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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섬진강변 사람들문학 칼럼 43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옛말에 삼불근(三不近)이라고 했어요. 산불근(山不近), 수불근(水不近), 읍불근(邑不近).”

그래야 삶의 거친 풍파를 피하며 평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꺼낸 구례군 토지면의 한 어르신은 분명 여순10·19사건 당시에 당신 살았던 지리산에 안긴 고향 땅을 두고 한 말이었으니 산불근이 가져온 불행을 지칭했다. 그런데 그 산자락 피해 섬진강 변 평지 마을에 자리 잡은 지 오래인 어르신은 지금에 와서 다시 수불근이 화근이 되어 한숨 쉬고 있다. 집중호우에 불어난 섬진강은 거센 황톳빛 물살로 쿠르릉거리며 가슴 졸이게 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장마와 집중호우에 집들이 잠기고, 소들이 떠내려가고, 길이 끊겼다는 구례에 태풍 장미까지 지나갔다. 5월부터 구례를 오가며 여순10·19사건 증언을 채록하며 인연 맺은 어르신들 모습이 스쳐갔다. 그 어르신들께 전화로 안부를 물으니 평생 이런 수해는 처음이라는 떨리는 목소리에 깊은 한숨이 섞인다. 삼불근을 지키지 못해 고통스러운 그들의 삶이, 봄과 여름 구례를 찾아 들은, 말이 될 수 없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은 시절에 대한 증언들이 떠올라 잠자리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을 몰래 참았다. 이튿날 다행스럽게 태풍 장미의 위력이 걱정만큼이 아닌 듯해 아침 일찍 홀로 훌쩍 구례로 향했다.

새벽에 오른 뒷산에서 안개 자욱한 도심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한 날씨였지만 순천을 지나 청소골로 접어들어 계족산 자락을 굽이굽이 넘어 구례로 향해갈 때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구례로 막 접어들며 마주한 섬진강은 여전히 황토물로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구례의 수해를 보며 수불근의 아픔과 관련된 구례의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는 간전면 삼산리 산정마을에 살았어. 형제자매는 남매라, 오빠와 나. 전에는 많이 낳았는데 이 코로나처럼 홍진(콜레라)이 들어갔다 하면, 한 집에 두, 세 명씩 죽어버리네. 동방천 배가 없어, 다리가 없어. 지금 다리는 나 시집온 뒤 아이들 다 낳은 다음에 놓았으니까 그때는 다리가 없었어. 그러니 병원을 갈 수가 없어. 한집에 홍진만 들어갔다 하면 열이 나서, 애기들을 오늘 묶어내고, 내일 묶어내고. 네 살 다섯 살 먹은 것들이 막 죽어자빠져. 전에 병원에 갈 줄 아는가. 구례읍에도 병원 하나나 있는 것, 업고 걸어가도 못하고 홍진 났다 하면 죽을 줄 알고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냥 꿩터럭(꿩 깃털)이나 삶아주고, 토끼고기나 삶아 먹이고 그리 살아서 인자 다 죽어버리고 남매 살아있었어. (고정순, 85세, 구례군 간전면 중평리 중평마을, 2020년 5월 26일 채록)

형제는 원래 2남 2녀인디 셋이다 죽었어. 내가 첫째인데 동생들이 아기 때, 어려서 죽었어. 홍진에 죽고, 어쩌다 죽고 많이 죽었어. 동생들이 영 똘똘하더라고 나는 바보 같아도, 근디 그것들이 싹 가불데. 그래서 엄마가 반이나 미쳤어. 자식 셋을 그래가지고, 맨발로 저 산, 돌팍 있는 데로 홀떡훌떡 뛰어다니고 그러더라고, 애기들이 싹 가분께, 한꺼번에는 아니고, 막둥이를 보내놓고 더 그러드만. (고재순, 82세, 토지면 운조루길 자택)

전염병이 돌고, 섬진강 물까지 불어나면 병원 갈 도리가 없어 어린 자식들을 잃어야 했던 어머니들의 가슴 미어지는 사연들이었다.

자연재해나 전염병처럼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일뿐 아니라 여순10·19사건 같은 인간들이 자초한 일에서도 섬진강은 그 잔혹한 시대를 목격하고 품어내야 했다. 14연대 군인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면서 구례 사람들은 군인과 경찰들에 의해 봉기군의 협력자이거나 동조자로 의심받아 학살되거나 군경의 진압 작전에 동원되어 위태롭게 목숨을 내놓고 살아야 했다.

