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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이름 - 8
작가 / 문학박사 송은정

마음의 병이 심해지고, 치유를 위한 발버둥의 방편으로 난 해룡의 아버지 집으로 들어왔다. 가정을 꾸리고 독립을 했어야 할 37살 아들이 혼자서 아버지의 거주지로 어슬렁거리며 돌아와 있다는 것은 비열한 수사자의 심보일지도 모른다. 농원이니, 생태적인 삶이니 그럴듯한 말들로 포장하고 있지만 분명 영역침범이다.

불을 지피는 것부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마당에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화구를 마련했고, 집안에 난로를 들였다. 한 해 한 해 책으로 땅과 식물을 배우며 지금껏 머리로만 생태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마당 가득 불내가 퍼진다. 크리스마스이브이다. 찾아온 친구들을 위해 불길을 다독이며 껍질째 굴을 굽고 있다. 불과 연기를 핑계로 반쯤만 눈을 뜨고 반쯤만 집중한다. 아파트 시세와 자녀 교육에 대한 열띤 이야기들 사이 통통한 우윳빛 굴덩이들이 꿀떡 삼켜진다. 승진과 여행 이야기가 비행기를 타는 동안 재가 내려앉은 뿌연 조갯국물이 후루룩 빨려 들어간다. 두 여인의 사랑이 똑같이 가슴 아파 그 사이에서 매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두 번째 결혼을 염두에 둔 누군가의 비밀이 풀려나오자 독한 성토의 술잔이 가득 채워진다.

일상이다. 각자의 비극들이 어우러져 굴러가는 성스러운 일상이다. 끌고 가는 동력이 욕망 혹은 열정이든 책임감이거나 사랑이든 모두 다 극복해 넘어가며 그것이 사건이 아닌 일상으로 인정받아 가길 바라는 삶의 여정들이다. 예수도 33년 인간의 시간이 사건으로 폭발하지 않고, 일상으로 극복되어 가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크리스마스. 우수수. 검은 로즈마리 잎들이 쏟아진다. 잎들 뿐 아니라 줄기들마저 바짝 말라있다. 스킨답더스 화분 옆에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을 것이다. 건조한 겨울 실내 공기가 걱정되어 관엽식물들에 수시로 뿌렸던 물이 그 옆에 놓였던 로즈마리를 말려 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영광이며 은총이었겠지만. 마당에 뿌리 내린 녀석들 옆으로 옮겨 심어 회복시켜야 하나 고민이 된다. 이 추운 겨울에 가혹한 일이다. 그러나 저 상태라면 봄까지 버텨낼 것 같지도 않다.

