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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이름 - 3<기획연재 - 소설 여순10·19의 기억 2 >

* 여순사건의 피해자와 그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

작가 송은정 (문학박사,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서른에 접어들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깊이의 나락으로 침잠해 갔다. 조증과 울증 사이를 넘나들며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내 내면은 나 자신을 도저히 세우지 못하는 연약 지반이었다. 우울의 이유를 찾아보라는 심리치료사인 그의 말에 나는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핑계 삼을 것들을 댔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들이 이유라는 것 때문에 도무지 진짜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치료를 계속해가면서 나는 흔들리는 내 정신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뿌리부터 살피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 작업이 한참 진행되는 중반쯤에야 아버지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어두운 곳에 비스듬히 누워 최면치료를 받을 때 나는 아버지가 되었다. 기억이란, 무의식 에 잠재되어 있는 파편화된 시간들이란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20여 년 전 그 추석에 의도적으로 무시했던 아버지의 이야기, 그 실없는 무용담이 내 기억과는 다르게 온 몸에 새겨졌던 것이다. 억눌러 둔 내 내면 어딘가에서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따라 그 때 그 곳, 월남을 아버지였던 것처럼 경험했고, 최면이 불러낸 나는 정글 속에서 킬킬거리던 아버지 그대로였다.

“늘 추적거리는 비에 불어터진 몸이 무거울 대로 무거워. 해가 지면서 모기떼의 극성은 더해 가는데도 어찌나 잠이 쏟아지는지……. 김일병이랑 참호 속에서 보초를 서고 있어. 부스럭거리는 풀벌레 소리에도 온 신경이 곤두서는데 참 용케도 사이사이 졸음이 쏟아지오. 곁에 있는 키다리 김일병은 온몸을 긁어대느라 통 산만하기 그지없어. 그놈은 적을 감시하는 경계태세를 갖춘 것이 아니라 자기 몸에 달라붙는 각다구들을 쫓아내려는 전투태세를 풀지 못하고 있었지. 달을 지나는 구름들이 빠르게 흐르는 것을 보다 깜박 졸았던 모양이오. 잠결에 풀벌레 소리들이 멎고 너무 조용하다 싶은 순간, 뜨끈한 무언가가 머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걸 느끼며 번쩍 눈을 떴지. 반사적으로 총을 부여잡고 총부리를 앞으로 향하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그때의 기괴한 모습이라니. 달빛 아래 검은 실루엣으로 서있는 김일병은 더 이상 키다리가 아니었지. 총을 내려뜨린 채 지탱하고 서있는 그는 머리가 없었어. 머리가 있던 자리에서는 무언가가 쿨럭쿨럭 품어져 나오고 있었지. 내가 한껏 고개를 떨구고 잠이 들어버린 그 순간, 김일병이 온몸을 긁으며 꼿꼿하게 서 있던 그 참호에 베트콩이 포복해 다가와 단칼을 휘두른 거야. 얼마나 정확하고 힘차게 휘둘렀을 것인데……. 내 머리위로 스쳐지나갔을 칼날이 번쩍이는 것을 본 것만 같았고 난 그대로 얼어붙어버렸어.”

나는 아버지가 되어 영원히 몸이 굳어버릴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가 나를 깨웠을 때도 나는 한동안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트라우마, 심리적 외상이었을 텐데 왜 내게 전이되어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뚜렷한 외상이 없이 증상들로만 신경증을 앓고 있는데, 정작 이런 외상을 겪었던 아버지는 세상 걱정 모르는 것처럼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고 무력한 모습으로 킬킬거리리며 순박한 노인이 되어간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억울해지기도 했다. 치료 과정에서 내 기억들을 계속 재생해가며 나를 샅샅이 뒤져갈수록 나의 외상은 아비를 잃은 네 살짜리 아버지의 것이자, 그 스물 몇 살의 청년인 아버지의 것이었어야 할 것들 뿐이었다.

아버지는 무력감에 빠져서 어른다운 확고함은 고사하고 늘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도대체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없었다. ‘파더 피겨(father figure)’라는 아버지 형상이라고 할 만한 전형적인 모습은 물론 원형의 아버지 역할도 버거워했다. 나는 닮아야 할 상징들을 찾아 바깥을 헤매야 했다. 세워야 할 삶의 정향이나 추구하는 가치나 의미를 되비쳐볼 거울이 없는 나는 텅 빈 얼굴의 르네 마그리트였다.

그는 얼마 전 내게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에 대한 책을 선물했다. 내 마음의 병이 심각해지면서 만난 그는 내 치료를 돕기 시작하던 그때부터 이미 이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을 자신의 상징처럼 써오고 있었다. 담배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글을 써 놓은 작품으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 책 속에는 화가의 삶이나 미술작업에 관한 글과 함께 그의 작품 사진도 잔뜩 들어있었다. 새장 속에 갇힌 알 그림과 함께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얼굴과 몸이 따로 분리된 중절모를 쓴, 혹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뒷모습과 마주하고 있거나 혹은 얼굴이 몽땅 사라진 사내의 초상화였다.

미술가라는 이름보다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불리길 바랐다는 화가. 평생 좌익 정치관을 고수한 공산주의자가 그의 표면적 생각에 붙여진 이름이라면 그의 작품 전편에서 활용되는 생각의 근원은 우울증이란다. 그 화가의 행동과 작업, 인생에 작동한 형이상학이기도 했고, 불행의 원인이기도 했다는 우울증.

