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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당신이라도 마주하고 싶은……문학칼럼 48 정찬 <가면의 영혼>, 1998년 제2회 21세기문학상 수상작품집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당신은 당신의 얼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 이렇게 질문을 바꾸면 어떨까? 당신은 당신이 얼굴에 쓰고 있는 가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

전문가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얼굴은 어떤 동물보다도 표정이 풍부하다고 한다. 짧은 시간 동안 인간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그런 인간의 얼굴을 현대문명은 가혹하게 억압해왔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인다.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현대문명이 인간의 얼굴에 행사하는 압도적 힘의 위력에 대해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문명은 인간의 얼굴이 지니고 있었던 풍부한 표정을 박탈해왔다. (243-244쪽)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려서 눈빛만 보는 것이 고작인 요즘 우리는 서로의 풍부한 표정을 점점 읽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비대면의 생활이 곧 끝날 거라는 기대는 최근 다시 지속적으로 울리는 안전안내문자 알림 소리로 꺾여갑니다. 앞으로도 얼마 동안이나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기 힘든 시기를 나야할지 걱정스러워지지요.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은 우리를 인간적이게 합니다. 물리적인 거리가 좁혀진 상태에서 상대를 느끼는 일이니까요. 뭐 그 와중에 우리는 가끔 누군가를 향해 가면을 쓴 가식적인 얼굴이라며 비난하거나 힐난하며 뒷담화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정찬의 소설 <가면의 영혼>의 앞부분 내용을 곱씹어 보면, 어쩌면 그 가면이라 여겨지는 것도 인간의 풍부한 여러 표정 중 하나이자, 그들이 처한 사회적 위치나, 역할에 맞추고자 하는 노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주하고 있는 이를 배려해 본심을 잠시 접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고요.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인간을 생각한다면, 상대를 바라보는 것 역시 스스로 예쁘게 바라보겠다 선택하면 아무리 냉혹한 가면을 쓰고 있다 해도, 그 뒤에 숨겨져 있을 진심을 보려고 하잖아요. 물론 그 반대이라면 한 사람의 매력이나 사랑스러움을 보고도 가식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고요.

소설에서 지적한 것은 현대문명이 그런 다양하고 개별적인 표정보다 조직이나 구조 속에 어울리는 역할로서의 표정, 가면만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가면의 영혼>의 서술자는 유형지로 추방되었다고 생각하는, 고작 서른두 살밖에 안 되었지만 자신을 퇴역 배우라고 말하는 남자입니다. 그는 연극배우로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숙명을 즐겨야 하는 존재이지요. 그가 배역을 위해 가면을 쓰는 것은 그 자신 전체를 바꾸는 아주 성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서 이아고 역을 맡아 성공적인 연기를 선보인 그는 공연을 마치고 쉬면서 이아고의 가면을 벗겨내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개막을 보름 정도밖에 남기지 않은 연극 <오이디푸스>의 주역 배우가 사고가 났다며 대신 오이디푸스 역을 맡아주길 부탁받습니다. 아주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그는 주저합니다.

그에게 변신은 일종의 통과제의 같은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거듭남의 과정을 수행하기에는 보름이라는 준비 기간은 충분하지 않지요.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나는 들끓는 용암 같은 내 영혼의 액체를 어둠 속으로 흘려보낸다. 그리고 기다린다. 보이지 않는 손을, 영혼의 액체가 더 이상 흘러나가지 않고 내부가 텅 비면 보이지 않는 손이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손은 내 눈을 뽑는다. 눈이 없는 나는 어둠 그 자체가 된다. 보이지 않는 손은 내 혀를 뽑는다. 혀가 없는 나는 모든 말을 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은 내 얼굴을 뜯어낸다. 내 귓속은 얼굴 뜯기는 소리로 가득하다. 그 소리는 고통이자 황홀이다. 변신은 고통이면서 황홀인 것이다. (246쪽)

이런 변신의 과정 이후 연극이 끝난 후 그 가면을 벗겨내기 위해서도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연출자는 새로운 도약의 지점으로 삼으라는 달콤한 유혹을 하고, 결국 그는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새로운 공연이 진행되는 한 달여 동안 그가 채 벗겨내지 못하고 있는, 비열하고 잔인한 인물인 이아고의 가면은 음흉하게 새로 쓴 오이디푸스 가면 뒤에 숨어 있습니다. 그러다 이아고 가면은 불쑥불쑥 정체를 드러내며 배우를 곤혹스럽게 하고, 결국 이 배우를 망쳐놓습니다.

이아고란 배역의 가면은 새로 맡은 배역인 오이디푸스가 운명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지점, 어쩔 수 없이 신탁에 맞춰 살게 되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할 때 저항하듯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가려지고 숨겨진 아직 남아있는 이아고의 가면은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오이디푸스의 또 다른 내면일지도 모릅니다. 강요된 가면 뒤에 숨기고 있는 또 하나의 본성이고, 내면의 목소리이겠지요. 통제되지 못한 채 불쑥불쑥 드러나는 그 얼굴들을 관객들은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잘 짜인 각본에 맞춘 맥락에 맞는 얼굴만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연극이란, 무대란 그렇게 하기로 약속된 것이니까요. 그리고 작가 정찬이 이 소설 말미에서 말하듯 무대가 세계가 되고, 세계가 무대가 된 것처럼 세상도 우리에게 그러하기를 바라니까요.

무대 위에서 배우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그 고통스러운 변신을 통한 얼굴만으로 보이면서 외로워지는지 모릅니다. 하나의 얼굴을 완전히 지워내고 적절한 새 얼굴만으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이 마치 유형지로 추방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요. 금방 썼다 벗는 가면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변신까지 해야 할 책무에 놓여있다면, 결국 그 페르소나는 가면 뒤 본래의 존재마저 바꿔놓게 될 테니까요.

조금 변덕스럽다 해도 너무 눈에 뻔히 보이는 가면을 쓴 것 같아 보인다 해도, 그것이 풍부한 표정을 짓는, 다양한 내면을 지닌 인간의 얼굴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요?

어쨌든 지금은 서로의 얼굴들이 그리운 때이잖아요. 너무 광범위한 영역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비대면이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당신과의 거리를 좁히고서 얼굴들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위선적인 가면들이 아닌 그대의 다채로운 내면의 발현이라고 그냥 믿어버리면서 말이지요.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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