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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기도 하고, 유턴도 하고. 다시 떠나고문학 칼럼 44 윤성희,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 제50회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2005.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제가 비밀 하나 알려드릴게요. 사실 저에겐 보물지도가 있는데, 생각 있으면 저랑 같이 찾으러 가실래요?

같이 찾으러 가실래요?

무슨 생각하세요?

먼저 운전을 배워야 떠나지. 새벽마다 뒷산을 올라 체력도 길러야 해. 중고차도 한 대 사고, 커다란 배낭을 사고, 삽과 곡괭이는 무거워도 챙겨야겠지. 망원경도 있어야 할까?

아, 무엇보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가가 중요하겠군.

참 많은 것이 필요하겠구나 싶어 복잡해지시나요? 아니면 그런데도 흥미진진한가요?

쉽고 간단하게 뚝딱 되는 일이란 참 드물어요. TV와 인터넷에서는 몇 분 만에 할 수 있는 참 쉽죠잉 시리즈가 수두룩하고, 뚝딱뚝딱 레시피나 매뉴얼이 넘쳐나지만, 막상 내가 하려면 뭐 그렇게 준비할 것이 많은지 말이에요.

소설 속 인생사도 그렇더라고요. 우리 인생만큼이나 등장인물들 삶과 그들의 내면이란 복잡하거나 절박하거나, 허무하거나 뭐 허무맹랑하기도 해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윤성희의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의 서사들도 딱히 다르지 않은 것 같네요. 이 책을 간단히 소개해드리려 하니, 거 참, 늘 그렇듯 뭔가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조급증에 또 가슴이 답답해지려 하는 걸 보니까요. 아, 그래도 이 책은 정말 행복해지는 책이라고, 같이 읽자고 하고 싶었어요. 9월, 가을도 시작되니 산뜻하고 가볍고 행복한 마음으로 같이 출발하고 싶어서요. 이 책은 당연히 그렇게 만들어 주거든요.

작가 윤성희(1973년 경기도 수원,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레고로 만든 집> 당선)는 간단하지 않은 인생사를 무게를 빼고 담백하게 쓰는 재주를 가졌더라고요. 비법은 형용사와 부사를 빼는 거라고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지요. 또 설령 그런다 해도 누구나 이렇게 따뜻하고 잔잔하고, 긍정적인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에는 서술자 나를 둘러싼 인물들이 여럿 나와요. 할아버지는 나이트클럽 사장인데 유도선수 출신으로 강한 정신력을 강조하죠. 배다른 자식이 여덟 명이나 되는 것이 강한 정신력과는 상관없겠지요? 아버지는 큰아들로 강하게 키워졌지만, 할아버지 앞에서만 말을 더듬거리다 집을 나왔고, 쌍둥이 딸을 낳다 부인이 죽자 다시 할아버지 밑으로 왔다가 쌍둥이 중 첫딸이 죽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또 쌍둥이 동생인 나 혼자만 놔두고 상속도 마다하고 집을 나가버리죠.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행사에서 5년을 근무한 어느 시기에 부산행 기차 안에서 돌아가셨다고 해요. 나는 집의 문을 잠가두지도 않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기차 좌석에 앉아 여행을 떠나요.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는데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거든요. 한 여자가 지하철로 뛰어든 사고를 겪은 후 일을 그만둔 기관사 출신인 Q를 만나요. 그가 운영하는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찜질방에서 지내지요. 찜질방에서 자꾸만 누군가에게 발이 밟히고 부딪히는, 잘 보이지 않는 여자 W를 만나요. 셋이 찜질방에서 고스톱을 치다 가출 고등학생의 보물지도 이야기를 듣고 넷이 보물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죠. 보물은 당연히 못 찾고 돌아왔는데 중국집은 주방장이 쓸만한 것을 다 가지고 도망가고 남은 것이 별로 없었지요. 그래서 그들은 중국 음식 대신에 Q가 잘 만드는 만두와 W가 좋아하는 매운 소스를 넣은 쫄면을 팔기로 했지요. 대박 나서 행복해졌어요. 옛집을 찾아 슬며시 엿보니 젊은 부부가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어서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지요.

이야기 끝. 너무 간단하게 내용을 다 말해 버렸나? 20쪽 분량의 단편이니까 읽기도 편해요. 무엇보다 해피엔딩이라서 좋지요?

소설 속에 그려진 인물과 일상은 짧고 간단하게 서술, 묘사되지만 사소한 부분들까지 포착해내는 디테일이 있답니다. 한 명 한 명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녹록지 않은 삶이에요. 그러고 보니 그 20쪽에, 가만있자 몇 명이나 죽었지? 어머니, 쌍둥이를 키워줬던 누룽지 할머니, 쌍둥이 언니, 할아버지, 아버지, 기관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여자. 또 있었나? 아무튼 죽은 사람이 6명이네요. 게다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잃고, 분신 같은 쌍둥이 언니에, 아버지까지 잃은 나가 어떻게 담담할 수 있겠어요? 누구의 삶이든 들여다보면 참 서글픈 것투성이지요. 그래도 소설의 문체는 독자가 그런 것에 너무 얽매이지 않게 해요.

아마도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가장 주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유산을 포기하는 대신 싹 수 없는 일곱 배다른 형제들 뺨을 한 대씩 때리고 떠나는 것처럼. 그 딸인 나도 홀로 집을 훌쩍 떠나고, 보물을 찾아 떠나고.

생활이든, 감정이든 집착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그려질 수 있겠지요. 그냥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감당할 것은 감당하고, 그러다 떠날 수 있으면 기꺼이 떠나고. 참, 말은 쉽죠잉.

아, 작가 윤성희의 종교는 불교라네요. 마음 수련이 그만큼 되어서일까요?

보물지도를 손에 들고서, 보물을 찾고 말겠다는 집착을 버리기는 쉽지 않지요. 뭐, 보물지도는 있으면 좋지요. 그래서 운전도 배우고, 차도 사고, 뒷산도 올라 체력도 기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보물지도를 손에 넣고, 준비도 철저히 해도 꿈꾸던 보물이란 찾을 수 없을 때가 더 많잖아요.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럴 땐 또 유턴해서 돌아와요. 그 필요 없어진 보물지도일랑 그 자리에 묻어두고, 또 떠날 준비를 하면 되지요.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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