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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길 수 없는 한문학칼럼 39 - <이청준 신화를 삼킨 섬> 1, 2
문학박사 송은정

이청준의 <신화를 삼킨 섬>에는 ‘아기 장수 설화’와 관련해 고려 때의 김통정 장군과 김방경 장군이 다뤄진다. 제주도 무속, 심방가의 두 줄기 내력과 관련한 두 장군의 전설이다. 고려 시대 한 과수댁이 지렁이와 정을 통해 아이를 낳았고, 아이의 성을 ‘지렁이 진’자로 정해 ‘진통정’이라 불렀고, 후일 아이의 비범함을 탐낸 이웃의 김씨가에서 ‘진’과 ‘김’이 비슷하다고 ‘김통정’으로 불러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주 성산포의 한 마을에서 당신으로 모시고 있는 김통정은 아기 장수로 태어났다.

이후 삼별초의 우두머리가 되어 관군의 세력이 이기지 못해 진도를 거쳐 제주도로 건너간다. 김통정은 항바들이라는 요지에 토성을 쌓고 궁궐을 짓는다. 여·몽연합군을 습격하며 세력을 떨치던 김통정은 배 1백 60여척에 수륙군 일만여 명을 동원하고 온 고려 장수 김방경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김방경은 제주 안덕고을의 한 본향당신으로 신화화되고 있다.

김통정, 김방경 두 장수의 도술 겨루기와 무훈담 등 제주도 심방들의 본풀이에 남아있는 두 장군의 설화를 이청준은 소설에서 제주도 역사의 비극적 이면과 연결시킨다. 어려서 죽임을 당하는 아기 장수들에 비해 김통정은 삼별초의 우두머리로 억눌린 백성을 위해 관군과 대항해 싸우다 죽어 당신으로 좌정한다. 이는 긴 세월 쫓기고 억눌리며 살아온 제주도 사람들 자신의 소망과 비원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당신으로 좌정한 도술에 능통했던 김방경에 의해 배척당하고 죽는다.

이 점에 대해 소설은 두 장군이 섬사람이 아닌 외래 지배자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김통정은 제주도 사람들에게 가짜 구세주였고, 섬사람들은 그에 속아 무고한 피땀을 흘렸다고 본다. 때문에 뒷날에 김방경 장군이라는 새 영웅 전설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또한 김통정을 부인하고 김방경을 받드는 선택적 갈등이 아니라, 김방경 역시도 함께 부인당해야 할 양비론적 대립의 길이었다. 왜냐하면 김방경 역시도 섬사람들과는 운명을 같이 할 수 없는 외래 장수로서 그 섬과 섬사람들을 다스리는 지배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신화를 삼킨 섬>1, 197쪽.)

즉 표면적으로 두 경향으로 이분되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두 인물을 모두 부인하는 전면적 부정의 정서가 깔려 있다. 소설 속에서 제시된 제주 4·3의 피해자와 유족을 대표하는 청죽회나 한얼회가 그렇듯이 제주도 사람들에게 그들은, 육지부 세력과 그를 대신하고 나선 일부 섬 유력자들의 제 편 힘 불리기 놀음이나 하는 이들로 보려는 것이다.

정부 권력의 알레고리인 큰당집(큰집)은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제주도 행정기구를 상징하는 작은집 이과장을 통해 모든 것을 지시하고 진행해 간다. 표면적으로 노출되지 않는 큰집은 서류상의 연락, 명령과 보고 등의 형태로 작은집에 지령을 내린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상급기관인 큰집을 대표하는 주재관은 늘 부재중이다. 결재 서류의 사인마저 큰집 주재관의 성과 필체마저 똑같은 작은집의 이과장이 대신한다.

작은 권력은 처음에는 큰 권력의 명령으로 움직이지만, 이후에는 큰집의 암시에 따라 알아서 큰 권력의 실체를 형성해 가며 그 권좌의 시혜를 받는 존재로 스스로를 굳혀 간다. 심지어 그 권력에 대항하는 힘마저도 마찬가지의 알고리즘에 따르게 된다.

