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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은 탄식뿐인 그대를 위해문학칼럼 34 - 시인 기형도
문학박사 송은정(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지난 3월 7일이 기형도 시인의 30주기가 되는 날인 까닭에 그의 모교인 연세대학교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그를 추모하는 행사들이 열렸다.

80년대를 젊은 시인으로 살다, 그의 나이 29살에 80년대와 그의 삶마저 끝낸 시인. 그래서 90년대를 살아간 젊은이들에게 우상처럼 사랑받던 시인 기형도.

지금을 사는 젊은이들 중에는 교과서에서 본 <엄마 걱정>이란 시로 그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아버지를 잃고 가난한 어린 날을 지낸 그의 삶과, 남아있는 그의 사진들 속에서 확인되는 우수에 찼지만 아주 선량하고 순하게 생긴 얼굴과 딱 들어맞는 시처럼 느껴진다.

노래도 좋아하고, 작사·작곡까지도 했다는 시인 기형도, 그가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듣는다면 우리는 낭만적인 젊은 시인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고, 그럴 때는 이 시가 제격이다.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독재정부 아래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에 맞서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민중 운동을 펼치기도 했던 때, 1980년대. 박노해와 백무산의 노동시를 읽고 열띠게 토론하던 문학청년들의 시대에 그는 무엇을 써야했던가. <빈 집>은 시대의 가열찬 요구들에 시인으로서 느끼는 쓰는 것에 대한 고통을 담아내면서도 젊음의 섬세한 떨림과 감성을 전하는 시이다. 실제로 당시 노동시를 읽고 토론하던 문학청년들도 밤에는 기형도의 시를 홀로 읽으며 조용한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서른에 다다르지 않고 20대에 멈춘 청년의 고뇌와 우수가 느껴지는 시로, 모든 청년들이 자기의 노래처럼 읊조리곤 하던 시를 고른다면 바로 <질투는 나의 힘>일 것이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시 속에서 드러나는 잠언적인 시구들이 독자들을 매혹적으로 사로잡기에 그의 시를 산뜻한 힐링을 위한 시로 안다면 그것은 좀 곤란하다. 그의 유고 시집 제목이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제목인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문학 비평가 김현은 기형도에 대해 “그의 내부에 공격적인 허무감, 허무적 공격성이 숨겨져 있음을 그의 시를 통해 예감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시가 그로테스크한 것은 그런 괴이한 이미지들 속에, 뒤에, 아니 밑에, 타인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져, 자신 속에서 암종처럼 자라나는 죽음을 바라다보는 개별자, 갇힌 개별자의 비극적 모습이, 마치 무덤 속의 시체처럼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는 데에 있다.

시인은 우선 그의 모든 꿈이 망가져 있음을 깨닫는다. 가난과 이별은 그 망가진 꿈의 완강한 배경 그림이다.”라고 평했다. 또 함돈균 역시 “온갖 죽음과 떠돎의 이미지, 높고 신성한 것을 향한 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할 수 없었던 허무의 표지들”라고 그의 시를 읽고 있다.

기형도 시 곳곳에는 죽음과 허무, 희망 없음이 깔려 있고, 상황과 이미지를 그려내는 언어들의 과감한 구도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그러나 그는 윤동주와 같은 시인이 되기를 갈망했다고 한다. 그가 추구하는 시는 윤동주의 시처럼 섬세하고 투명한 성찰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시인 자신들의 예민하면서도 따사로운 시선으로 대상을 품고자 했던 그 마음을 담아내려고 했을 것이다.

기형도의 죽음 후 3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의 시는 가진 것은 탄식뿐이고,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이들을 가만히 감싸주며 위안한다. (2019. 3. 14.)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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