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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한 그루를 등에 지고문학칼럼 42 염승숙, <습(濕)> , 『이상문학작품집』, 2013.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아버지의 낡은 메리야스 어깨끈 사이로 생경한 무언가 비죽 솟아난 게 보였다. 네다섯 살 어린아이의 손 한 뼘만 한 길이였고, 파릇했다. 짧고 날카로운 잎사귀들이 자갈처럼 단단히 붙어 있었다.

소나무인가.

그는 놀랐다. 소나무 한 그루를 등에 진 아버지가 얇은 아사면 이불을 허리춤에 말고 끄덕끄덕 잠에 취해 있었다. (268면)

몸이 변형된다는 것.

온라인 매체를 통해 쉽게 검색되는 환골탈태에 성공한 다이어터나 운동, 성형 마니아들에 의한 몸의 변화는 흥미로운 가십거리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신체의 극단적 변형은 그 주체에게는 죽음 같은 진통의 과정을 거친 결과이겠지만, 보는 이에게는 관음증을 유발하는 외설적인 자극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몸의 변형, 그것은 우선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라던 이상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뚜―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리는 현란을 극한 정오”에 인공의 날개가 있던 겨드랑이가 가려워지자 “날개야 다시 돋아라”라고 외치며 추락하는 형상과 함께.

좀 더 극단적인 프란츠 카프카가 상상해 낸 흉측한 해충이 되어 힘겹게 뒤집힌 자신의 몸을 확인하는 그레고리 잠자의 변신이나 프랑켄쉬타인 박사에 의해 조각조각 이어붙여 만들어진 혐오스러운 몸뚱이를 바라보는 괴물을 떠올리게도 된다.

이런 몸의 변형은 앞의 것들과는 현저하게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자기에 대한 부정과 수치와 혐오를 동반하는 형벌 같은 것이다. 감추고 싶지만 감춰질 수 없는 변형된 형상은 고립과 소외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온 집 안이 다 축축하다”라며 반지하 방에서 7월 장마를 나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등에 난 소나무를 바라보는 것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염승숙 (1982년~, 서울 출생, 2005년 『현대문학』에 <뱀꼬리왕쥐>로 등단,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 『노웨어맨』)의 소설 <습(濕)>은 2013년 이상문학작품집에 수록되었다. 7년 전에 읽은 이 소설은 작가 이름은 잊히곤 하지만 그 제목과 함께 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작품이다. 아마 소설 맨 앞에 묘사되는 등에 무언가를 지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모습, 낡은 메리야스를 입은 힘없는 아버지가 주는 인상이 컸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온라인 상조회사’라는 설정이 주는 특이함이 오랫동안 내가 이 소설을 기억하는 이유이다. 신종 사업체인 이 회사는 온라인상에 남긴 모든 발자취와 흔적을 처리해주는 회사이다. 온라인 상조의 장례절차를 의뢰한 회원이 사망하고 나면 그들이 생전에 활동했던 미니 홈피며, 블로그, 카페, 커뮤니티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활동 내역을 지워준다. “잘 지내요.” 같은 마지막 인사말을 대신 전해주고, “완전히 잊히고 싶어요.”라는 요구사항을 수행하는 회사이다. 꼭 필요한 일이다 싶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은 더블엔젤스라는 온라인 상조회사에 다니는 진구오의 하루를 따라가며 전개된다. 장마철에 출근 전 아버지의 등에 난 소나무를 발견한다. 프랑스 말이라는 바리깡으로 이발을 하던 이발사였던 아버지는 소나무가 자라기 이전에는 그 자리에 귀가 있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자신처럼 등에 귀가 달린 사람들이 있었다고. “양쪽 날개뼈 사이의, 등 중앙 부분에 어른 엄지의 절반만 한 귀가 하나 더 매달린 사람들이 왕왕 있노라고.” 귀가 세 개인 셈인 그들은 더 잘 들을 수 있었으며, 등에 귀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어느날 자고 일어나 감쪽같이 귀가 사라지자 아버지의 아버지는 없네, 없군 하며 혀를 쯧쯧 찼다고 한다.

“습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습한 장마에 아버지의 등, 귀가 사라진 등에는 새로 소나무가 자라난 것이다.

진구오는 상조회사에서 이미영이라는 여자 회원을 배정받았다.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던 서른네 살의 위암 4기 환자였다. 온라인 상조도 온 마음을 다해 명복을 빌어주며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만큼 이미 죽은 자가 온라인상에 남긴 어떤 기록이나 정보 따위를 그러모으고 정리한 다음 요청대로 처리하는, 삭제시키는 일이지만 그 일은 하루걸러 집 앞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잔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 된다.

진구오는 배정받은 지 얼마되지 않아 죽은, 온라인상에 남겨진 자신의 모든 것들을 모조리 삭제해주길 원했던 이미영 관련 업무를 빨리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남긴 흔적들을 통해 생전 그녀가 표현했던 마음들과 그녀가 느낀 비애들을 하나씩 되새김질하며 듣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

지금은 추억의 장소가 되어버린 오래된 이발소를 운영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잘 들어줘라.”라며 귀가 셋이었던 사람답게 말하고는 했다.

잘 들어줘라.

이 소설에는 잘 들어줘야 할 사연들을 지닌 몇몇 인물들이 제시된다. 먼저 아나운서가 되려 했지만 꿈을 이뤄준다며 끊임없이 손을 벌리며 돈을 요구하는, 매일같이 무언가를 교정해야 한다고 강요하며 돈을 쓰도록 하는 세상에 지쳐간 이미영이 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아카데미에 돈을 쓰며 꿈을 꾸면 슬퍼진다는, 길지 않은 칙칙한 일생을 살았다는 34살의 젊은이의 아픔은 처리해야 할 업무만은 아닌 것이다. 또 진구오가 근무하는 상조회사의 사장은 오십이 넘은 나이에 기러기 아빠로 십 년을 외롭게 지내고 있다. 그날 출근하지 않은 사장의 사정도 잘 들었어야 했다. 출근길 지하철역 앞에 신축된 육 층짜리 건물 때문에 쫓겨난 사람들, 프랜차이즈 지점들에 밀려난 인근 자영업자들의 시위에도 귀 기울였어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 서운한 낯빛으로 없네, 없군 하며 축축해진 채 혼자 남겨져 있을 아버지의 말을 잘 들었어야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등에서도 귀가 없어져 버리기라도 한 듯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 서운해했을 것이다. 없네, 없군.

우리에겐 주위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세 번째 귀가 없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못 보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귀 기울여 줄 여유가 없나 보다. 대신 마음속에 그들의 아픔이 축축하게 젖어들어 부끄러움 혹은 연민 같은 습기를 머금고 묵직하게 가라앉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그러다 편히 누워 쉬지 못하게 하는 꺼끌하고 거친 소나무 한그루씩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형편인지도.

아직 비가 내리지만 장마는 곧 끝날 것이다. 그때까지 아직은 습기를 조심해야 한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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