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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상가 터주대감이자 상가 변천사 산 증인”큰 바위 얼굴 – 1 (동남스튜디오 김순철 대표)
정직과 신뢰 삶의 원칙…75세 나이 숫자에 불과 현업 왕성한 활동
사진사는 ‘사’자가 두 개 들어가는 직업…스트레스 없이 자유로워
50년 역사를 지닌 동남스튜디오 김순철(75) 대표는 진남상가 변천사를 대변하는 산증인이자 터주대감이다. <사진 김성환 하트 스튜디오 사진작가. 위 사진을 찍은 김성환 사진작가는 김순철 대표의 둘째 아들이다>

너새니얼 호손이 1850년 발표한 단편 소설 '큰 바위 얼굴' 원제는 ‘Great Stone Face’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동경하는 이야기이다. 1975~1988년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사람을 만나보면 그 사람만의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각자의 삶에서 일터에서 일군 깊은 내공이 담겨 있다. 삶의 곳곳에 숨은 고수들이 있어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들은 부지불식 간에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주위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큰 바위 얼굴’이 되어간다. - 편집자 주

“사진사는 말이야 일반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다른 의사, 검사, 변호사 등 스트레스 받는 ‘사’자 직종과 달리 ‘사’자가 두 개가 들어가는 직업이지. 비록 부자가 되는 직업은 아니지만 정직과 신뢰를 무기로 스트레스 없이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어 좋아”

여수시 중앙동에 위치한 동남스튜디오(대표 김순철)는 진남상가를 대표하는 터주대감이다. 수많은 자영업자가 이곳에 정착하고 떠나기를 반복했지만 꿋꿋하게 이곳을 지켜온 진남상가 변천사의 산 증인이다. 사진관 입구에 이용주 전 국회의원 인물사진이 내걸려 있다. 이를 알아본 방문객이 슬쩍 곁눈질한다.

동남스튜디오는 지난 8월 8일 개업 50주년 뜻깊은 날을 맞이했다. 참 오랜 세월이다. 그는 보릿고개 시절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지인의 소개로 전남 순천 동남사진기공업사에 취업한 것이 사진과 인연이 됐다.

김순철 대표가 사진과의 인연이 된 전남 순천 동남사진기공업사가 제작했던 당시 목형 대중판사진기를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성환 사진작가

당시 동남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기 제조사였다. 1952년 설립된 동남사진기공업사(창업자 김철우)는 우리나라 최초로 목형 대중판사진기(4x6인치 이상의 필름을 사용하는 대형카메라)를 제작했다. 동남사진기는 야외출사, 스튜디오에서 증명사진, 약혼 결혼, 회갑, 졸업 등을 촬영하는 대형카메라(뷰카메라)였다.

월남전쟁에 맹호사단 통신중대 사진병과로 참전해 28개월간을 복무했다. 월남에서 모은 종잣돈으로 1972년 8월 8일 사진 재료 도매 및 카메라를 판매하는 3~4평 남짓 ‘동남카메라’를 개업했다. 판매사업에 수완을 발휘하자 주변의 시기·질투가 뒤따르기도 했다.

90년대 웨딩포토, 가족사진 붐이 일자 트렌드를 쫓아 1992년 ‘동남스튜디오’로 상호를 바꾸게 된다. 잘 나갈 때에는 직원 8명을 거느릴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제 동남스튜디오를 거쳐 간 직원들이 독립해 여수지역에서 스튜디오를 개업해 운영하고 있다.

올해 75세인 그는 여전히 현업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매일같이 오전 8시 출근해 직원 2명이 도착하기 전 스튜디오를 청소하고 저녁 8시 무렵 퇴근한다. 비록 현재 2명의 직원들이지만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배려가 몸에 배였다.

지난 1972년 8월 8일 개업한 동남카메라는 1992년 1차례 동남스튜디오로 상호를 변경하고 50주년을 맞이했다. 김순철 대표가 자신의 동남스트디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성환 사진작가>

“50년을 돌아보니까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고 내 자신에게 토닥거려......정직과 신뢰를 운영의 철칙으로 삼았다. 설령 돈을 떼이는 경우가 있더라도 원칙을 유지하려 애를 썼지. 덕분에 세 아들을 잘 키워냈고 지금도 현업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돼 다행스러워”

자연스럽게 화제가 건강비결로 넘어갔다. “만병의 원인은 스트레스야. 건강한 삶을 위한 건강비결이라면 스트레스 받지 않고 더불어 함께 베풀고 맘 편히 사는거야. 술, 담배는 여지껏 모르고 살았지. 선천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건강한 유전자를 선물 받았나봐. 위로 형님 3분이 여전히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네”

“사실 내 혈액형이 A형인지 B형인지 잘 몰라. 내가 국민학교 4학년 혈액형 검사를 끝으로 아직까지 병원에 가본 적도 입원한 적도 없어” 한 술 더 떠 ‘건강검진도 안 받아봤다’는 얘기에 기자는 이를 믿어야할 지 말아야할 지 순간 당혹스러웠다. 지난해 병원을 들락거렸던 내 자신이 초라해졌다.

옆에 앉아 아버지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열심히 담는 둘째 아들이 ‘저는 B형’이라고 대꾸한다. 김 대표는 아들 셋을 뒀다. 첫째는 성형외과 의사, 둘째 셋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진과 인연을 맺어 가업을 잇고 있다.

둘째 관련 재미난 일화를 언급한다. 25년 전 고3이었던 둘째가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 날 밤 순천에 있는 아들을 찾아 사진사라는 직업을 적극 권유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뜻에 따라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 진학한 아들이 고마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정직하게 열심히 살면 길이 있다”고 아들에게 당부했다.

조카 사위 김회재 의원(여수을)을 향해 “줄곧 지켜봤지만 참 양심적인 사람이야, 매주 여수를 위해 헌신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어. 최근 국민권익위가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을 제기하고 민주당 지도부가 확인도 않고 탈당조치를 내린 것 같아 안타까워. 빠른 시일 내 잘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동남스튜디오에도 코로나19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코로나19가 빨리 안정될 것 같았는데 예상치를 벗어나 오래 지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늘 그래왔듯 편안한 맘으로 그는 80세까지 스튜디오를 운영해볼 심산이다.

“막상 집에 있으면 힘들 것 같더라. 형님, 선배들도 건강이 뒤따라주면 일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따를 예정이다” 건강이 닿는다면 더할 수 있다는 의욕을 내비쳤다. 

김병곤 기자  bibongsan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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