013년 발행된 신병은 시화집 <休 휴-쉬다> 는 여수의 화가 이존립의 그림이 함께 실려 있다. 식물성 시인이라는 신병은의 시에, 초록을 기조로 한 ‘정원’시리즈로 숲과 정원의 그림을 그린 이존립의 그림이 더해진 시화집이다.
  쉬는 것은 따사로운 어딘가에서 가만히 등을 기대고 맞이하는 것이기를 바란다. 초점을 흐리고 목적 없이 있는 그대로의 순간에 필요한 만큼만 가만가만 꼼지락거려도 되는 것이 쉬는 것이다. ‘나’라는 것을 증거하지 않아도 되는 풀어지는 시간이며, 방심한 채 모든 것을 열어놓는 순간이다. 그래서 쉰다는 것은 내 안의 공간을 비움으로 충만하게 채우는 것이 된다.
 “시를 줍는다”는 시인은 그 쉬는 시간, 산책하면서 무심히 낙엽 한 잎 주어들 듯이 써낸 시들을 들려준다.
  2019년 새해에도 우리는 바람 자지 않는 정원에 있을 것이다. <바람과 함께 풀잎이>라는 시에서처럼 (바람과 함께 풀잎이 일어서고 있습니다 / 바람과 함께 풀잎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흔들고 흔들리면서/ 만들기도합니다/지우기도 합니다/바람과 함께 풀잎이 /바람과 함께 풀잎이/서로의 이마를 짚어 안부를 묻습니다) 어디에서건 바람은 우리를 흔들 것이다. 그대와 나는 그 바람에 일어서고, 살아가고, 지우기도 할 것이다.
  올 해 우리에게 부는 바람은 사랑일 것이며, 이마를 짚어 안부를 묻는 것일 터이며, 그저 살랑살랑, 신병은 시의 서술어들처럼 따스하고 가벼우면서도 맑고 투명한 바람이기를 바라본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의 채소밭처럼 ‘허공에서도 찬거리를 만들 수 있었던 어머니의 푸른 긍정’으로 살아내기를 기원한다. (2019. 1. 4.)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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