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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기억 5<기획연재 - 소설 여순10·19의 기억 2 >

* 여순사건의 피해자와 그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작가 송은정 (문학박사,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이 죄값을 어떻게 다 치를까. 죄값을 치를 기회마저 오지 않고, 내 죄로 남겨진 가족들이 형벌을 치르며 살지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움으로 가슴이 다 타버리고 있다. 신념에 따른 이상향을 향한 돌진이 그저 폭력에 지나지 않았다는 결과와 마주한 나는 내 자신이 저주스럽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니, 내게 주어진 시간은 충분했었다.

회의와 의심의 나날들이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어떻게 행동해야 맞는지 수없이 고민했고 마음은 시시각각 변했다. 부인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 사랑과 신념 사이에서 갈등했고 마음 편할 날이 하루도 없었다. 어떤 날은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만 생각하기로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고, 어떤 날은 오랜 신념을 지키지 못한 채 눈앞의 개인사에만 머물고 있는 상황이 배신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신념을 지키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듯한 동지의 말놀음에, 해질녘 저녁연기를 올리지 못한 채 배를 곯고 온몸으로 울어대는 비참한 이웃들의 현실에, 무엇보다 그 가슴 뛰는 변혁에 대한 내 마음에 휘둘리지 말고 진즉 끊어냈어야 했다.

그러나 코끼리 같은 마음이 막무가내였고, 둘 다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부인의 말에 따라 공간을 이동해왔고, 동지들과의 소통은 아주 소극적인 방법으로 비밀리에 진행하면서 부인을 안심시켰다. 내 마음이 완전히 돌아섰다고 생각한 부인에게 한없이 미안했지만 두 가지를 별개의 것이라고 애써 나눴다. 아니 둘은 서로를 배반하는 마음이 아니라 궁극에는 결이 조금 다른 내 삶에 대한 진정성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을 위한 나의 역할과 함께 나 개인의 신념 역시 내게는 중요했다.

20일의 그 밤은 두 가지를 다 이루어낼 수 있다는 흥분과 한편으로 느껴지는 안도감에 너무 방심해버렸다. 굳이 세상에 감출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나는 둘 다 지켜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거한 밥상을 차려내 14연대와 동지들을 환대했다.

결과는 참혹하다. 내 부인과 뱃속의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 가해지는 매질과 고문보다 더 아픈 것은 나에 대한 배신감일 것이다. 나 때문에, 내 위선적인 행위들에, 내 비겁함이 빚어낸 상처들에 그녀의 마음은 죽어갈 것이다. 혁명은 대의에 대한 애절함으로, 내 마음을 절절하게도 붙잡아두었고, 나 역시 기꺼이 그에 응했는데 그 아픔의 결과는 나의 것도, 혁명 동지의 것도 아닌 오롯이 내 가족의 것이 되고 말았다.

22일 계엄령이 내려지고 학구전투에서 패배한 동지들은 모두 일찌감치 종적을 감췄다. 나처럼. 남겨진 이들은 혁명이 무엇인지 미처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힘없는 이들이다. 거대한 힘 앞에서 실패한 투사들은 이렇게 비겁해지고, 남겨진 가족들은 폭력 앞에 더 비굴하고 참혹해져야 할 것이다. 다시 또 피해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언제나 피해자임을 자처하고 애달프게 살아온 우리였기에 언제까지나 계속 피해자로 남아야 하는 것처럼 취급당하는 것이다. 그 고리를 끊어내고자 폭력을 동원해 맞섰지만 그것은 피해자만도 못한 반란자가 되는 결과만 낳았다.

부인과 정관이, 철관이, 문관이의 삶을 노예의 것으로 전락시켜버린 것만 같다. 나에 대한 배신감과 미움에 사로잡히고, 권력의 보복에 침묵해가고, 반란자의 가족이라는 낙인 아래 살아가야 할 나날들에 누구보다 더 납작 엎드려 복종하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 화난 권력은 남겨진 이들이 감히 나와 같은 신념을 꿈꿀 생각도 못하게 만들 것이다.

비겁은 내 오랜 숙명이었다.

