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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이름 - 11<기획연재 - 소설 여순10·19의 기억 2 >

* 여순사건의 피해자와 그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

작가 / 문학박사 송은정

또다시 이런 세기가 주어진다면……. 그런 세기는 이후로도 쉽게 끝날 수 없었지 않았나. 칼 마이던스는 여순의 문제적인 사건이 한 세기를 대표한 역사가 되어 인류에게 경종을 울리는 교훈으로 되새김될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그러나 그 세기의 남겨진 50여년 세월에도 두려움과 증오를 기반으로 한 침묵을 강요한 사건들이 역사로 쌓여갔다. 적으로 규정한 이들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우리 편의 민간인마저 집단으로 학살할 수 있었던 일 같은 것 말이다. 국가의 존립을 앞세운 전쟁은 적도 아군도 민중에게 죽음만을 요구했고, 죽음 뒤에는 빨갱이라는 재갈을 물리고 낙인을 찍었다. 12년을, 18년을 법을 바꿔가며 권좌를 탈취한 자들 역시 같은 방법을 썼다. 더 이상 휘둘릴 수는 없다는 이들이 단식을 감행하고, 온 몸에 불을 불이고서 침묵을 깨트려보기도 했다. 동상을 무너뜨리고, 혁명이라 이름 붙이며 희열을 맛보기도 했지만 피와 목숨으로 진설해 바친 제사의 효용은 지속되지 못했다. 여전히 말도 안 되는 폭력과 감금이, 공인된 폭력 기관에 의해 법으로 집행되었다. 저항하면 국가의 영토 한 부분을 섬으로 고립시키고 그곳 거주자 전체를 적화 세력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 세기를 지나는 동안 국민은 순화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계율을 체화해 왔다. 반항과 저항, 자유와 함께 거론되던 X세대와 미디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Y세대로 세대가 교체되고 세기가 바뀐 지도 한참이 흘렀다. 그러나 부머가 되었든 X·Y세대이든 여전히 국민은 국가가 수립한 지표와 그래프를 뒤쫓으며 삶의 유지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안고 산다. 그러니 여전히 항변이나 울부짖음 없이 방관자의, 혹은 두려움의 침묵 속에서 고삐를 잡힌 채 순화를 받아들인다.

새로운 세기에는 기울어가는 배 안에서 지시한 대로 따르며 말의 계율을 지켰던 아이들이 희생양으로 공양되었다. 카메라에 잡힐 그림이 되는가를 따지며 윗선에 보고하는데 급급한 것이 어른인 줄도 모르고 어른 말 잘 들으라며 당부하던 부모는 자신이 또 한 명의 맹인이었음에 가슴을 쳐야했다. 뒤늦게 촛불을 밝혀들고 그 어른의 실체를 폭로하는 식으로 눈은 떴다 하지만, 설화처럼 생명을 되살려 띄워 올리던 연꽃은 피지 않았다.

부당한 죽음으로 되살아오지 못하는 가족을 둔 이들의 트라우마는 분노와 증오를 주된 증상으로 삼을 것 같지만 더 끈질기게 이들을 사로잡는 감정은 죄책감과 수치심이라고 한다. 그것은 표출하기 힘든 감정이자 그만큼 해소되기도 어려운 것일 수밖에 없으리라. 남겨진 이들에게 상속된 폭력이자 고통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폭발 지점은 어쩌면 그 상속받은 가라앉음의 감정을 형성하는 혐오의 한 부분인지 모른다.

사그라들던 난롯불이 다시 되살아나 종이를 한겹한겹 말아 올리며 얼굴들을 허옇게 소멸시키고 있다. 나는 찢겨 남겨진 칼 마이던스의 글이 있던 종이를 잘 접어 수첩에 끼워둔다. 밤이 깊어간다. 바로 아버지 뒤를 따라나섰어야 했나 후회하며 동네를 서성인다. 조심스럽게 불러보는 아버지의 이름이 입김을 따라, 속절없이 벗은 겨울나무들 사이에 엉긴다.

전화기가 빛나고 밀쳐진 통화 수락에 목소리가 쏟아진다.

“어이, 얼른 자네 아버지 모시고 가소. 어째 우리 동네에 와서 이러신 다는가? 참말로 전에 없는 일이네.”

