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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31>출발! “올 라인 네코”한창훈, 「나는 여기가 좋다」
송은정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여수 거문도 출신의 소설가 한창훈(1963년 출생, 여수 거문도)의 이름을 오래 전부터 간혹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사실 참 이상한 일이다. 내가 해 온 일들이나, 공간적인 접점의 측면에서나, 하고 있던 공부를 생각했을 때나 읽었어도 진작 읽었어야 하는 작품들이고, 만나기 위해 부지런을 피워도 한참을 피웠어야 하는 작가인데 왜 유독 숙제처럼 미루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지금이라도 글들을 통해 그를 만나가면서, 이 지면을 통해 몇 차례 소개할 예정이다.

  소설가 한창훈은 여수에서 나고 자라다 대학 진학을 대전(한남대학교 지역개발학과 졸업)으로 하고, 1992년 단편소설 ‘닻’으로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본격화했다. 한동안 학업과 연계해 기거하던 충청도의 공간성과 언어들이 살아있는 소설(‘가던 새 본다’등)을 쓰기도 했고, 20여 년 전 부터 다시 고향 여수 거문도로 내려와 기거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현재는 거문도에 거처를 두고 있지만 ‘한국작가회의’의 사무총장직을 맡아 서울에서 주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창훈의 소설과 저서들의 수는 상당하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했을 때 그의 저서는 장편 소설과 소설집, 산문집들을 포함해 29권이 나온다. 1998년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던 ‘홍합’,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청춘가를 불러요', '나는 여기가 좋다', 장편소설 '열여섯의 섬',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산문집 '한창훈의 향연',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등이 있다. 대산창작기금, 한겨레문학상, 제비꽃서민소설상, 허균문학작가상, 요산문학상 등을 받기도 했다.

  그 중 오늘 소개할 『나는 여기가 좋다』(문학동네, 2009년)는 작가의 특유의 걸쭉하고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바다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진솔하게 그린 8편의 단편들이 들어있는 한창훈의 다섯 번째 소설집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46의 나이에 제4회 허균문학작가상과 부산일보 개최 제 26회 요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무엇보다 『나는 여기가 좋다』라는 제목에 ‘여기’는 그가 태어나고 기거하고 있던 거문도(삼도)라는 것이 분명하다. 거문도를 중심으로 하는 섬과 항구, 어부들의 삶과 생애를 다룬 작품들이 실려 있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장소가 낯설지 않은 독자의 입장에서 작품은 물론 작가에게까지도 턱없이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더 나아가 그의 문체를 통해 전달되는 각각의 인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 때문에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순한 미소를 짓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서사들은 무게를 빼내고 잔잔하게 웃게 하는 유머들, 무심하게 거리를 둔 듯한 관계들 속의 소탈함과 속 깊은 잔정들이 어우러져 있다.

  그를 소개할 대표적인 작품들이라면 어부들, 바닷가 사람들의 이야기나 연민과 굴절의 삶을 산 할머니를 떠올리는 작품 같은 것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나는 여기가 좋다』라는 작품집 속에 실린 두 개의 사랑 이야기인 「밤눈」과 「올 라인 네코」를 소개해 보려 한다.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현재적 작가인 한창훈을 알아가기 위한 워밍업 단계이기도 하고, 유독 춥지 않는 올 겨울, 이런 귀엽고 따뜻한 사랑 이야기로 그를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 아무 일 없었소. 손 한번 안 잡았응께. 그냥 그 사람이 밤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오래도 했소. 자기 어렸을 때 이야기 (중략) 영화 이야기, 소설 이야기, 음악 이야기…… 뭔 이야깃거리가 그 사람은 그렇게 많았는지. (중략) 정이란 것이 그런 겁디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모기장에 모기 들어오듯이, 세 벌 네 벌 진흙 처바른 벼락박에 물 새듯이 그렇게 생깁디다. 말했듯이 손구락 하나 안 잡았는디, (중략)

  그래도 그 사람이 그리 좋고 행복했었소. 뭐가 좋았을 게라우? 정력도 션찮고 대범하지도 못한 사람인디. (중략)

  그 사람 하던 말이 그렇게나 좋았단 말이요. 밤새 나를 껴안고 조근조근 하던 그 말들, (중략) 내 손을 만지며 하던 그런 말이 그렇게 좋았단 말이요. 그렇게 재미나고 정답던 말을 인자 누가 또 할란고 …… 음악도 많이 들었어라우, (「밤눈」, 48~51)

 

“좋아한단 말이요. 사랑한당께요.”

그 말은 학생들 암기과목 공부하듯 여객선 터미널에서, 싸롱 불빛 아래에서, 배 갑판 위에 물옷 입은 채 서서, 해수욕장 모래밭이 시작되는 곳에서, 노을 지는 방파제에서, 면사무소 골목 입구에서, 우체통 옆에서 거듭 되풀이됐다. 그리고 파도 거칠게 쳐올라 오는 다리 난간에서도 이어졌다.

“도대체 왜 이러세요.”

“사랑한당께요.”

“좋은 것이 죄요?”

“외로운께요, 외로우믄 고것 하나만으로도 사랑하게 되등만요. 다혜씨도 외로울 것 아니요. 나는 외로운 것이 치가 떨리요. 그런께 나도 다혜씨도 둘이 같이 안 외로웠으믄 좋겄소.” (「올 라인 네코」, 82-83)

 

  너무 뻔한 통속소설의 한 부분들 같은 이야기이다. 말이, 밀어들이, 사랑의 표현이 사랑에선 이토록 중요한가 보다. 흘러간 유행가 가사들과 섞여 들어가고, 분명 불륜이라 할 만한 이야기가 룰을 지켜 성공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된다. 성매매특별법에 따라 섬 다방 아가씨들에게 “면담 겸 교육, 교육 겸 훈시, 훈시 겸 내사, 내사 겸 취조, 취조 겸 인물감상”을 하는 관할 경찰들. 그 와중에 사랑 고백을 해대던 영철을 받아들이고, 첫날밤을 치르고 여관에서 나오던 다혜(미정)가 경찰에게 잡힌다.

  불륜이냐 성공한 사랑이야기이냐. 성매매이냐 사랑이냐.

  젊은 날 내게 사랑이란 너무나도 무겁고 절대적인 것이어서 십자가와 같은 운명으로 여겨졌는데, 이 소설 속 사랑은 애틋하면서도 가비압다. 사랑은 모든 것을 다 사로잡는 감정이지만  삶 속에서의 구현되는 사랑이란, 그리고 그 표현들이란 세속에 녹아들어 있는 행복한 미소들의 원천이면 되는 것이다.

  “‘올 라인 네코’, 올은 전부, 라인은 줄, 네코는 말 그대로 네코, 그러니까 걷어내부러라 이 소리여”

  이제 배를 출발할 것이니 줄을 다 걷어 내버리라는 말 ‘올 라인 내코’

  새 해, 새 출발, 우리를 붙들고 있는 여러 족쇄들이 모두 사라지게 “올 라인 네코!”그래서 이렇게 가비압게 미소 지으며 따뜻하게 사랑할 수 있는 새해로 출발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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