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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생생합니다 - 3<기획연재 - 여순10·19의 기억 1-3 >
작가 송은정 (문학박사,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 여순사건 피해 유족인 황순경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구 술 자 : 황순경(1939년생, 81세, 당시 9세) - 現 여수유족회 회장

형이 돌아올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고, 풀벌레 소리가 간혹 들려오더니 저기 먼 데서부터 개가 짖기 시작합니다. 개 짖는 소리는 집집을 이어가며 점점 가까워집니다. 여느 때와는 다른 불안정하고 불길한 파장입니다. 그 소리가 점점 우리집과 가까워지고 사람들 두런거리는 소리까지 더해졌을 때 형수와 어머니가 형의 이름을 부르며 벌떡 일어나시는가 했는데 벌써 사립문까지 나가 계십니다.

마을 어른들 몇 분과 함께 들어온 우리 형이랑 같이 여수역에서 근무하는 두 분의 친척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습니다. 형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기도 전에 두 분의 얼굴에 눈이 고정되고 말았습니다. 아니 곧 고개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마루 처마에 걸어놓은 호롱불에 비친 얼굴이 피범벅이었고, 아직 반팔차림이던 어른 한 분의 팔은 벌겋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다른 분 역시 기다시피 해서 왔는지 온몸이 흙투성이에 성하지 않은 옷들에 핏자국이 선명합니다. 그 행색에 놀란 것도 잠시 또 다른 불길함이 덮쳐왔습니다.

이지러져 가는 달빛에 어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말씀들을 나누십니다. 끙끙거리며 겨우 운신하던 철도공무원인 두 분의 친척들을 둘러싸고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는 해 질 녘 철길을 따라 퇴근하고 있었지라. 잉구부 있는 디쯤 가까이 오니까 화약 냄새도 나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만요. 그 미평 오림리 있는 디는 14연대 봉기군이 매복해 있다고도 했지만, 별일이야 있겠냐 했는디요.󰡓

󰡒오동도 앞바다에 함정들이 뺑뺑 둘러싸고 그 봉기 군인들을 토벌한다고 이제나 저제나 육지로 나올 태세인가 보든디.󰡓

󰡒그러니까요. 오늘 오후에 전투 사령부 군인들이 장갑차를 끌고 미평 오림리 잉구부 있는 데까지 와서 숨어있던 봉기군을 치려고 했는 갑디다.󰡓

󰡒오메 어째야 쓸까. 그것도 모르고 그 길로 왔단 말이요.󰡓

󰡒아제, 우리 순채는, 우리 순채는 왜 안 오요?󰡓

󰡒난리가 나고, 군인들이 거기에 숨어서 길목을 지킨다고는 했지만 별일 없었으니께요. 또 어둑해지는디 그 길 말고 워디 딴 길이 있기나 허간요.󰡓

󰡒여직 싸움을 하고 있었든가?󰡓

󰡒아니요, 조용하더만요. 긍께 그 길로 접어들었는디, 갑자기 군인들이 총을 들이밀고 손을 들라고 하는디 오금이 저립디다요.󰡓

󰡒우리 순채는, 우리 순채는 왜 안 오요?󰡓

이야기는 급하고 심각하게 흘러가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자 어머니가 급하게 한동네 아제를 붙들며 묻습니다.

󰡒아무래도 순채는…… 총에 맞은 것 같은디요.󰡓

총이라니, 누군가 총에 맞았다는 말을 저렇게 내뱉을 수 있다니. 그 말이 또 한 발의 총알이 되어 그날 아침 동생을 죽였다는 총알과 합세해 어머니의 가슴팍을 향해 발사되는 것 같았습니다.

󰡒군인들이 독이 잔뜩 올라서 총을 겨누면서 다짜고짜 뭐하는 놈들이냐고 족쳐대기 시작허는디, 철도원이라고 말을 해도 눈을 부라리며 위협을 해대는디요,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무조건 손만 들고 있었는디.”

“손들고 있었는디 순채한테 총을 쐈다고?”

“순채는…… 순채가 벌벌 떨다가 군인들이 뭐라고 지들끼리 말하느라 한눈을 좀 파는 상 싶으니께 냅다 뛰어 도망을 가더라구요.󰡓

󰡒아이고, 이를 어쩔고.󰡓

󰡒군인들이 앞뒤 안 가리고 총을 쏘아대고, 우리들은 냅다 두들겨 패기 시작하더만요.󰡓

󰡒아니 철도공무원이라고 말을 했으면 될 거 아니요?󰡓

󰡒말했지요. 그것도 안 통해라아. 그놈들을 순천까지 태워다 준 놈들 아니냐면서 말이지라.󰡓

󰡒어찌어찌 해서 설명하고, 지들도 철수하라고 해싸니까 우리를 버리고 가버리드만.󰡓

󰡒그럼 우리 순채는요?󰡓

󰡒우리도 무서워서 도망오니라 정신이 없었으니께…… 아무래도 순채는 총에 맞아서 뭔 일을 당한 것 같은디요.󰡓

󰡒그것이 뭔 말이오. 멀쩡하게 아침에 출근한 자식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

󰡒어이, 어서어서. 이러고 있지 말고 어여 찾으러 가야지.󰡓

󰡒몇 번을 뒤돌아봐도 따라오는 기척이 없어롸.󰡓

󰡒진짜 총을 맞았으면 어째야 쓸게라?󰡓

무거운 침묵 속에서 이웃에 살던 친척 몇몇이 바쁘게 가마니를 엮어 간이 들것을 만들었지요. 그 밤에, 그 무서운 어둠 속으로 작은아버지가 앞장서 길을 잡으셨고, 나의 어머니도 기어이 뒤를 따르셨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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