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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이름 - 1<기획연재 - 소설 여순10·19의 기억 2 >

* 여순사건의 피해자와 그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작가 송은정 (문학박사,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한여름 더위는 맥을 놓기 시작했고 비가 힘없이 오락가락 하는데 어쩐지 그 날씨가 성에 차지 않았다. 일기예보는 비가 올 것이라고 했지만 형체 없는 회색 구름들이 하늘빛을 어둡게 하는 것에서 그치고 말든지, 새벽녘 잠깐 스치고 지나가버리곤 했다.

혹여 추적거리는 비도 부산한 가운데 창밖으로 간간히 들리는 소리로만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이 여름, 비는 도무지 온전히 느낄 수 없게만 내렸다. 비를 절실히 바랄수록 요즘 내리는 비는 도통 내게 아무짝에도 필요 없게 느껴진다.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비를 기다린다. 성에 차지 않게 비수럭거리는 꼴이 싫다. 그딴 식으로만 내리는 비가 바보 같다고 화를 낸다. 내가 원하는 비가 아니라며 입을 있는 대로 내밀고 불만을 터트린다.

미운 네 살짜리가 부릴만한 심통을 듣고 있는 그가 저 깊은 속에서 내뱉는 한숨을 난 느낀다. 그래도 용케 내리고 있지 않느냐고, 내린다는 말에 맞추어 내리기는 했지 않느냐고 그 자신을 변명하듯 설명한다. 그런데도 나의 툴툴거림은 멈춰지지 않았고, 어느 순간 이따위로 내리는 비는 마치 너 때문이라고, 아니 그 비가 바로 너라고 말하는 것 같아졌다. 나는 증명이라도 하듯 한껏 그에게 등을 돌려 보이기까지 한다.

함께 있을 때 분명 축축해지고 젖을 만큼 비가 내렸지만 끝내 나는 고집스럽게 비가 제때 충분하게 내리지 않는다며 마음을 풀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상대로 화를 내며 그 상황들에 집착해 꽁꽁 묶인 채, 어서 내 뜻대로 해보이라고, 왜 그럴 수 없는지 나를 납득시켜달라고 보채는 영락없는 네 살짜리였다.

내 나이 이제 서른일곱, 아버지가 날 낳았던 나이도 이 서른일곱 살이었다. 내가 아버지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유전자는 그 네 살짜리인 것 같다. 아버지 속의 4살짜리를 물려받은 나는 아버지를 부정하고, 내게 아버지는 부재하다고 선언함으로써 나를 형성해가고 있음에도 그 유전의 핵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가 보다.

아버지는 빈껍데기 같은 사람이다. 밥 먹었냐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도무지 철학이 없는 그 사람의 이름이 김철관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할아버지의 큰 뜻에 따른 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닌 작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철학하는 사람이 아니라 철학이 결핍된 사람, 사유하기와 말하기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되어있다.

내 아버지는 4살에 그의 아버지를 잃어버렸는데, 아마도 그때 할아버지가 이름 붙여 부여한 그가 지녀야 할 역량도 떠나버렸는지, 내가 보기에 철관인 그에게 철학은 가장 큰 결핍 요소이다.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은 33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신 나의 할아버지는 이상주의자였던 것이 분명하다. 큰아들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정치를 하는 인물이 되라고 이름을 정관이라 지었으며, 둘째는 인간의 사유를 들여다보고 그것들로 인간을 변화시켜보라고 철관이라 지었고, 얼굴도 보지 못한 뱃속 셋째에게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감동시켜 세상을 아름답게 하라는 의미에서 문관이라고 지었다 하니 말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고 새로운 구원을 약속하는 십자가를 매는 대신 그 자신의 꿈이자 아들들에게 물려주었던 이상을 꽁꽁 매달고서 사라졌다. 이후 소문으로나 알려진 그의 죽음은 확인할 길이 없었으니 그의 부활 역시 영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는 그저 언제나 부재의 상태로 남아있다.