구례군 간전면 섬진강 동방천

동방천에 다리가 없어서 모래가마니로 다리를 놓았어. 그 한겨울에 홑껍데기 미영(무명)저고리 홑죽만(홑바지) 입고, “느그들 안 나오면 총살한다.”라고 하니께 벌벌벌 떨고 지게를 지고 그 바지개 들고, 그때 11월에 물이 찰찰 넘치는 데다 모래가마니로 그 단을 놓네. 여순사건 때 12연대 진압군인들 지프 건너라고. 그때는 내복이나 있당가? 내복도 없이 몇 시간에 다리 안 놓으면 느그 죽인다 하니, 싹 쏴 죽인다항께 추운 것도 뭣도 모르고 막 뛰어들어 놓는 거야. 모래가마니를 놔두면 궁글어서 물에 떠내려가고 패이고. 얼음은 얼어가고 그때같이 추울 때가 없어. 아이고 말도 못 해, 얼음을 털어내면 자디잔 얼음이 정강이를 쪼사부려. 피가 방울방울 맺히고. 헐 수 없는 일이라 그때는 못 죽어서 살아.

그 시절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각 개인의 생존 본능에 따른 미움과 배반, 모략 등이 동반되며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대한 부끄러움을 키웠다.

간전국민학교에 잡혀있던 마을 사람이랑 우리 아버지를 내일 내보낼 것인데. 백인엽이 지그 형 백인기가 남원서 내려오는 밤티재, 굴다리가 있어. 거기 가다 산으로 들어간 반란군들 습격을 당해서 나중에 죽어버렸어. 그래서 백인엽이 지그 형 장례식하고 “죄 있고, 없고 저거 한방에 싹 쏴 죽여버리라. 교실에 있는 놈 싹 싸 죽여라.” 그런 거야. 우리 어매가 애기를 배가꼬, 우리 어머니가 그때 37살인데 임신했어. 그래가꼬 학교에 잡혀있는 아버지 점심 해다 주고 먹여서 그릇 챙겨서 이고 오려는데 (중략) 백인엽이 그놈이 입을 놀려버린 거라. 한 시간 내에 저거 안 죽이면 느그 총살해버린다. 그런께 기관총을 거기다 딱 올려놓고 몇십 명을 죽였는가 몰라. 간전면 사람들을 다 죽여버렸잖아.

한날 학교 너머 갱변에다(강변)에다 놓고 죽였어. (중략) 어머니가 아들이 하나인께 더 낳는다고 임신을 해가꼬 있는디 그해 정월 달에 머이마를, 죽은 머이마를 딱 안 낳아 분가. 얼마나 안 죽겠는가? 죽은 애기가, 희거니 죽어서 나왔어. 그래가꼬 이 세상을 살았어. 살아 나왔어.

섬진강의 지류들인 양정지구 (양갱이 갱본–양정리 강변)와 간문천변, 서시내에는 70여 년 전 여순 10·19사건으로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집단 학살당한 많은 이들의 죽음이 묻혀있다. 그 죽음의 사연들은 지리산 그늘, 섬진강 물소리에 갇혀 아직도 풀어내지지 못하고 있다.

그 죽음이 안긴 트라우마는 여전히 한 사람의 인생을 좀먹어가고 있음을 어제 또 확인해야 했다.

구순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를 찾아가 빨치산 대장 노릇을 했다는 어르신의 오빠 이야기를 물으려 하니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나를 쫓아낸다.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두 손을 비벼대며 허리를 굽신대며 용서를 구하는 몸짓을 했다가, 가라고 손사래를 치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평생 자신의 삶조차 빨갱이로 낙인찍히게 한 오빠, 그 잘나고 똑똑한 오빠 탓에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했던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꺼내오기 위해 6·25전쟁에 나가 목숨을 바쳐야 했던 작은오빠도 함께 떠올랐을 것이다.

어쩌면 저 지리산 허리에 걸쳐진 구름처럼, 섬진강을 떠도는 물안개처럼 너무 아픈 것들은 그냥 그렇게 감춰두었어야 했는지 모른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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