옆 도롱마을 이장님의 전화다. 한동안 여순항쟁과 관련한 기획 프로그램의 배경이 되면서 떠들썩했던 마을이다. 당시 그 마을에서 천도교 교당을 운영하던 어르신의 손녀였다는 일흔이 넘은 할머니가 칼 마이던스가 찍은 사진에서 70년 전의 당신과 얼굴도 기억할 수 없었던 당신 어머니의 모습을 확인했다는 사연이었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그 사진을 접했고,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도롱마을의 삼촌, 지금은 아흔이 다 된 어르신을 찾아와 그 사진을 내밀며 혹시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단다. 어르신은 단번에 이 사진을 어디서 났느냐며 어서 없애버리라고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더란다. 이것이 너랑 느그 엄마라고.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은 채 쪽진 머리 위로 손을 얹고 꿇어앉은 새댁과 그 새댁의 저고리 자락을 붙잡고 서서 카메라를 응시하던 바가지머리의 서너 살의 아이가 7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현재로 와 버렸다. 다른 사진에서는 그 할머니의 아버지가 젊디젊은 채로 어머니처럼 꿇어앉아 손을 든 채 죽음직전의 불안한 표정으로 굳어져 있었다. 당시 돌아가신 부모의 모습을 그 부모의 부모보다 더 늙은 나이에 찾아낸 할머니의 사연에 나 역시 눈시울을 붉혀야했다. 나는 지척에 사시는 당시 열여덟 살이었다던 어르신을 찾아가면 뭔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 싶었지만 선뜻 도롱마을로 발길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을 안쪽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도롱마을회관 밖으로 격한 목소리가 뻗어 나온다.

“들어와서 살게 하면 안 된다니까! 다 못 쫓아내고 얼굴 보고 살아온 것이 천형이라면 천형이었을 것인디. 살인자 놈 후손들이 뭔 낯짝을 들고 마을로 들어 온다요! 그것을 또 가만 보고 있어야 쓰겠소!”

“우리 형님이 인민위원장 했어. 해룡면 용전리 인민위원장이었어. 21살인 김용환이가 우리 형님이여.”

방송에서 보았던, 조카의 사진을 확인해 주었다던 아흔이 넘은 그 어르신 목소리다. 귀가 어두우신지 회관 밖 나에게 말하는 것인가 싶게 말소리는 두, 세 톤이 올라가서 거리조절과 대화 맥락 따라가기에 실패하고 있다.

“우리 형님은 집에 있지를 않고 서울이야 순천이야 돌아다녔어. 똑똑해. 얼마나 똑똑하다고. 공부한다고 한 번 앉으면 일어날 줄을 몰라. 밥 먹을 줄도 몰라. 독학을 해가지고 3개국 말을 통했어. 그런데 유독이 사회주의라는 책이 재미가 있단 말이오. 형님이 그런 책을 얼마나 읽어서 암기를 했는지 경찰서에서도 놀라 불었다고 그래.”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니까요. 나는 어려서 잘 모르는데 우리 형님이 맨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우리 아버지가 이거였다 그랬단 말이요. 근디 그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뭔 불법을 저질렀다고 나라는 그 사람들을 그렇게 재판도 없이 죽여 버리느냔 말이요.”

혀 풀린 아버지의 목소리이다. 실없이 내뱉는 것 같은 말투는 여전한 듯 하지만 그 이전과 달리 심이 박혀 나온다.

“시방은 세월이 좋아서 그렇지. 자유당 시절에는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이 별 문제가 없었어.”

“똑똑한 사람들이 거기 빠져가지고. 그 양반들이 요쪽으로 머리를 썼으면 진짜 좋았을 것인디. 우리 동네가 야문 사람들이 많았어. 엄청 똑똑했는디. 젊은 사람들을 싹 다 죽여 버렸잖아. 그 사람들이 커 가지고 장가가고, 애도 낳고 했으면 지금도 우리 동네에 좋은 사람들 많이 생겼을 것인디.”

이만큼의 음량으로는 말해주란 듯이 한껏 올린 목소리 뒤로 야물딱진 아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 사회주의 사상이 책으로 봤을 때는 너무너무나 좋은 거여. 공평하게 평화평등하게 산다는 그런 이론이여. 그러니까 글을 좀 아는 사람들은 평화평등하게 살면 얼마나 좋겠냐 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그것에 그냥 미쳐버린 거지.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이 서로 공유하고 나누고 살겠다는 생각이 그 사람들 머리에 들어 있어가지고 머리 좋은 사람을 다 죽인거야. 그런 양반들을 공산당이라고 동네에서 패가 갈라지고 서로 죽이고 때리고 막 적대관계가 되버린 거지.”

“우리 형님 제삿날도 우리는 몰라. 우리는 피신해가지고 섣달그믐께 내려왔어. 어머니가 면회를 갔어. 거기 있으면서도 어머니 한번 보고 싶다고 하도 해 쌌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어머니가 죽을지 살지도 모를 곳으로 면회를 갔어. 가니까 엊저녁에 데리고 나가서 다 죽여 버렸다고 하더라고. 긍께 울 어머니는 형님은 보도 못하시고. 그때 음력으로 섣달그믐날 갔으니까 스물 여드렛날인가 아흐렛날인가 옴싹 데리고 갖다 죽여 버렸다 그랬어. 우리 마을에 그날, 한날에 제사가 든 사람이 일곱, 여덟 명은 되야.”

아흔의 노인은 독학으로 삼개국어를 했다던 형만큼이나 총기가 있었다. 다만 말의 거리 조절에는 여지없이 실패하고 있었다. (11회)

데스크  yeosunewsw@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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