신의 은총 비슷한 것을 믿었다. 흘러넘치는 은총으로 모두 자유로운 세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꿈꾸었다. 그러나 은총은 어느새 율법의 잣대로 형상화되어 계율들을 세워갔다. 비겁한 나는 은총을 증거 할 용기가 없었다. 은총의 현신을 곁에 두고서도 새벽이 올 때까지 세 번이나 부정한 베드로처럼 나는 계율의 테두리에서 내쳐지지 않는 한에서 은총을 누려보겠다는 뻔뻔스러운 자였다.

내 신념을 풀어서 말한다면 누구나 수긍할만한 보편의 가치였지만 그것의 실현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고, 억압하는 세상이다. 권력자들의 오랜 군림의 방식이다. 똑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실현한다 해도 사회에서 몫을 쥐고 있는 자들의 그것은 불변의 대의명분이고,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이들의 그 시도란 단죄해야 할 불선이 된다. 대의명분으로 주장되거나 반역이 될 그것을 같은 것으로 수렴해가는 나는 포용하면서도 복종하지 않았다.

폭력적 주장 없이 원하는 것들을 조용히 이뤄가려고 했던 발버둥은 수면 아래 백조의 발짓을 감추는 것이었고, 어쩌면 나는 오리에게도 백조에게도 지탄받을 소지를 껴안은 부조리한 존재로 주눅 들어 살 수밖에 없었다. 당당하게 세상의 잘못을 말하고 내가 원하는 세상이 어떠한 것인지 설득시키려 하지 않았다. 가족마저도 설득하지 못하는, 비겁하게 숨어서 지킨 신념이 무슨 힘을 가질 수 있겠는가. 결과는…… 이중의 배신자가 된 꼴이다.

그러나 지금 의지할 이는 오직 그 신뿐이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에게 가해자가 되어버린 나는 엎드려 참회의 기도만을 읊조릴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간절히 원한다. 죄값을 치르지도 못한 채 사라져야 할 내가 오로지 바라는 것은 그래도 그들이, 내 가족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 비겁할 수밖에 없는 내가 내 가족들에게도 다시 또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주기를 간청한다. 꼭 살아내야 해. 그것밖에 남겨주지 못하는 내가 뻔뻔하게도 바라는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이 순간들을 잊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 고통스럽지만 분명 행복해 하며 꾸었던 신념들에 대해, 그들에게 배신의 창날이 되어 돌아간 나의 놓지 못한 이상향을 꿈꾸며 행한 비겁함을 모두 잊고 살아가주길 바라는 것이다. 상처받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그것을 언제까지 상처로 두고 아파하지 않게 되기를. 흉터로 남을지언정 언젠가는 아물어가고 아픔도 가실 날이 올 것이란 것을 믿고 살아내 주기를 바랄뿐이다.

앞으로의 삶이 다 무너져 내린 것 같은 절망과 나에 대한 한없는 원망으로 산산조각 난 가슴을 부여안고 뜨겁고 고통스럽게 울고 있을 부인을 생각한다. 행복할 날만 꿈꾸었는데, 내 신념들이 그것을 더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결국 내 무모함으로 모두 산산조각 내 버렸다. 감히 어떻게 사죄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

영원히 아침이 올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믿는다. 나의 사랑스러운 부인은 그 뱃속의 우리의 문관이를 데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통스럽지만 또 다른 날들을 여전히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룰 수만 있다면 나는 더 비굴해질 수 있다. 베드로의 부정보다 더한 것을 해서라도 살려낼 수만 있다면.

이렇게 우리는 모두 이미 죽은 것이겠지…….

거울 속 할머니의 검은 입이 토해내는 소리들이 내 가슴을 찢으며 귀를 먹먹하게 한다. 뒷모습이거나 빛으로 지워져버린, 얼굴을 비출 수 없는 거울 속에 들어있는 할아버지의 읊조림이 내 가슴으로 전해온다.

그렇게 내 할아버지는 나뭇단 속에서 끌려나와 트럭에 실려 성동초등학교에서 총살당했다고 한다. 고문의 후유증에서 정신을 되찾지 못하고 있던 할머니나 그의 처제들, 어느 누구도 할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처럼 살아남아야 했음으로 그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했다. 죽음에 대한 어떤 증표도 기록도 남기지 못한 채 그는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날의 상처는 말하여지지 않았고, 잊힌 것처럼 취급당했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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