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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이름 - 13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아버지가 막혀있던 물꼬가 트인 것처럼 소리를 쏟아내고, 꺼져가는 아궁이에 풀무질 하듯 화르르 분을 태워 올리시자 동시에 내 가슴을 꽉 막고 있던 마개도 쑤욱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혹시 아버지 자신을 더 깊게 침수시키고, 소진시켜버릴 것들의 빗장을 벗긴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의 불길은 마른 검불로 옮겨 붙는가 하다가 그 아래 돋아나는 새싹에게마저 번지는 것 같았다.

“아재, 지난여름에 그 사건에 대한 증언을 들으러 사람들이 한참 들락거리지 않았소. 그런데 그 때 그 연구소 사람이 그러드만요. 자기네 연구소가 텔레비전 뉴스에 나가고 나서 제일 먼저 증언하겠다고 연락해 온 사람이 있었답디다. 그때 9살이었다는 팔순의 여자였는데 자기 아버지가 사건 나자마자 죽게 된 순천 유지 중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든디. 그 할멈 아버지는 일제 때도 경찰 간부였고, 경찰 전문학교 교장을 하기도 했다데. 그런데 4·3 사건으로 제주도로 임시 발령이 나서 잠시 휴가를 받아 순천 집에 내려와 있다 일을 당했다 그래.”

“보시오. 지금도 그 때 일을 쉬쉬하고 사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일제 수하에서 순사 간부노릇까지 한 놈 자식들은 그리도 당당하단 말이오. 거기다 제주도민들까지 학살하러 갈 놈이었어도 지역 유지였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지 않는가벼, 내 원 참 더러워서!”

“아따, 조금만 더 들어보시오. 그 사람 집이 순천경찰서 바로 옆에 있었고, 근처에 크게 집을 짓고 사는 외갓집도 있었다 그래. 그런데 14연대 군인이 들이닥치자 자기 아버지가 경찰서장한테 철로를 끊으라고 닦달해도 말을 안 듣더니 일이 커져버렸다고 하더만. 진짜인가 어쩐가 어찌 알겠소만. 아무튼 때 마침 경찰서에는 고흥에서 와 있던 경찰 간부 후보 훈련생들 40여명이 있었고, 당신 아버지가 그들 몇몇을 이끌고 외갓집의 마룻장 밑에 같이 숨어 있었드랴. 그러다 14연대 군인들이 들이닥쳐 중학교 4학년, 6학년 14살, 16살이던 언니 오빠와 어머니를 겁박했고, 비명소리가 낭자해지니까 당신 아버지가 제일 먼저 튀어나와 버렸대. 그래서 어쨌는지 아요?”

“그 사람 말마따나 그렇게 경찰 거물이었다면 당장에 총살당해버렸겠지.”

“그렇게 암시랑토 않게 말하면 쓴다요? 누군가의 아버지가 죽은 것인데. 어쨌든 그 양반은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이렇게 세 번을 외치고, 이놈들아 나를 죽여라! 하고 소리쳤다고 하드만. 결국 14연대 군인들 총에 맞아서 가마니 쟁여놓은 것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는 시신들 제일 아래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대요.”

야물딱진 아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 가열찬 도식화 된 만세 소리가 아버지의 어떤 부분의 뇌관을 건드리는 것이란 걸 나는 직감했다.

“그만 하시오!”

“긍께, 우리 부모들이야 사상 때문이고, 사명 때문이었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팔순이 다 되어가는 열 살도 안 되었던 우리들한테는 오로지 부모를 죽인 원수가 있다는 것 뿐이었지. 복수할 힘도 없고, 용서할 지도 모르는 째깐한 애기였고, 그나마 세월이 지나도 그 원수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청맹과니 세상을 살아온 것이지요. 하물며 우리의 자식들 세대야 뭘 알겠소? 아무 것도 모르는 후손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겠다기로서니 뭐라 할 것이요?”

“그것이 뭔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한 소리다요? 그래서 해결될 일이 뭐가 있겠소?”

“그럼 아재가 말하듯이 그 자손들 몰아내면 해결되겠소? 그때 어렸던 우리 같은 세대들이 뭣도 모르고 원수처럼 여기며 지내는 것은 이미 어떤 일의 업보이제, 그것이 또 뭔 원수질 일의 원인이 되게 해서야 쓰겠소? 해결하려면 우리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된 화근이 뭐였는지 알고 그것부터 바꿔야지.”

“그래 그 원인이 뭐요? 뭐 옛날부터 늘 그랬던 것처럼 그 머석한 사람들이 거석을 했다는 것이 원인이단가요?”

“아니제. 그 평화평등한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을 죄로 만들고,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세우다 보니 그랬던 것 아니겠소. 잔뜩 독이 오르게 해서 좁은 장에 밀어 넣고 싸움을 붙인 놈들 때문에 쌈닭들이 싸우는 것이지. 좁게 보면 싸우는 것들이 어째 그리 벼슬을 세우며 서로를 할퀴는가 싶고, 또 그것을 보며 좋아라 손뼉 치는 사람들이라도 없었으면 싶지만…….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신이 제대로 박혀야 좋은 세상이 되겠다 싶지만 말이오. 진짜는 언제나 이득을 보려고 작정하고 투계 판을 열고 싸움을 붙이는 자들 때문 아니겠소. 약이 잔뜩 오르게 굶기고 화를 돋우어서 싸움판으로 끌어들여 혼을 쏙 빼게 하는 자들이 문제인 것이지.”

“당장 목덜미를 물어재끼는 놈과 대치하고 있으면 별 수가 있겠소.”

“그렇지라. 거기다 죽여라 죽여라 하고 돈을 걸고 구경하는 놈들까지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장단에 놀아 서로를 쪼아댈 것이 아니라 그 판으로 몰아넣은 독한 놈한테 부리를 들이대야 하는 것이지.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일 것이요. 제 몸보다 몇 배나 더 큰 태산 같은 존재로 보일 것인데. 그러니 그리 못하고 지들끼리만 서로 죽어라 물어뜯는 수밖에.”

“당장에 상대의 목을 물어뜯어놓으면 어찌 되었든 싸움은 끝날 것 아니오.”

“불쌍하지. 서로가. 그럼 또 다음 판에 끌려가 더 강한 놈과 맞서라고 할 텐데.”

아짐의 논리는 명료했고, 아버지의 노기는 점점 강해졌다. 아버지를 모시고 나와야 한다.

“우리가 살아있지만 이거 다 하나님이 살려준 거지. 우리가 사는 것도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여. 다 하나님이 살려준 거요. 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분명히 하늘이 있고, 하나님이 있어서 우리를 살려준 거지. 우리가 살고 싶다고 산 것이 아니고 죽고 싶다고 죽은 것이 아니여. 하나님이 살리고 하나님이 죽여.”

아흔의 나이에 접어든, 인민위원장 형을 두어서 교회 사람들과 등을 졌다는 어르신이 갑자기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었다고 한다. 살아있음에 대한 반복. 웅웅거리는 소리들로 꽉 막힌 그의 청각신경이 여전히 맥락을 엇짚으며 한 소리인지, 무엇인가를 비꼬기 위한 알레고리인지, 그도 아니면 머언 인생의 뒤안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트릭스에 대한 통찰인지 알 수가 없는 말이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자리는 마무리가 되어버린다. 나는 비틀거리며 나오는 아버지를 부축하기 위해 다가간다. 나를 발견한 아버지가 복잡한 표정으로 망연해 하시다 별 말씀 없이 앞장을 서신다. (13회)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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