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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30>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한강, 「작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 작품집, 2018, 10월 발행)
송은정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1월 하순 천변 벤치에 앉아 깜박 졸다 일어난 그녀는, 그녀에게 생긴 일을 그저 난처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 난처한 일은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눈사람이 되면 어떤 점들이 난처해질까? 가장 우선한 것은 녹을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 녹음은 순전히 모든 따뜻한 것들에 의해서일 수밖에 없다는 슬픔을 동반한다. 따뜻한 공간에서 뒷걸음질 쳐야 하고, 그것은 누군가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탁에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눈사람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영하의 추운 바깥으로 불러내야만 마주할 수 있는데다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하고 껴안는 것은 자신의 사라짐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는 가혹함을 매 순간 자각해야 할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24살에 아이 윤이를 낳아 그 아이가 곧 고등학생이 되는 지금까지 10여년을 혼자서 키워온 그녀는 실직을 했다. 그녀 회사에 인턴으로 왔던 7살 연하에, 박사 과정을 그만둘 때까지 학자금 대출로 근근이 공부한 그녀의 연인도 장기간 실직 중이다. 그녀를 보기 위해 멀미를 감수하며 서울에서 근교 신도시로 광역버스를 타고 오는 연인을 기다리다 그녀는 눈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왜 눈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눈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눈사람이 된 그녀가 하는 행동들 하나하나는 모두 작별을 준비하는 것이 된다. 사랑하는 가난한 남자가 저녁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들 윤이에게 몇 년 전에 써놓은 유서를 읽으라고 말하고, 끝말잇기를 하며 눈물짓고, 껴안아주는 것,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멀어진 남동생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 떠올리는 것들은 작별의 수순을 밟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녀가 작별해야 하는 것들은 그녀가 따뜻한 사람일 수 있게 했던 일상들과 관계들이다. 그 무엇보다도 슬픈 작별이 될 수밖에 없게 하는 것들이다.

그 작별을 준비하게 만드는, 그녀를 사람이 아닌 스러져가는 차가운 눈사람이 되게 한 것들은 무엇이었나를 읽어내는 것이 이 소설을 이해하게 되는 지점이 될 것이다.

그녀는 언젠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보았던 나무늘보의 발톱을 떠올렸다. 그 긴 발톱들은 매우 날카롭게 휘어 있지만, 누군가를 공격하는 대신 나뭇가지에 매달려 버티는 데에만 사용된다.

잠시 일을 쉴 때면 그녀의 자리에서 내다보이는 플라타너스의 반짝이는 잎사귀들을 바라보며 사물처럼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때로 그녀와 나무 중에 나무만 살아 있다고, 자신의 딱딱한 침묵을 주저 없이 앞질러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느꼈다. (……) 어쨌든 조금 더 생존할 수 있을 테니까요.

퇴근 무렵이면 언제나처럼 어깨가 아팠고, 특히 머리와 목을 연결하는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직장인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몸의 방향을 바꾸기도 어려운 지하철에서, 언제나처럼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의 몸에 속해 있지 않다고, 그 주변의 어떤 사물이라고 상상했다. (……)

어쨌든 그럼 조금 더 생존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내가 널 원망할 거라고 생각해왔을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네가 윤이와 나에게서 멀어져가는 매 순간을 난 명백히 이해했어. 자신을 건설하기 위해 가깝고 어두운 이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삶의 용기를. 정말이야,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어. 같은 방식으로 윤이가 나를 떠났다 해도 난 서슴없이 이해했을 거야. 다만 분명히 알 수 없는 건 이것뿐이야, 먼지투성이 창을 내다보는 것처럼, 아니, 얼음 낀 더러운 물 아랠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인용글들에게 느껴지는 것은 생존의 버거움이다. 그녀와 그가 직장 생활에서 모욕을 감내하는 이유는 조금 더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생존은 인간으로서의 생존이 아니라 사물이 되어가는, 존재함만을 간신히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눈사람이 되기 이전에 그녀는 이미 사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고 생각될 만큼 생존은 버거운 것이다. 자신을 건설한다면서 가까운 이들에게 등 돌리고 멀어지는 것도 삶을 유지하기 위한 용기의 발로이니 이해해야 한다. 날카롭게 발톱을 세우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저 삶을 견뎌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래도 우리가 인간인가 하는 것이다. 얼마까지나 사랑해야 인간이고, 얼마까지 멀어졌을 때 인간이 될 수 없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녀가 눈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그 생존의 감내가 이미 인간일 수 없게 하고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호감을 표시할 때 눈을 감는 고양이’처럼, 서로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길고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그들을 연결하는 실체로서 존재하게 되고, 그 실의 진동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투명한 접지가 몸 어딘가에 더듬이처럼 생겨나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 무한히 신뢰하고 연결될 수는 없는지. 사람이라면, 따뜻한 사람이라면 이만큼 사랑할 수는 없는지.

우리는 인간과 눈사람 중 어느 편에 더 가까운 곳에 있는가? 눈을 감아도 상대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고 믿으며 마주한 그에게 비난의 눈빛을 거두고 눈을 감을 수 있는지. 아니면 더듬이를 거두고, 실을 놓친 채 가까이 다가가 껴안는 것이 나의 소실인 것처럼 두려워하며 사랑하기를 멈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존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너무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보이며 서로를 겁먹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연약해서 처절한 존재들을 점점 마주 볼 수 없어서 차라리 눈사람이 되어가면서 사라짐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가 한강은 은빛 가루로 바스라지고, 심장이 있는 왼편 가슴께부터 녹아내리는 눈사람의 작별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읽는 이들은 눈사람에게서 떨어져 내리는 은빛 가루의 선듯선듯한 차가움과 가장 뜨거웠던 심장에서 녹아내리는 차가운 물의 감각에 온몸이 아릿해짐을 느끼게 된다. (2019. 1. 16.)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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