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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이름 - 15<기획연재 - 소설 여순10·19의 기억 2 >

* 여순사건의 피해자와 그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

작가 / 문학박사 송은정

언 땅을 퉁퉁 밟으며 허둥지둥 산을 내려온다. 조심스레 즈려 누르던 서릿발들이 미끄러지는 발밑에서 뭉그러진다. 이런 식이다.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을 지레 누른 것도 두려움 때문이다. 무력해 보이는 침묵을 선택하는 것은 내 마음이 그러해서가 아니라 저렇듯 선별된 하나들의 위용이 드리우는 공포의 그림자에 휩싸여서이다.

마주 지나치는 사람이 남긴 바람 속에서 나는 향과 내리막 계단으로 훅 진입하는 내 몸의 불내가 섞인다. 섬유유연제나 스킨 향을 남기고 가는 사람들에게 내 체취가 잠시나마 따라가겠지. 불내는 몸에 참 잘 밴다. 산 속에서 맡아지는 냄새로는 불내가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비누냄새나 스킨 향에 익숙한 이들에게, 그들이 설령 산을 찾았다하더라도, 불내는 이물스러울 수밖에. 시골 마을회관이나 그곳 한켠에서 화투 패나 맞춰보며 고리타분하게 늙어가는 꽉 막힌 영감을 떠 올릴 테지. 나는 꼭 그런 꼴이다. 30대의 현재를 살아가는 대신 시간의 늪을 헤매며 늙어가는 기분이다. 휘적휘적 발을 옮기며 등 뒤의 흰 진압수들을 바라보는 내 두려움은 70여 년 전 찍힌 사진 속 망연해 하는 그 눈망울과 다를 바 없다.

도돌이표다. 여전히 가장 싫어하던 것들이 곧 내 치부가 되는 것을 확인하는 일. 내 애증의 근원은 이제 정말 거기서 빠져 나오기로 하셨나 보다.

아버지와 난로를 사이에 두고 앉은 큰 쌍꺼풀눈을 끔벅거리는 이웃 마을어른의 얼굴이 난로 불빛으로 검붉게 번들거린다.

“싹 잡아다 어째부렀다 그런 이야기 안 있소? 우리 용전마을에서만 그날 23명이 잡혀 갔다요. 지서에 있던 그 사람 때문에, 그 놈이 싹 모략을 해가지고. 우리 아부지도 그때 잡혀가서 광주형무소에 있었어. 유복자인 막내여동생을 배서 배가 나온 어머니 손잡고 내가 면회 간 기억이 있어. 죄가 별 것 없으니까 금방 나올 것이라 믿고 있었는디. 6·25가 터지면서 싹 데려다 죽여 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아부지 제삿날도 몰라. 무당이 잡아준 날짜로 제사지내는 거지. 근디 그런 더러운 인간 후손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와 산당께. 지그 어미가 여기 와서 살지 말라고 그랬다는디 막무가내 들어와서 산다는 것이여.”

“그 집도 그때 당하기는 했지요?”

“그때는 뭐 파가, 양 파로 나뉘어져서 요리 죽이고 저리 죽이고 했던 갑제. 나도 모른디, 우파인가 좌파인가가 와서 그놈 없애 불고. 그놈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눈이 뒤집혀버린 그 놈이…….”

“그 집도 청천벽력이었겠구만.” “아, 하루에 한 동네에서 23명이 잡혀가 버렸단 말이오. 가만히 있어야겠소? 그 동생 놈을 죽이려고 몇 번 하다가 못 죽이고, 못 죽이고 하다가 어찌어찌 해서 그걸 죽이긴 죽였어, 그것도. 결국 형제 둘이 다 죽었지.”

말이 잠시 끊긴다. 나지막한 쯧쯧 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난로 불을 살피는 시늉을 해 보인다. 일렁이는 불빛을 받고 있던 어르신이 불더미를 돋우듯 소리를 높인다.

“근디 지금 그 동생 후손들이 와서 산다는 것이여. 같잖은 새끼들이. 눈에 쌍불이 나. 안 당한 마을 놈들은 좋다고 염병을 하고 있는디, 우리는 쌍불이 나지!”