우울증을 앓은 화가에 관한 책. 그가 준 것은 너무 뻔한 선물 같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환해졌다. 그가 오랫동안 그를 드러내는 방편으로 삼고 있던 어떤 것을 공유해 준 것일 테니까.

르네 마그리트가 그린 중절모를 쓴 남자의 얼굴이 분리되거나 삭제된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는 아마도 거울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였던 모양이다. 나는 기댈 곳이 절실해질수록 굳건하고 확실한 것을 발견해내려 했다. 아버지께 반항이라도 하듯 학생 운동을 하고 세상과 대치하며 격하게 젊음을 발산했다. 그런 내게 아버지는 그저 남들처럼 조용히 살기를 바란다는 눈빛만을 보이며 못마땅해 할 뿐. 감당하지 못할 아들을 못 본 채 하고,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힘이 넘치는 장모의 눈길을 피하고, 존경할만한 남편을 바랐다는 부인의 말을 등 뒤로 한 채 밖으로만 나돌았다. 그랬던 그만큼이나 나 역시 그 격한 젊음의 잔치를 끝내고 서른에 접어들면서 무력해져버렸다. 아니 나는 더 처절하게 무너져버렸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내가 못견뎌했던 아버지의 그 무력감이나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겉도는 행동은 트라우마에 의한 스트레스 장애 중 하나란다. 회피와 무력감이 개인적인 성향이 아닌 외부 충격에 의한 질병 상태의 증상이라면 아버지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치료를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나서야 내 두려움의 근간은 무력한 그림자만 남은 아버지, 부재한 아버지가 드리우는 공허함이라는 것을 서서히 알아차렸다. 아버지가 마땅히 드러냈어야 할 허무로 인한 장애를 고스란히 내 것으로 삼아 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내 아버지를 네 살짜리인양 자라지 못하게 했던 것인지, 어떤 힘이 내게 안전한 의지처가 되어 주어야 할 아버지를 빼앗아 가버렸는지. 도대체 무엇이 버젓이 눈앞에 있는 아버지를 부정하며 아버지 부재라는 심각한 결핍으로 목마르게 하는지 알아내야 했다. 아버지란 텅 빈 이름을 무엇으로든 채워서 현신시키고 싶었다.

때마침 아버지의 외상에 대한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 것은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1948년 10월에 일어난 그 모정의 사건으로 인한 할아버지의 죽음 기록을 찾아보고 다니셨다는 것을 안 이후였다. 아버지를 잃은 사촌형의 고통은 컸지만 장손답게 그는 의연했다. 누구보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던 형은 아버지가 못다 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타향에서도 계속 내게 연락을 해왔다. 불쑥 솟아난 여순사건이라 불리는 역사가 처음엔 도무지 맥락이 없어 보였다. 어른들은 의례 그랬듯이 거석이란 이름으로 암호화했는지 모르지만 내 기억에는 우리 집에서 그 거석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촌형도 그것에 대해서는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어서 그 역시 어른들로부터 우리 집안의 피해 내력에 대해 직접 들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나중에서야 찾아낸 큰아버지가 여기저기서 모아놓은 자료들과 평소에 술김에 툭툭 내뱉으셨다던 단편적인 말들, 큰어머니가 가끔 들려주던 할머니가 해주셨다는 몇 마디 말들만으로 퍼즐을 맞추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세상에 나게 한 아버지가 언제나 나를 축축하고 초라하게 적시며 내리는 빗줄기라면, 그 빗물의 근원인 먹구름 덩어리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어쩌면 돌연 내 앞에 하나의 실마리로 나타난 거대사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졌다. 간절하게 해답을 구하는 이에게만 보이는 계시처럼 빗방울 너머의 구름이 묵직하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색빛은 점점 시야를 채우는 형체가 되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할머니의 잿빛 머리털과 빛바랜 뒷모습이었다.

어느 날인가 할머니 방의 열린 문틈으로 무언가 반짝 빛났고 살짝 들여다본 방에는 저만치 앉아있는 회색빛의 할머니 뒷모습뿐이었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할머니가 뒷모습을 보인 채 쭈그려 앉아 들여다보고 있는 동그란 은빛 거울이 다시 빛났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 비친 동굴 같은 할머니의 입이 보였다. 태엽이 다 풀려가는 시계처럼 할머니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거나 한참을 멈춰있기도 하면서 거울 속 그 동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계셨다.

거울 속에는 할머니 얼굴이 없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금지된 재현>처럼 할머니의 뒷모습 너머 거울은 할머니의 얼굴을 비추지 않고 있다. 어두운 동굴만이 떠오른 거울은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돌연한 공포의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 할머니는 한참 후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려, 쥐고 있던 틀니와 관절마다 옹이진 나뭇가지 같은 손을 내려다보시는 것이다. 그 느림은 공포로 마비된 자의 힘겨움 자체였다. 분명 그날의 그 방은 가을 햇살이 거울에 모아지고 있었지만 기억 속에서 그곳은 마법이 풀리는 자정을 지난 마녀의 비밀 지하실같이 어둡고 축축하다.

할머니는 내 처음 기억부터 이가 엉망이었다. 거무튀튀한 잇몸에 군데군데 의치를 하고 있었고, 언젠가 부터는 그나마 뿌리가 힘없이 들려 성하게 자리 잡은 이가 없어지고 틀니에 의지했다. 손가락도 기형적으로 구부러지고 마디들이 부풀어 올라있었다. 어떤 저주가 할머니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궁금해 하고는 했는데 돌연 큰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불거진 할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었다는 역사가 그때의 잿빛 할머니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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