그 반정권 세력화의 길 또한 또 다른 상대적 권력의 추구요, 자신도 필경엔 그 권력권의 회로 속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오. (<신화를 삼킨 섬>2, 75쪽)

그 사람들은 그 양지나 음지, 이를테면 한얼회나 청죽회 어느 쪽 영향권에도 속하지 않으려는 제3의 도민층인 셈이지요.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선 나름대로 정의요 진실을 살고 있을 그 한얼회나 청죽회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어찌 보면 그게 진짜 이 섬의 역사적 운명을 함께 살아온 한 생존단위의 공동운명체 백성들인지도 모르고요, 누가 옳고 그르든, 어느 쪽이 무슨 소리를 하든, 이쪽저쪽이 번갈아 가면서 막판까지 서로 따지고 밀치고 해 왔지만 이 섬에 무엇이 달라진 게 있었느냐, 사람이 살아온 동네를 두고 그 초토화니 뭐니 또 다른 화근만 부르는 일 아니었더냐. (<신화를 삼킨 섬>2, 77쪽)

르네 지라르는 “인간 사회가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희생양을 산출한다.”고 했다.

이청준은 이 소설에서 광주 5·18을 “1980년 서울의 봄 이후.......육지부에서는 지팡이 사내를 중심으로 형성된 횃불 행렬이 K시로 남행하고 있다. K시민들의 횃불 행렬도 무서운 기세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 지팡이 남자가 K시로 들어서면 횃불의 무리는 폭발이 불가피할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신군부는 계엄사태 속에서도 행렬의 남하를 방치하며 혼란과 무질서 상황을 조장하고 행렬의 위험한 폭발까지 유도하고 있다고 본다. 신군부가 전국 계엄의 계기나 구실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실은 1948년 이승만 정부가 그랬듯이 제주도에서 만들어진다.

‘역사 씻기기 사업’ 명분으로 외부 무당들이 치른 한라산 무연고 유해를 위한 위령굿은 이 같은 빌미가 될 폭발을 일으킨다. 큰당집의 의중을 짐작하며 스스로 일을 꾸며간 작은집의 철저한 기획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정작 무연고 유해 상자를 쟁탈하기 위해 맞부딪히며 섬의 폭발을 일으킨 청죽회나 한얼회는 그러한 기획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나 소신에 의해서라고 믿고 있다.

한라산 유골 위령제가 치러지면서 제주 시내는 온통 소란과 혼란에 빠져들고 육지부 지팡이 사내의 남행 횃불 행렬이 K에 당도하면서 제주도를 포함해 전 지역에 비상계엄령이 확대 선포된다. 그리고 그 남행 횃불을 이끌어온 지팡이 사내는 국가변란 음모와 선동고무죄 명목으로 체포 투옥된다.

그리고 결국 70여년 전 2만 혹은 3만으로 서로 다르게 셈하여지는 희생자와 같이 40년 전 광주는 4천 3백여 명이 넘는 무고한 사상자가 생겼다.

우리는 누군가들의 헤게모니 쟁탈전 때문에 이편과 저편이 되어 서로를 저격하는 꼭두각시였음을 시인하고 싶지 않다. 각 자의 정의에 의해 부정한 것에 맞섰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죽음과 상처뿐인 결과를 마주하며 우리의 그 폭력적 맞섬을 부인하고 싶어진다. 그저 피해자였음만을 항변하고 싶어진다. 역사가 무엇이라 정명화하든 분명한 것은 무고한 죽음뿐이며 그것으로 얼룩진 불명예가 주는 무기력증이다. 그것은 이청준의 <신화를 삼킨 섬>이나 송기숙의 <오월의 미소>에서 말해지듯 씻길 수 없는 한이 되어 죽은 원혼과 현재의 우리에게 배여있다.

이청준의 논리는 무정부주의자나 허무주의자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청준은 소설을 통해 이편도 저편도 아닌 무고한 이들이 가슴에 좌정시킬 신화 같은 평화적 방법을 강구하고 있지 모른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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