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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있는 촛불의 희망!
윤문칠 편집인 전)전라남도 교육의원

촛불은 한자로 '촉화(燭火)'라고 한다. 양초는 적당한 온도에서 녹는 고체 가운데 심지를 넣어 만든 등화용 연료이지만 자기 스스로 타면서 빛을 낸다. 그 빛이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인도하듯 ‘좋은 스승은 촛불과 같다.’라는 말의 의미를 교직에 몸담았던 그 시절엔 자주 되뇌곤 했다.

촛불은 남들을 위해 자기 스스로를 소비하면서 기쁠 때, 슬플 때, 어두울 때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삶의 에너지이다.

예로부터 모든 종교나 천주교의 미사와 같은 성스러운 의식에서도 부처님의 자애가 넘치는 법당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전통적인 제상에서도 촛불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가 발달되면서 국민들의 시위 모습이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곳에는 항상 촛불이 있었다.

촛불 시위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온라인 서비스 유료화 반대 시위를 시작으로 2014년 모든 국민이 아팠던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진상 규명으로 시작된 전 국민적 분노가 광화문 일대를 비롯한 전국의 대규모 촛불로 이어졌고 정권 퇴진 탄핵 집회로 이어지며 정권을 퇴진시킨 촛불 혁명으로 이루어졌다.

이 상징성을 띈 촛불은 때로는 침묵으로 작은 힘을 보였지만 무대 위에서 빛나는 촛불들처럼 거리를 행진하며 하나 둘 모여든 촛불의 물결이 전국을 뒤덮었다. 어둠이 내릴 때 거리 곳곳에는 수많은 촛불을 든 시민들로 거대한 물결을 만들기도 했다. 부당한 권력과 부당한 사회의 사안들은 국민의 촛불로 심판받았고 시민참여 문화제로서 전환되어 뜻을 함께했다.

촛불이 지나간 자리는 그들의 뜨거 움이 있고, 그들의 큰 힘을 보여주었다. 국민의 촛불 민심의 아름다운 빛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꺼지지 않는 시민들의 평화적인 집회는 사회 정의를 위해 빛을 밝혀 주리라 믿는다.

필자가 어릴 적 소변이 마려워 새벽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와 방문을 열었을 때 장독대 위에 촛불을 켜놓고 앉아있는 어머니를 발견했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뻗쳤었는데 내가 본 모습이 그림 같아서였을까? 장독대 위 정화수는 별빛을 가득 담고 있었고 곱게 빗은 머리에 단정한 옷차림의 어머니는 두 손을 마주 대고 무언가를 이루게 해달라고 빌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다에 고기 잡으려 나간 아버지의 만선의 무사 귀항과 우리 다섯 형제들을 위한 기도였으리라, 그 후로도 내 새벽잠은 언제나 어머니의 치성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깨어나곤 했다. 자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모든 것을 헌신하면서 내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정성과, 부모님의 뜻을 받들고 따르려는 우리 형제들의 마음이 그렇게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되는 것은 우리 어머니의 아침 희망 촛불 덕분 아닐까 한다.

아름다운 촛불은 '난촉[蘭燭]'이라 하며 결혼식 때 켜는 촛불을 '화촉[華燭]'이라 하여 결혼을 비유해 '화촉을 밝힌다'라는 말이 있다. '동방화촉[洞房華燭]'이란 말은 예전 우리나라에서 신랑과 신부가 첫날밤 합방하는 의식을 이르는 말로 더 많이 썼다. 그래서 인지 오늘 내 생일을 맞아 가족들과 테이블에 둘러앉은 채 케이크에 나이 수만큼 초를 꽂고 불을 켰다.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자 아내와 함께 단숨에 불어 소원이 성취된다는 생일 촛불을 꺼트리고 다 같이 큰 박수를 쳤다.

온 가족의 작은 정성에 피어나는 마음속의 촛불처럼, 이제는 우리 사회도 밝고 희망찬 사회로 그 빛을 발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타고 있는 촛불의 빛은 희미하고 작지만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작은 불이 모여 강한 빛을 내듯 우리의 작은 불이 세상의 모든 이에게 어둠을 밝히는 정의로운 큰 빛으로서 꺼지지 않은 희망을 담는 촛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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