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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이름 - 2<기획연재 - 소설 여순10·19의 기억 2 >

* 여순사건의 피해자와 그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

작가 송은정 (문학박사,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걸죽하게 들깨가루를 넣어 볶은 물컹한 나물들이며, 벌건 핏물이 주르륵 흐르는 꼬막들이며, 꺼들하게 말라가고 있는 찐 서대가 올라간 명절 끝 술상 언저리는 쾌쾌한 긴장감이 가득하다. 불콰해진 큰아버지가 안간힘을 쓰며 참을 듯 참을 듯하던 센소리를 더 이상 잡아두지 못하고 쏟아내곤 하던 그 추석날.

나랑 11살 차이가 나는 사촌형은 군대를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집안 분위기가 낯선지 한쪽으로 비켜나 겉돌고 있는 나와 놀아준다. 사촌형과 나는 제각각 빚어진 송편들의 소가 돈부인지, 깨설탕인지 알아맞히며 어른들의 비밀도 짐작해내려 곁눈질을 해대고 있었다. 달콤한 꿀소가 아닌 덤덤한 돈부 소가 든 송편을 갈라들고 부루퉁 입을 내밀고 있는 내게 형은 기껍게 자신의 달콤한 송편을 내게 쥐어주고 대신 내 것을 가져다 우물거린다. 형은 자신의 아버지가 큰 소리를 터트릴 때마다 같이 얼굴빛이 상기된다. 군대 가기 전의 사촌형과 큰아버지는 이 세상 침묵의 중심이라도 된 듯 과묵하게 가족의 무게중심을 지켰던 이들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가벼운 말들이나 툭툭 내뱉는 내 아버지를 못미더워하고 불만을 갖기 시작했던 나는 그날 문득 우리 부자와는 다르게 그들 사이에는 그 말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끈끈한 신뢰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저 깊은 단전에서부터 부풀어 올라와 터지듯 내뱉어지는 큰아버지의 말들을 따라 똑같이 온 숨을 끌어올리듯 얼굴을 상기시키는 사촌형을 보면서 저 부자간의 공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형수, 형수 조카는 뭐 할라고 그 딴 데를 가려고 그런다요?”

아버지다. 할머니를 향하는 큰아버지의 날선 말을 돌려보려는 듯 아버지가 가볍게 말을 던진다.

“군인이 무에 좋다고! 집안에 월남 다녀온 사람 한 명 있었으면 되었지. 형수, 일찌감치 관두라고 하시오.”

“도련님도. 월남하고 해군사관학교하고 같다요?”

“군인 되는 것이 그리 소원이랍디까? 군인이 뭐하는 사람이오? 전쟁터에서 사람 죽이는 기계 되는 훈련을 그렇게도 받고 싶어 한다요?”

“이제 와서 뭔 전쟁이 또 일어날까봐 그러시오.”

“벌레들 들끓는 축축한 정글에 고엽제 냄새 진동하제, 뿌연 화약 연기에 화염방사기에 그슬려진 시체 냄새가 자욱하제. 그런 전쟁터를 상상이나 해봤소? 군인 운명이 거기서 거기제. 시퍼렇게 일어서는 파도를 타고 도망갈 데 없는 망망대해에서 멀미나는 기름 냄새에 절은 짠밥 먹는 신세나 개 같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소.”

“그래도 서방님은 거기서 벌어온 돈으로 생활기반 잡으셨댔잖아요. 막내 도련님 대학도 보내주시고.”

“네, 그랬죠. 킬킬킬……. 그거 아시오? 내가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니까. 울 아부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지지리 못 먹고 커서 키가 작은 덕을 단단히 보았으니 운보다는 다 아버지의 음덕 덕분이었던 게지. 내가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진즉에 목이 댕강 날아가 버려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인디 말이요. 엄니, 울 어무니가 그래도 아부지한테 부탁을 많이 했었든가 보요. 나 여지껏 말 안했는디 한번 들어볼라요?”

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 진지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도 별일 아니라는 듯 시시덕거리며 말을 던지기는 마찬가지이고, 그의 목 역시 아직도 멀쩡하니 결과야 뻔한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좌중의 시선이 모아진다.

“왜 나는 그때 목이 베어지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 모르겠소.”

아드득. 아버지가 그 놓친 소리를 재연이라도 해 보려는 듯 잘 깎인 생밤을 깨문다.

그때 아버지가 한 말들을 난 들으려 하지 않았다. 킬킬거리며 흘리듯 말하는 것이 싫었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혼잣말처럼 웅얼대었기 때문인지, 내가 송편 소 맞추기에 매번 실패해서 골이 났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의식적으로 송편들 속을 발라보는데 골몰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개 짖는 소리와 함께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벌써 어둠이 짙게 내린 문밖에 초췌한 모습의 셋째 작은 아버지가 서 계셨다. 다 늦게 혼자 몸으로 큰집을 찾은 작은 아버지는 도망자처럼 바깥을 살피며 급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명절이면 제일 기다리던 작은 아버지이다. 늘 용돈을 두둑하게 주시던 작은 아버지는 여상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부기, 타자 학원부터 시작해 컴퓨터 학원까지 차려서 사업가로 변신했다. 한창 컴퓨터 붐이 일던 때였고, 승승가도를 달리던 작은 아버지는 사업을 계속 늘려갔다. 그러다 여기저기서 빌린 빚과 IMF 여파에 몰려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몸도 많이 망가지셔서 어린 내가 봐도 소생할 날이 올까 싶어 보였다.

“우리가 아버지만 계셨으면 이 모양이었겠소.”

그날도 늘 하시던 말씀을 들먹거렸을 작은 아버지는 언제나 야망에 가득 차 있었다. 형들이 줄줄이 대학을 중도 포기하면서 자신의 학비를 대 주었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언제나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 일이었다. 이 작은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문관이란 이름처럼 세상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풀어나갈 사람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어보였다. 다만 그는 타락한 세상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타락한 사람들 속에 으뜸이 되고자 했다. 그 삶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얼핏 보았을 때 그는 타락한 세상을 온 몸으로 증거하다가 그 자신의 퇴락으로 타락한 세상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스스로의 인생을 작품으로 쓰는 존재였다. 결국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그로 인해 집안사람이 줄줄이 타격을 입고 있던 때라 쫓아다니는 빚쟁이들이 아니더라도 그는 늘 좌불안석이었다.

문득 떠올린 20여전 전의 그 해 추석은 그 명절 끝자락 태풍이 지날 거라고 예보되었고, 우리 집안 역시 태풍을 앞둔 것처럼 꿉꿉하고, 불안정한 기류가 가득했었다. 그 명절 끝 태풍이 어떠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음 회에 계속)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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