20여년도 훌쩍 지난, 음력이 올해만큼이나 빨랐던 해의 추석날이 떠오른다. 서슬 퍼런 외할머니랑 같이 살던 집을 떠나와 큰집에서 사촌형제들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명절들이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10대 중반으로 절정의 사춘기를 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또래 사촌들끼리 어울려 북적거리던 여느 해의 명절과는 다른 기분에 휩싸인 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심각하게 곱씹어대고 있었다.

그날도 할아버지는 명절 당일이 되자 집을 비우셨다. 물론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 곁에 있는 그 때의 할아버지는 정관, 철관, 문관이란 이름을 붙일 줄 알았던 이상주의자 할아버지가 아니다. 할머니가 낳은 넷째 아들에게 갑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그는 서류상 부재하는, 아버지들의 또 다른 아버지이다.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를 기다리며 세 아들을 키우던 할머니 곁과 호적에 오른 부인 사이를 오가는 그는 자신의 핏줄인 넷째 작은 아버지만을 위해 존재하는 아버지였다.

어린 내게는 그의 존재가 너무나 알쏭달쏭했다. 어른들은 중요한 말들을 ‘거석’ 혹은 ‘머석’이라는 말이나 눈짓, 고개짓, 얼버무리는 웅얼거림으로 대체한 채 주고받았는데 그들끼리는 다 알아듣는 법이었다. 어린 우리는 명확히 모른 채 그저 한 해 한 해 그 암호 해독을 한 가지씩 늘려가면서 눈치로 뭉뚱그려 이해했다. 그나마 그들끼리도 뭔가 겉도는 말들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순간순간 긴장감이 돌고는 했으니까.

그해는 사돈집, 그러니까 큰집 사촌형의 외사촌이 고3이었고, 해군사관학교를 가려고 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돈 주고 빨간 줄을 없앤다고는 했지만 해군사관학교를 가는 것이 괜한 문제를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걱정들이었다. 걱정으로 흥분해서 말이 많아지고 있는 큰어머니 옆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큰 아버지가 술잔을 연거푸 들이킨다. 할머니와 큰어머니는 그런 큰아버지를 향해 동시에 잔소리를 쏟는다. 그동안 술, 담배는 입에도 안 대고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 자식들 좀 크고 살림살이가 그만해지니 술을 마신단다.

누구보다 할머니는 큰아버지가 취하실 만큼 마시는 것을 두려워하시는 눈치다. 평소에 누구보다 너그러우면서 궂은소리 한번 입에 담지 않던 큰아버지가 뒤늦게 배운 술에 취하면 할머니를 향해 발작하듯 예리한 날을 세우신다는 것이다. 그날도 띄엄띄엄 큰소리가 들린다.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소? 누구보다 떳떳하고 당당하신 분 아니오! 제길, 그런데 어머니는 늙어서까지 사는 것이 이게 뭐랍디까? 우리까지 뭔 죄 지은 것 마냥 고개나 처박게 하고. 저 사람이 뭐요! 우리한테 아버지 노릇 한번 해 준 적 있소! 아버지입네 하고 대우나 받으려고 하고. 애시당초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을 대신할만한 인물도 못되는데다 하는 행동들은 또 어떠요? 제대로 책임지지도 못할 걸 건들긴 왜 건드느냐고!”

“아이, 남사스럽다. 그만해라. 세월이 반백년이 지난 일을 가지고 어째 새삼스럽게 이러냐? 아그들 듣는다.”

지아비 없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셋째 아들을 유복자로 낳고, 세 아들들을 업고 걸리고 해서 기차로 부산까지 오가며 물건을 떼어다 파는 장사를 했다던 할머니는 언제나 당찬 여인이었다. 할머니는 내 주변의 어머니나 외할머니가 그러하셨듯이 늘 괴력을 짜내며 세상을 굴리는 시지푸스이었다. 그러나 큰아들이 거칠게 내뿜는 가시 박힌 술 내음에 할머니는 팔순을 바라보는 노구를 더 작게 말면서 쭈그러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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