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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그늘에 묻은 말들 4기획 연재 3 – 여순10·19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기원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그래서 할매한테 가서 할매를 데리고 와야 되잖아. 아버지가 총에 맞아서 마당에 드러누워 있으니까. (마을 사람들 소집 장소에) 가서 할매를 부르도 못하고 요렇게 손을 잡고 왔잖아요. 할매 부르도 못하고. 입이 안 떨어져서.

어쩌기는. 막 울고불고 난리지. 울고불고하면서도 누구한테 한탄할 거요? 천불 나게 방으로 떼매고 들어 와서는 그날 저녁에 두루마기 입히는 것도 보고 그랬는데. 널(관)도 없이, 그냥 뭔 대(竹)로 했는가 뭐로 했는가 해서 바릿대에 담아가꼬 해서 새벽에 작은아버지가 지고 가서 묻었는갑서. 우리 밭에다 묻었는데 그래도 자리가 괜찮았었는가 봐. 제삿날은 음력으로 구월 스무 닷새 날이여.

10월 24일 14연대 군인이 문수리로 들어오고, 28일 진압군인이 들이닥치고, 그 다음날 바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죽음의 원인이 생기고, 결과가 맺어지기까지의 시간이나 과정, 죽음의 절차 등은 터무니없이 갑작스러웠다. 10살의 나는 그 해일 같이 덮친 일들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아버지 보낸 상처는 아물 겨를도 없이 또 다른 화를 입으며 덧나기만 했다. 나는 아직도 그 어린 날의 내가 가엾다.

아버지 가시고 나서 바로 그 군인들이 집을 싹 다 불을 대버렸어. 네 집 내 집 할 것 없이. 말도 못 했지. 온 동네 집 하나도 없이 다 태워버렸어. 온 동네 싹 태워버리니까 어쩌도 못해.

만사에 건질 것도 없어. 뭐 나락 이만치라도 갖고 온 사람, 쌀 이만치라도 갖고 온 사람. 우선에 먹을 양식이나 건질까 딴 것은 건지지도 못해, 바가지 남시랭이도 건지지 못해. 불이 붙었는디 언제 어디 가서 뭣을 해. 안 죽을랑께 들어가도 못하고. 싹 꼬실라 버렸어. 하나도 없이. 그래 할 수 없이 여기 오미리로 내려와 남의 작은 방으로, 남이 사는 집에 가서 살고 그랬지. 상죽에서 내려와서 남의 집 접방살이 할 때 고생을 많이 했지. 눈치 보고. 이제 요 집에서 나가라 하면 저 집으로 가고, 한 댓 번 이사 다녔어.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을 논배미 가득 세워놓고 저 하늘로 총을 팡팡 쏘면서 으름장을 놓던 때. 처녀들은 무서움에 떨며 댕기를 말아올려 비녀를 꼽아 낭자머리를 하고 나갔다. 결혼한 것처럼 보이려고 했고, 검댕을 묻히고 나가기도 했다. 산중 사람이든, 산 밑, 들에 사는 사람이든 언제라도 죽음과 옷깃을 스쳤다. 누구는 먼 지역 형무소에 갇히고, 무더기 무더기로 양정이 강변에서 죽었다고 하고. 가족이 산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학교에 불려 나가 고문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 가족의 견뎌냄은 좀 수월했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일이 터지자마자 황망하게 떠나버리셨기에 남은 가족에게 그와 관련한 시달림은 덜 했다.

삽화-이이룸

내 삶에 드리워진 그늘

그러나 가장인 아버지 없이 늙으신 할머니와 2남 2녀를 낳고도 아들 하나 없이 못난 딸인 나 혼자와만 남겨진 어머니가 가정을 꾸리는 것은 그 자체로 지속되는 형벌이었다. 무엇보다 그때는 아들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할머니는 서둘러 5남매 중 첫째였던 아버지 밑으로 작은집 쪽에서 양자를 들였다. 그러고 몇 해 안 되어 할 일을 다 하셨다는 듯 할머니는 세상을 뜨셨다. 할머니 그늘마저 없어지자 우리 모녀는 문중에서도 설 자리를 잃었다. 아버지 남기신 땅뙈기며 재산은 다 양자에게 권한이 넘어갔다.

아들이 없어 더 서러웠을 어머니는 결국 세상이 좀 조용해진 4, 5년 뒤 재혼하셨다.

나라가 조용해졌을 때. 내가 열댓 살쯤 되었을까. 한참 뒤에 살다 살다 못사니까 가는 거여. 엄마가 너무 가슴 아프게 살았어. 엄마도 머이마 둘이 중에서 하나만 살았어도 (재가) 안 가고 잘 살았을 것인디, 근디 싹 가고(죽고) 나 혼자만 똑 떨어졌응께로 엄마가 갔지.(재혼했지) 시방 같으면 살림이 욕심나서도 안 가지만. 근디 전에는 살림이고 뭐고 가드라고.

나는 할매가 살아계셨으면 할매하고 살았으면 좋지. 근디 할머니 가셔버리고, 나보고 그 양자들 집 가서 살라는데 안 갔어. 엄마를 따라가서 살았지. (다음 호에 계속)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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