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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이 일어난 다음에문학칼럼 50 -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송은정 (문학박사)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네요. 분명 내가 갖고 있던 것인데.

185Cm 정도의 키에 훤칠했던 그 사람의 영혼이 담긴 목소리를 며칠을 이 책장, 저 책장을 뒤져대도 찾을 수가 없어요.

겨울이면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어주어야 하잖아요. 가난한 내가 세상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눈이 푹푹 나리는 산골로 떠나는 이미지는 그대로가 겨울이니까요. 시인 백석을 소재로 한 김연수의 <일곱 해의 마지막>이란 장편소설을 읽기도 했거든요.

올해 출간된 <일곱 해의 마지막>은 월북 후 북한에서 살았던 시인 백석의 삶을 상상으로 그려내고 있지요. 큰 키에 자상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고향과 사랑을 노래한 시인 백석. 사랑한 난이 있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노란 수선화가 피는 통영을 떠나 돌아간 고향에서 새 가족을 이루고서 생각과 다른 체제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시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소설이지요.

소설에서 그려지는 일곱 해는 북한에서 러시아 문학 번역을 하던 백석이 아동문학으로 문단에 다시 등장했던 1957년부터 삼수군의 협동농장 축산반 양치기로 쫓겨난 이후 문단에서 이름이 사라지게 된 1963년까지입니다.

소설을 읽기 전에 백석의 생애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면 좀 더 수월하게 읽힐 겁니다. 물론 소설이니 백석이 월북한 이후의 그의 삶이란, 검색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주요 행적들을 뼈대 삼아 작가 이연수가 상상해 낸 이야기이지만요.

백석은 정치적인 뜻은 없었지만, 고당 조만식과의 인연으로 그를 모셔야 했고, 가족과 많은 친지를 두고 월남할 수 없었기에 북에 남았다고 합니다. 1912년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그는 아오야마가쿠인대학 영어사범학과를 나왔는데 일어와 영어는 물론, 불어, 독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에 능했다고 하네요. 소설 속 기행, 백기행은 백석의 본명이지요. 기행은 북한 조선작가동맹 건물의 노어번역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백석은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등의 문학을 번역했고, 1년에 10권씩 번역하던 시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번역 일을 하면서 기행은 아동문예지에 동시를 싣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가 해야 했던 문학이란 어떤 것이었는지 ‘1958년의 기린’이란 소제목의 글 속에 잘 나타납니다. 그가 쓴 ‘기린’이란 제목의 동시가 작품총화 회의의 비판 대상이 되지요. 비판의 요지는 왜 아프리카 기린이어야 했냐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곰이나 범을 두고, 기린을 떠올렸다는 것만으로 주체적으로 시를 창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는 것이라며 비난받습니다. 백석은 그 자리에서 기린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린에게는 붉은 깃발을 다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지요.

기린에게 붉은 깃발을 달아서라도 그곳에서 시를 써보려 했던 것이겠지요. 그것이 ‘시바이(연극, 속임수)’라 해도.

“이런 상황이라면 결국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시바이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게 개조의 본질이 아닐까 싶어. 시바이를 할 수 있다면 남고, 못한다면 떠나라. 결국 남은 자들은 모두 시바이를 할 수밖에 없을 텐데, 모두가 시바이를 하게 되면 그건 시바이가 아니라 현실이 되겠지. 새로운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네. 이런 세상에서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야. 자기를 속일 수 있다면 글을 쓰면 되는 거지.”(31쪽)

친구 준은 위와 같이 말하며, “다른 길은 없을까?”라고 묻는 기행에게 시를 그만 쓰라고 합니다.

기행은 자신이 시를 다시 쓴 것은 불행 때문일지 모른다고 하지요. 그는 늘 불행에 끌렸고, 기행을 매혹시킨 불행이란 흥성하고 눈부셨던 시절,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결과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사랑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아서.

기행은 자신이 몰래 쓴 시가 적힌 노트를 당시 소련에서 찾아온 시인 벨라에게 맡깁니다. 벨라는 자국으로 돌아가 조선 유학생에게 번역을 맡기지만, 유학생이 잡혀가면서 그 시들은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안 열렸다면, 사과가 열매를 맺었다고 쓰면 되는 것, 그게 바로 창조의 원리라며 당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문학이라고 말하는 곳에서 기행은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불행해지는 것을 감수할 수 있을까요?

기행의 문학적 고민은 이국의 시인 벨라와의 대화를 통해 답을 찾아갑니다. 벨라는 “지옥의 탈출구는 완전한 패배”라고 합니다. 그 말에 기행은 전쟁 통에 피난해 숨어 지내며 불붙은 산하 앞에서 평화에 대한 시를 번역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때를 떠올리며, 지옥 같은 전쟁보다 더 나쁜 것은 그 지옥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이었고, 그런 삶에도 탈출구가 있는 것일까 생각합니다. 벨라는 “모든 폐허에서 한때의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 시를 쓴다.”라면서 폐허를 응시하는 것이 시인의 일이라고 합니다. 전쟁을 통해 평화를,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상처를 통해 회복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줏손, 귀신불, 이랑, 양지귀, 개포 같은 아름다운 말을 잃어가는 지점에서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우리가 알던 세상의 끝에 도달한 것 같을 때, 더 이상 그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을 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설의 제목에는 분명 마지막이 있는데 우리는 그 마지막이란 말 앞에서도 여전히 그 다음을 생각하게 되지요.

<일곱 해의 마지막>은 천불이 타오르는 것을 바라보는 기행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천불은 저절로 생겨나 순식간에 숲 전체를 활활 태우며 나무들을 서 있는 숯으로 만든다고 했다. 그 불을 보고 두메의 화전민들은 생을 향한 어떤 뜨거움을, 어떤 느꺼움을 느낀다고 했다. 불탄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살길이 열리는 것이기에. 천불을 바라보며 흥분한 청년 옆에 서 있자니 기행의 가슴도 은은하게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그때 골짜기로 사이렌의 고고성이 울려퍼지며 잠든 마을이 깨어났다. 그때까지도 기행은 어디에서도 오지 않고,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천불에 휩싸여 선 채로 타오르는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238쪽)

화전민이라면 검게 탄 폐허를 마주하더라도, 화르륵 타오름을 두려워하지 않겠지요. 당장에는 다 앗아가는 불길이라도 그것이 끝나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될 무엇인가를 찾아낼 수 있다면요.

당신은 2020년의 마지막에 무엇을 바라보고 계신가요? 다시 못 돌아갈 이 한 해의 시간에도 소중한 무언가에 대한 사랑들이 발견되겠지요. 패배와 좌절, 상처와 고통으로 폐허 같은 한 해였다 해도. 올 한 해의 마지막은 천불이 일어 잘 끝나고, 풍요로운 그 다음이 이어지길 바라봅니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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