경적 소리와 함께 성가대의 축송이라도 되는 듯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서울 인근에서 두 딸의 가족과 함께 3대가 모여살고 있는 문관이라 불리는 작은아버지가 가족과 함께 찾아오셨다. 조카들이 갯내음과 마당 불내음을 들이켜 대는 킁킁거리며 깔깔대고, 그 옆으로 쇠잔해진 몸을 좌우로 흔들며 걷는 작은아버지가 보인다. 해부작 웃으며 맞이하는 아버지를 향해 걸어오는 작은아버지를 보자 좌편이나 우편으로 심하게 기우뚱거린 후에야 중심을 잡는 오뚝이 같았던 그의 삶이 시계추처럼 흔들려간다. 작은아버지가 여상에서 근무하다 사립학교 비리에 몸서리를 치며 뛰쳐나올 때는 그 내부의 무게 추는 좌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후 그만큼의 반동을 받아 부기, 타자 학원에 컴퓨터 학원까지 차려 무섭게 세를 넓혀가던 때는 턱없이 우로 넘어져가고 있었다. 동물적인 감각, 거부할 수 없는 본능만을 좇는 것 같은 과감한 열정, 과한 몰입으로 모든 것을 거는 삶을 살았던 작은아버지이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작은아버지의 인생방식이란 지금처럼 심하게 기우뚱대며 줄을 타는 위태로운 서커스였는지 모른다. 아버지 없는 세상에 태어나 눈물과 침묵으로 노동 중인 어머니 곁, 그 서늘한 삶의 그늘에서 스스로 뜨겁게 자신의 살을 비벼대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소진하듯 가슴 속에 불을 지피며 타올라서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듯. 작은아버지는 미운 일곱 살을 나면서부터 아버지란 이름으로 부르라는 사람은 바람처럼 휙 왔다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정관, 철관, 문관이란 이름 뒤에 새로운 시작의 첫째가 되는 갑이라는 동생이 생기면서 그 초조함이 더해졌을 것이다. 동생으로만 향하는 새아버지라는 남자의 눈길을 잠시라도 붙잡아두기 위해서라도 더 크게 신호를 보내야만 한다는 강박증을 앓았나 보다. 그런 작은아버지는 IMF가 몰아닥쳤을 때 빚에 깔리고 풍에 맞아 반편 마비가 되어 쓰러졌다. 누구보다 뜨겁게 타오르던 그는 순식간에 사그러들어 스스로는 무너진 어떤 것도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그 자신 역시 공백이었던 자신의 생부나 새 시작의 아들만을 위했던 바람 같던 계부와 같이 지워지는 흔적으로나 남을 형편이었다. 그러나 작은아버지는 그 좌편향 우편향의 거친 흔들림 속에서도 뿌리를 잘 내리고 씨를 뿌리며 새 순들을 키워냈던 모양이다. 형제들의 도움을 받고 작은어머니가 갖은 궂은일을 감당해내시면서 작은아버지는 버텨냈다. 두 딸이 차츰 아버지처럼 열성스러운 젊은이로 성장하자 당신도 버릇처럼 가슴의 불을 다시 일으켜, 주변은 어쩌지 못했지만 자신의 몸만은 많이 회복시켜냈다. 그러나 당신에게 균형 잡힌 평정이란 여전히 요원해 보였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은 배척당하며 좌나 우 한편을 선택해야 하고 그나마 수시로 바뀌는 태세를 잘 살피며 살았던 것처럼.

작은아버지를 비롯한 3대의 구성원들은 크리스마스에 남쪽 바닷가 마을을 찾아와 할 수 있을만한 이벤트와 프로그램으로 일정을 꽉 채웠다. 마지막은 와온해변의 일몰을 감상하는 것이란다.

“에이, 뭐야 5시 20분이면 멋진 노을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

“하늘이고 바다고 온통 흑백이잖아. 바로 어두워지기만 하는데 언제 타는 붉은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거야?”

“헐, 바다가 왜 이래? 파란 바다가 아니라 뿌연 구정물 바다잖아.”

“맙소사 세상에. 이런 바다도 있어? 어떻게 바닷물이 파랗지 않을 수 있어? 이런 바다는 책에서도 인터넷에서도 한 번도 본 적 없었어.”

해는 분명 바다로 떨어지고 있을 터인데 두꺼운 구름 뒤로 가려 곧장 어두컴컴해지고 해안가 노을식당 연통에서 올라오는 불내음과 갯가 비린내만 가득하다. 얼마 전에 보았던 황금빛 바다와 붉다가 보랏빛이었다가 하얘지던 하늘색을 말해주어 보았자 소용없다. 제일 불만은 그놈의 바닷물의 색깔이었다. 그나마 바람 없는 오늘은 부유물들이 충분히 가라앉아 있었지만, 바닥의 갯벌과 회색빛 구름 낀 하늘까지 되비치는 바닷물 때문에 좀처럼 바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짙푸른 바다, 맑고 투명한 바다를 기대한 어린 조카들에게 그것은 바다가 아닌 불순한 것이었다.

“할아버지, 이런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게도 잡았단 말이에요? 진짜 이렇게 더러운 물에서 자라는 물고기도 먹어요?”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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