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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33>봄, 시작 그 파괴이자 거듭 새로운 질서한창훈, 『홍합』
송은정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거문도 출신의 소설가 한창훈의 98년 작으로 제3회 한겨례문학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홍합』은 여천 소호동에 있는 홍합 작업장과 신풍 인근의 홍합공장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 한창훈이 대전에서 대학을 다니고 등단과 함께 충남 일원에서 문학 활동을 하던 시절과 고향인 거문도로 내려와 자리를 잡기 전 사이에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 작품이다.

작품 속 서술자 ‘문기사’ 역시 “여러 도시를 떠돌다가 고향이랍시고 자신도 모르게, 어찌 보면 눈에 익은 길이라도 한번 밟아보고 싶어서 내려왔는데”라는 구절과 함께 그는 ‘도보(徒步) 중’이었다고 말한다. 소설『홍합』은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한 인간이 홍합 공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온몸으로 느끼는 뜨겁고 치열하게 현실을 버텨내는 이들의 굳건한 삶의 이야기다.

97년 삼여(여수시·여천시·여천군)통합이 된 직후인 여수의 모습, 특히 그 시대를 끌어가던 3,40대의 여인네들의 말과 행동들에 대한 소설적 형상화는 당대인들과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홍합 작업선이 부려놓은 홍합을 삶아내고, 종일 스티로폼을 깔고 앉아 홍합을 까는 여인들이 종종 허리를 곧추세우는 소호동 홍합 작업장, 유럽 등으로 수출하기 위해 홍합을 비롯한 수산물들을 냉동 가공하는 신풍 홍합공장에는 강인하게 생활을 버텨낸 여인들이 있다. 주 배경인 신풍 홍합공장은 농사를 주로 짓던 인근 신풍 여인들의 공동 작업장이기도 하며, 갯일에 능숙한 국동 여인네들이 숙달된 시범 조교 역할을 맡아 먼 길을 버스에 시달리며 찾아오는 일터이기도 하다.

홍합, 제목이 그러하듯 여인네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소설은 곧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생물을 다루는 작업을 하니 손발을 제때 맞춰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분주하고 고단한 일이지만, 여인네들은 그 속에서 노동에 동원되지 않는 입을 놀려가며 육체 노동에 추임새를 넣고 힘을 부추겨댄다. 거침없이 내뱉는 듯 보이는 거친 말들에도 짠한 인생들, 가족과 주변을 살피느라 욕보는 이들에 대한 공감대가 녹아있다.

일명 망구라 불리는 보살형의 쌍봉댁의 노래도, 점잖은 시아버지 사랑을 받는 중령네의 술주정도, 맥주컵(일명 ‘말좆고푸’)에 소주를 채워 마시는 작업반장 김씨와 함께 일하는 그의 부인의 남편걱정도, 대학을 가겠다며 새초롬하게 구는 식당집 딸 세자와 아들이 사람을 팼다는 중앙동 파출소에서 온 전화를 받고 돈을 구하러 동분서주하던 세자엄마도, 신풍 주변 땅값이 올랐다고 거드름피우고 다니는 시아버지에, 게으른 시어머니, 치매 걸린 시할머니 대소변 뒷치다꺼리까지 하고 자식들을 건사하며 농삿일에 홍합공장까지 다니는 삼십대 초반의 과부 승희네도 소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키가 크고 몸집만큼 먹성이 좋으면서 말이 없어 좀 둔해 보이는 신풍패의 금이네가 따돌림을 받는 이유와 그녀가 달력 날짜에 표시를 해두었다는 다섯 색깔의 동그라미의 의미는 충격적이기도 하다. 소주를 맥주처럼 마시던 김씨,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살아도 아들 형제가 공부를 잘해 의기양양했던 그가 뺑소니 사고로 죽는 날에 그 김씨의 부인이 충격에 넋을 잃게 되는 심정적 과정에 대한 묘사 등은 신비하기도 하고 가슴 아프다. 시집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을 잃고 시댁 식구들과 자식들을 건사하느라 고단한 승희네의 애틋한 마음이 향하는 문기사. 그 둘이 태풍 부는 날 공장 한켠 방에 같이 누워서 느끼던 감정들, ‘몸이 차마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두 사람의 절절함은 애달프기도 하다.

혹심했던 겨울과 비가 내렸던 봄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던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의 노동, 태풍을 맞아 무섭게 뒤집어지던 바다, 결코 울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한순간에 멀리 가버린 김씨. 그가 만들어 놓은 빈자리. (중략)

아무튼 좋다. 오고 가는 것이야 어차피 사람의 소관이 아니다. 어떤 것이든 좋다. 견뎌주마, 다가오라. 다시 보이는 승희네 얼굴. 지금 나는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파괴이자 거듭 새로운 질서.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서 있는 자리에서 가능할 것이었다. 돌아볼 것도 없고 쫓아갈 것도 없었다. 언제나 눈앞에 있었다. (285쪽)

아직 정월달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날이 풀리는 걸 보면 올해는 어느 때보다 봄이 일찍 온 것만 같다. 봄, 파괴이자 거듭 새로운 질서인 시작을 하는 때이다. 쥐포공장에 다녔든, 홍합공장에서 일을 했든 나의 어머니 세대의 여인들의 고단한 삶은 생을 견뎌내는 강건함에 기반하며 가족과 세상을 살리는 신성한 노동의 연속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받은 소명은 어쩌면 이런 노동으로 완성되는 아름다운 것일 테다.

이 봄, 눈앞의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견뎌내면서 매번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온몸으로 삶을 견디며 뜨거운 노동 속에서 아름다운 제 소명을 이뤄내는 것은 운명에 맞서는 파괴이자, 스스로의 질서를 창조하는 일일 것일 터이니. (2019. 2. 28.)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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