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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 소설 <산그늘에 묻은 말들>5기획 연재 3 – 여순10·19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기원
송은정 작가 (문학박사)

새아버지한테는 첫 부인도 없고, 아들딸도 없었어. 나는 거기서 굽실굽실항께 미움은 안 받았지. 글고 나중에 엄마한테서 태어난 아기 봐주고 했으니까. 내가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가고 그래도 된디, 바보같이 갈지를 몰라가꼬 안 배웠지. 나는 바보같이 공부도 안 하고, 맨날 일만 하고 살았잖아요.

나도 18살이 되어 결혼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중매로 신랑이 좋은가 나쁜가도 모른 채 만났다. 키도 크고 훤칠하니 좋게 생겼고, 순천 매산고등학교까지 나온 사람이었다. 면장, 군수도 할만하건만 그 양반은 귀하게 자라서 농사며, 일을 못했다. 나도 혼자라 귀하게 커서 일이 서툴렀지만, 8남매 중 첫째에게 시집가 그 살림을 홀로 꾸려나갔다. 층층시하 시댁 식구들 틈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일에 치였다.

남편 가슴에서 돋는 화는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술에 기댄 채 무기력하게 내 시선을 피해갔다. 마당 가득 타작할 보리가 쌓여있을 때도 골방에서 술잔을 들이키는 남편 대신 어린 자식들 조막손이 일을 거들었다. 남편을 이해하려 애썼다. 시대가 그랬으니 뜻이 높아도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누구나 가슴에 땅땅 뭉쳐진 화덩어리들이 휘돌아 다녔고, 배앓이를 다스리듯 술이나 담배로라도 통증들을 달래놓아야 했다. 그래도 삭이지 못한 것들은 가슴 무덤에 천근의 무게로 봉분을 돋워갔다. 하나도 삭혀지지 못한 채 고스란히 박힌 것은 자식의 죽음이었다.

엄마가 그 집 가서 아들만 셋을 낳았어. 또 그 집에서도 애 하나가, 막둥이가 죽어버렸어. 그전에는 애들이 많이 죽었어. 누구든지 딴 사람도. 약을 못쓰니 죽어버려.

그 아들딸 보낸 가슴은 누가 몰라.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 아무도 몰라. 나도 몰랐어. 우리 막둥이 보내고 나서야 알재. 나도 몰랐어.

여순사건 신청도 우리 막둥이 아들이 했거든, 저 여수 살면서. 근디 그 우리 막둥이 아들이 하늘나라도 가버렸으니까 갑갑해. 아들 둘, 딸 셋인디 막내가 결혼도 하고 35살 먹었었는데 아파서 죽어버렸어. 긍께 한이 맺혀 죽겠어.

나는 남 앞에서 막 재미있게 있지도 않아. 어린 나이 어린 동생들 잃었지, 아버지 그랬지, 아들 그랬지. 그러니 넘 앞에서 깔깔거릴 일도, 재미있는 일도 없어, 만고에. 만고에 재미있는 일이 없어.

삽화 - 이이룸

가슴 아프게 산 어머니. 그 산중 돌너덜을 맨발로 뛰어다닌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자식 잃은 부끄러움을 내놓고 말할 수 없어 속으로 속으로 곪아갔을 어머니. 그래도 천변댁, 우리 어머니는 영 일도 잘하고, 야물고 당차게 한세상 헤쳐나가셨다.

어머니에 비하면 나는 열에 하나 잘하는 것이 없다. 나는 동생들, 아버지, 자식을 잃어가면서 조금씩 더 바보가 되어갔다. 잊고 살라고, 이젠 지난 일이지 않냐고 쉽게 던지는 말이 내겐 어렵다. 훌훌 털고 웃으라는 말에 가슴이 턱 막힌다. 내 가슴을 짓누르는 돌덩이를 들어내서는 안 되는 일처럼 여기는 나이니, 그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어디에고 하소연해보아야 부질없다는 것만은 알아서 입을 꾹 다물고 살 뿐이다.

아버지 보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우리가 아버지가 있었으면 이렇게 고생 안 하고 살 것인디. 그런 생각 안 했겠어요? 누구라도. 아무리 멍청해도. 지금 애들이 아버지가 없으면 불쌍해 죽겠어. 기가 없고, 첫째는 기가 딱 끊어져 불어. 잘나나 못나나 아버지가 없으면.

그 시대 생각하면 무서워. 그 시절은 또다시 돌아오면 안 돼. 이승만이 나쁘다드만, 이승만이가 싹 계엄령을 내렸다 하데. 지시를 내렸대. 이승만이가 대통령 하면서 그렇게 싹 다 시켰대.

긍께 말이여. 이제 와서 가슴 안 아프게 할 수가 없제, 인제 가슴 아파도 소용없고 어째도 소용없고…….

어머니는 매번 다시 시작하셨다. 생명과 인연을 다한 것들은 쥔 손을 펴서 흘려보낸 듯 보였다. 그리고 새것을 움켜쥐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힘을 내서 걸어 나가셨다. 가슴속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해도 삶의 궤도에서는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셨다. 나도 그렇게 한고비씩 넘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는 자꾸 뒤만 돌아본다. 죽음으로 떠나버린 소중한 이들, 놓아버렸던 것들을 수습해보려 길을 되짚어가며 땅을 더듬는다. (끝)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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