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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져야 할 질문과 안아야 할 상처 2여순사건 구례지역 구술채록 조사 용역의 성과와 과제(지난 호에 이어)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너희는 그 시절이 어땠는지 절대 알 수 없다.

구술자들은 답답해했다. 그런 속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고. 나 죽게 생겼는데, 하나뿐인 목숨인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일 것인가. 내가 살아야 남은 자식, 늙은 부모가 살 것 아닌가. 그저 살아남는 것이,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이 우선인 것을. 그리고 죽더라도 반란의 편에서 죽는 일이란 없어야 한다. 남겨진 이들을 위해.

어느 때라고 인간이 인간의 목숨을 하찮게 다뤄도 된다는데 동의한 때가 있었을까? 인간의 존엄을 포기해도 문제 되지 않은 때가 있을까? 그러나 내 생존이 걸린 일이라면 그건 차후의 것이 된다. 제국주의의 잔재에 기대어 권력을 창출하고 보존하려는 이들은 분단을 초래하며 한국 현대사의 매듭 하나를 단단히 꼬아버렸다. 부당한 권력자들은 생존만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라는 위기의식과 공포를 조장했다. 그것은 그들의 전략이었다. 그리고 편을 갈라 생사를 건 대결로 서로를 증오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전술이었다.

종교나 국가의 이름으로, 혹은 사상의 수호나 질서와 번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생명과 인권을 도외시하는 것은 타락이다. 완전한 인간의 타락일 뿐이다. 그것은 말이 될 수 없다. 설명될 수 없는 부조리는 납득되어야 할 역사가 아니다. 심판대에 올려 죄를 선언하고, 형벌로써 추방해야 하는 죄악이다. 부정되어야 할 인간의 추악함이다.

지리산 아래 토지면에 보리가 익어갈 무렵, 마을 어귀까지 연구자를 마중 나온 구술자

역사를 주도한 ‘야물고, 많이 배운’ 이들은 죽임을 당해 말할 수 없다.

70여 년이 지난 일에 대한 구술채록은 엄밀히는 역사의 기록일 수 없다. 역사를 주도한 당사자들의 증언이란 불가능해진 지 오래되었다. 구술은 살아남은 이들의 그 이후 70년의 미시서사이다. 물론 그들 인생의 항해란 국가가 주축이 되어 일으킨 파도를 가르는 일이었음을 전제로 한다. 구술은 부모와 형제, 친지를 앗아간 거대한 역사의 풍랑에 닻줄이 끊긴 이후의 서사이니까. 그리고 주목할 점은 그 항해에서 가장 뚜렷한 나침반은 1950년대에서 1980년대를 거치며 굳혀진 국가가 종교화한 반공 이데올로기였다. 개개인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것이 될지 모르나 이번 구술자들의 삶은 반공주의라는 고정된 방향타에 묶여있었다. 그러니 이 채록이 여순10·19의 사실적 전개와 구체적 기록을 찾기 위한 역사 자료로 사용되는 것은 주의를 요한다.

특히 문제적 지점은 그들의 구술이 일방적인 피해자의 시각이란 것이다. 당대 역사를 주도했던 이들은 구술자들 말에 의하면 ‘똑똑하고, 말 잘하고, 야물고, 많이 배우고, 잘나서’ 일찌감치 잡혀가서 목숨을 잃어버렸다. 살아남은 이들은 ‘쬐깐하니 몸집도 작고, 못나고, 못 배워서’ 였다고 위안해야 했다. 그러니 혁명의 역사, 개혁과 저항의 기록들은 남겨질 수 없었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니 패배한 민중들의 목소리는 지워졌다. 국가의 반공주의로 재구성된 교과서에 실린 ‘반란’의 기록만이 오랫동안 국민 의식의 틀을 형성해왔다. 10년 전 진화위를 통해 국가의 위법이었다고 결정됐다지만 더 오래전부터 굳어져 온 왜곡된 거대한 역사는 바로잡히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와 상관없이 이번 구술자 대부분은 당시 미성년이었기 때문에 역사의 중심에 편입되지 못했던 이들이다. 그들은 피해자로 남겨진 이들이니 피해자로서의 구술이 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절대적 의지처인 아버지의 죽음과 그 이후의 삶은 늘 그렇게 피해자로서의 자리를 감당하는 서사였다.

반공주의가 절대화된 세상에서 살아낼 방법은 반군의 편이었던 희생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길밖에 없다. 그들을 체제에 어떤 불경스러운 일도 하지 않은 아무 죄 없는, 억울한 희생자로 위치시켜야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시대는 그렇게 살아남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찾을 생각조차 못 하게 했다. 피해자 아니면 죄인이 되어가는 방식밖에는. 죄책감을 형벌처럼 안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선은 국가가 언도한 ‘반란’의 편, 혹은 그 가족이라는 죄가 지배적이었다.