“뭔 사과를 하거나 사죄를 하고 싶어서 그렇게 살겠다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 어디가 있소? 모른 척 하면서 와서 살지. 까마득히 지난 옛일로 쳐 버리고 그저 젊은 지들 살아갈 편의 때문이겠지. 인자 우리가 그 문제를 꺼내야지. 인자, 앞으로 뭐이 잘못되면 우리가 나서서 따져야 한단께.”

인자를 되풀이하는 어르신의 말은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는 듯싶었으나 의외로 그 인자는 아직 실행 가능하지 못함이라는 뜻으로 바뀌어간다.

“근디…… 그때 그 기막힌 전후 사정들을 기억하고 조목조목 따질 어르신들이 다 죽어 불고 없어.”

“아, 여기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우리가 아직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지 않소. 우리가 해야제.”

“까놓고 말해서…… 내가 뭐 아는 것이 있어야지. 나는 아부지가 잡혀갈 때 5살인가 되었는디, 아부지 살아계실 때 같이 선산 올랐던 기억이 전부여. 한 4살 때 기억인가 봐. 그저 아는 것은 우리 식구 고생한 것밖에 없지. 자네도 봤지? 마을 앞에 내가 우리 어머니 효열비 세워놓은 것. 열녀비가 아니라 효열비여. 우리 어머니가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지. 유복자까지 낳아 3남매를 키우려고 마음껏 드시지도 못하고, 좋은 것 하나도 입에 못 넣고 그러셨지. 우리 어머니 그래도 시아버지 땜시 살았어. 어디로 재가 안하고. 할아버지가 힘이 되어 주셔가지고. 그래서 내가 효열비를 세운 것이여. 우리 어머니는 한숨만 쉬지. 얼마나 한숨만 쉬고. 내가 똑똑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다여. 우리 형제지간들이며 식구들이 아버지 없는 설움으로 어렵게, 어렵게 살았다는 것.”

이들에게 상처한 젊은 어머니가 재가하지 않고, 곁을 지켜주었다는 것은 큰 자부심거리였다. 그만큼 우리 큰아버지에게는 또 다른 상처일 수밖에 없는 지점이기도 했다.

“그나마 우리라도 잘잘못을 가려서 혼내주자니까.”

“암, 나도 백 번 천 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근디……, 진짜로 겁나는 일도 또 있어. 내가 아는 것이 없어서 우리 아부지 목숨값도 놓쳐버린 사람이여. 아, 몇 해 전에 뭣을 해가꼬 돈 타라고 뭐 한 것 있었지 않소?”

“우리는 그럴 엄두도 못 내었지요. 그 때까지도 쉬쉬하기 바빠서.”

“억울하게 죽은 우리 아버지 한풀이를 제대로 해야겠는디 통 답답하기만 했지. 뭔 서류들도 복잡하고 뭘 통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러다가 변호사라면서 일을 봐 줄 수 있다고 연락이 오기에 돈이 들더라도 할 만큼 해보자 싶어서 냉큼 일을 맡겨버렸지.

아이고, 내 참. 살아갈 면목이 없어. 그 변호사가 나 같은 사람을 전국에서 17명을 잡았는 갑드만. 그때 정부에서 17명 앞으로 돌아갈 돈을 솔찮하게 주었는디 그것을 그 변호사 놈이 몽땅 가로채버렸어. 멱살을 잡아채서 주리를 틀어도 속이 안 풀릴 노릇인디, 그놈도 죽어버렸어. 겨우 그 놈 앞으로 있는 집 한 채 팔아서 17명들 직계손들 나눠가지라고 쥐꼬리만큼 나온 것이 다였어.”

“허어, 그래도 그 속으로 어찌 살아내네 그랴. 뭐, 이제껏 아무 것도 안 하고 없었던 일인 것처럼 살아온 내 속도 그 못지않구만.”

“그래 놓으니까, 내가 그놈들 몰아내자고 곡괭이라도 들고 쳐들어가고 싶은디……. 누가 손가락질 할까봐. 속으로들 지그 아부지 목숨값 받을 것 다 받은 놈이 그런다 할까봐. 아부지 목숨값 사기 당하고 애먼 데다 화풀이한다고 하지는 않을까 싶어서…….”

또다시 피해를 당하고 생존한 자들의 분노와 혐오는 스스로에게 돌려진다. 도돌이표다. 결국 아버지의 전의도 이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 하고 말 것이다. (15회)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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