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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이름 - 12

* 여순사건의 피해자와 그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

작가 / 문학박사 송은정

“그놈들만 그리 했었간? 동네사람들이, 거석한 사람들이 와서 한창 가을걷이 할 것들도 다 지들이 해먹어 버렸지. 빨갱이 집안 것이라고 살림살이야, 장독 독아지 안에 든 것들이야 다 가져가버리고 그래. 우리 한 동네에서도 좌익이니 우익이니 패가 갈라져 버렸으니까.”

“그런디 그런 놈의 집안 후손을! 이야기 들었을 것 아니요? 이 뒷동네 용전마을에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해룡면 지서에서 근무하던 임씨 집안이 좌익들 손에 형제간이야, 사촌이야 죽임을 당했다면서요. 그러고 나서 그 임씨들이 보복을 하면서 온 마을을 다 뒤집어 수없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해서 좌익이라고 몰아 죽였다드만. 그때 죽은 임씨 아들딸들이야 다 군경 유가족이라고 보상받아서 다 잘 살아왔는디 말이요. 이제는 그 임씨 집안 손자뻘들 되는 후손들이 또 뻔뻔스럽게 다시 동네로 들어온다 하요. 그것을 그냥 두고 볼 것입니까?”

“한 번도 동네일에 가타부타 간섭 안하던 사람이 왜 별스럽게 이런다냐? 다 자기 집안 사유재산이고, 거기서 알아서 한다는데 뭐라 할 것인가? 그리고 70년도 전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지금까지 앙금을 가지고 그래서야 쓰겄는가?”

“아무리 70년 넘게 지났다고 해도 서로 해결 본 것이 하나도 없는디, 그 원수놈의 집안을 보고 살아야 되겠소?”

“우리 도롱마을은 더 하는디, 아재가 뭘 모르시는구만. 아재야 뒤늦게야 동네로 들어오셨고, 면사무소 있는데 살아서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는 평생을 그냥 그렇게 살아오고 있제. 여기 윤씨 집안사람, 마을 교회 장로랑 교인 두 사람이 먼저 좌익들 손에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 용전마을이랑 다를 것 하나 없이 똑같은 일이 벌어졌지요. 저기 인환이 삼촌이 말씀하신 것처럼 좌익 집안의 물건들을 가져가버렸다지만 그것이 대수였간? 대놓고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지. 우리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집 딸들, 처녀애들끼리도 머리끄댕이질을 하고, 대놓고 힐난하고, 몰아붙이고, 패악질하고……. 그 한창 나이에 세상 사정들을 뭘 얼마나 알았겠소. 그저 자기 부모 죽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밉고, 화가 났을 것이여. 그냥 그 울분과 울화를 풀어낼 생각밖에 못했겠지.”

“우리 집사람도 시집와서 설움 많이 당했어. 집이 불타 밥그릇, 숟가락도 없이 사는 집으로 아무 것도 모르고 시집 왔는디, 빨갱이 집안사람이라고 이리 가면 여기서 쫓아내고, 저리 가면 이리 쫓아내고. 마누라가 많이 울었어.”

“못할 것은 뭐가 있었겠습니까? 가슴에 불덩어리가 활활 타오르는데.”

“왜? 왜 그들만 그렇게 당당하게 분노할 수 있었냐는 것이제! 동네에서 한쪽만 그렇게 죽은 것이 아니지 않소? 시간이 지나가도 한쪽은 그렇게 마음껏 분노하고, 다른 쪽은 개죽음 당한 것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고 쉬쉬하기 바쁘고, 죄인으로 평생 고개를 못 들고 살아야 하느냔 말이요!”

“틀린 것 하나 없는 말씀이구만요. 우리 부모님네들, 그때 일을 당하신 어른들이야 서로 각자 집안에서 제일 든든하고, 똑똑하던 물기둥 같은 자식이나 남편을 잃었으니께, 세상에서 겪을 제일 숭악한 일을 겪어버렸으니까 세상사에 금방 덤덤해져 버렸는지 모르겠어라. 또 농사지어 먹고 사는 사람들끼리는 싸우면 당장 농사일이야, 동네일들이 안 돌아갔을 테니까. 함부로 말도 못하고, 서로를 죽인 업보를 아니까 하늘의 눈치를 보며 그저 좋게 살자고 말없는 합의를 했겠지. 죽은 사람 죽었으니까 우리 산 사람은 살자. 그런 것이었겠지. 우리 부모님네들은 그렇게 속이 문드러져갔겠지. 그런데 아재나 나나, 어렸던 우리들이 겪어낸 세월은 또 다른 것이지 않겠소?”

어린 나이에 역사가 가한 트라우마를 입은 나의 부모들. 그들이 지나와야 했던 시간들은 당시 주역으로 역사를 꾸려갔던 당신들 부모의 그것과는 또 다른 형질을 가진 시간이었다고……. 어린 몸을 관통하는 통증은 매일 뚜렷하게 뼈와 살에 새겨지는데 도무지 그 가해의 진원지를 알 수 없어 속수무책이었을 혼란의 시간. 거대한 먹구름이 드리운 어둠 속에 갇혀 무겁게 가라앉아가며 축축하게 젖은 불분명한 것들을 더듬어대며 살았을지 모른다. 성장하지 못한 어린 나의 부모들에게 세상은 식별할 수 없는 거대한 것들이 덮치는 엄습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외상을 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마저 바꿔가며 잠행적인 장애를 키워간다고 한다. 당장에는 상처받아 증상을 보이는 자신을 자신이 아니라고 느끼며 외면한다. 그러다 만성적으로 피해를 받게 되면 스스로를 되부를 수 없을 정도로 바꿔버려서, 아예 자기가 없는 것처럼 자신을 감각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아버지들은 정관, 철관, 문관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름은 그 이름이 가진 의미와 모순되는 신념들마저 동시에 지니며, 모든 것을 흡수하는 거대한 텅 빈 우주였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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