또 그 반대편에서 스스로에게 씌우는 ‘부정과 외면’에 대한 죄책감이다. 남겨진 힘없는 이들은, 역사를 주도했던 그러나 패배한 이들의 정의로움과 열정을 철저히 숨기고 부정했다. 결정적 순간에는 가족이라는 관계마저 외면했다. 연좌제의 족쇄가 두려워 호적을 옮기고, 사망 날짜와 이유도 바꿨다. 죽은 가족, 자신의 뿌리를 쳐내고서 죄의식으로 부유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 젊음의 이름 하나하나는 호명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죄인 아니면 피해자로 무덤도 없이 흩어져 해마다 들풀로 피어난다.

제대로 먹이지도, 가르치지 못하는 처지는 어미 가슴을 짓누르는 바윗덩어리였다.

무엇보다 어린 자식과 남겨진, 지아비 잃은 여성들의 죄책감은 몇 겹으로 중첩된다. 예부터 우리네 전통적 정서로 여자가 남편이나 자식을 잃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자신의 사나운 팔자나 운명에서 비롯된 것인 양 여겨야 했다. 남편과 자식 몇을 잃어 정신줄을 놓고 온 산과 들, 동네를 배회하는 것에 대해서는 차라리 너그러웠다. 농사 아닌 삶의 방식이 한정되었던 시절, 여자 혼자 몸으로 자식을 거둘 수 없다는 절망은 현실적이고 즉각적이었다. 제대로 먹이지도, 가르치지 못하는 처지는 어미 가슴을 짓누르는 바윗덩어리였다. 야박한 시선 속에 자식을 두고 재가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자의보다는 친정이나 시댁의 강요에 의해서였다. 속죄하듯 더 못나고, 더 보잘것없는 집으로 보내져, 갑절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했다. 어머니마저 나가버릴까 봐 전전긍긍했던, 재가하지 않은 어머니를 자랑으로 여긴 자식들은, 훗날 홀로 외롭게 살아내신 어머니를 보며 또 다른 죄책감에 눈물짓는다.

두려움과 공포는 여전하다.

구례 여순10·19의 시간은 길었다. 그리고 그를 외면하고 부정한 시간도 가장 길었다. 10여 년 전 진화위 진상 조사로 여수와 순천 유족 일부는 보상금이란 것을 받았다. 그러나 구례 유족 거의는 관련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정보 전달이 미흡해서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를 믿어도 되는지, 정말 이제는 안전해진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남겨진 이들은 두려움의 그늘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그 두려움과 공포가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목격했다.

토지면 오미리에는 6·25전쟁 인공치하에서 순천시장에 해당하는 순천도당위원장을 한, 일명 ‘반란군 대장’이었다는 이의 여동생이 살고 있다. 아흔을 넘긴 청력도, 총기도 예전 같지 못한 그녀를 앞에 두고 그 딸과 전화 통화를 하며 녹화 버튼을 누른다. 그녀를 마주 보며 오빠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최대한 크게 말한다. 순간 그녀의 눈은 공포로 일그러지고 온몸을 들썩이며 “나가! 가! 가!”하며 소리 지른다. 그 절박한 소리와 함께 그녀는 내쫓는 손짓과 양손을 싹싹 비비기를 번갈아 하며 고개까지 조아린다. 무엇엔가 용서를 구하는 처절한 몸짓이고, 징그럽고 무서운 것을 떼어내 버리려는 몸서리이다.

집중호우로 구례의 많은 것들이 물에 잠긴 이후였고, 여전히 마당 화초의 여린 잎에 거센 빗방울이 후두둑거리고 있었다.

안심시켜 보려 하지만, 그녀는 금방이라도 기함할 지경이다. 쫓기듯 빗속으로 내려선다. 그녀가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수렁에, 고통을 가하는 형틀에 발이 묶여 버린다.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듣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이처럼 사로잡히는데 그 격랑의 한가운데를 지나온 이들의 가슴은 어떻게 버텨내온 것인지…….

그렇게 쫓기듯 나와서는 안 되었다.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다고 서둘러 몸을 빼내 버리지 말아야 했다. 손을 꼬오옥 잡고, 이제는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안아드렸어야 했다.

곧 다시 떠나야 할 것 같다. 충분하지 못했다. 해야 했던, 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너무 늦어지지 않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서둘러야겠다.

지리산이 품어온 한 많은 세월과 애절한 소망-이규종 여순항쟁 전국연합회 회장의 신춘문예 당선작 <절규> 시비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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