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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재생과 기록의 확인을 통한 진상규명특별기고 - 여순사건특별법 시행의 지향점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민주주의 발전의 견인할 여순사건특별법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취재한 동아일보 김충근 기자는 “만행, 폭거, 무차별 공격 등의 단어로는 너무나 밋밋해, 궁여지책으로 떠올린 단어는 ‘인간사냥’이었다”고 실토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참극이 일어나기 30여 년 전에 ‘여수·순천 10·19’와 더 나아가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시기에는 그보다 몇 십, 몇 백 배 규모의 학살이 있었다. 그 학살은 동족간에 벌어진 것들로 적대세력으로 치부되는 가해 측뿐 아니라 자국의 군경에 의한 희생자 수가 현저히 더 많았다.

<전쟁과 사회>의 저자 김동춘은 이러한 학살사건에 대한 역사적 진상규명과 책임자의 법적, 정치적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30년 뒤에 또 다시 광주5·18 때와 같은 인간사냥이 재발했다고 보면서 역사에 대한 망각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역사로 되풀이될 수 있는지 경고한 바 있다. 특별법을 통한 역사의 진상 규명은 기억하고 반성하면서 좀 더 나은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과 변화될 삶의 형태를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가해 권력의 가시화

‘인간사냥’.

사냥꾼이었던 제복 입은 자들은 집을 불태우면서 주민들을 쫓아내고, 마을 사람 모두를 마을 어귀에 모아 무릎을 꿇리고 매질을 멈추지 않았으며 젊은 남자들을 굴비처럼 엮어 산으로, 골짜기로, 다리 밑으로 몰아가서 집단학살했다. 시신을 암매장하고, 수장하고, 불에 태웠다.

이후 완장 찬 이들은 반동분자는 씨를 말려야한다며 일가족은 물론 가문의 몇 십 명을 죽창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그 와중에 땅이나 일구며 살던 사람들은 그저 살려고 지인의 이름을 불었고, 이웃 면전에 손가락질을 했다. 나중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치솟아 모략질도 서슴지 않았고, 보복을 위해 살해도 마다하지 않는 존재로 타락했다.

그런데 문제는 73년이 지나면서 군작전의 일환으로 수행된, 공식성을 지녔던 학살에 대한 정신적 상처는 좀 더 쉽게 지워버리는 반면에, 사적인 성격의 모략질, 개인적 복수를 통한 원한은 더 강화된다는 것이다. 또한 반공주의라는 초월적,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세뇌를 통해 단죄해야 할 가해자는 은폐되거나 왜곡되어버렸다.

특별법을 통한 진상규명은 표면적인 대립의 각들을 찾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근원적 폭력을 밝혀야 한다. 표면적인 밀고자와 가해자의 일시적 과오 혹은 타락을 어쩔 수 없었다고 덮어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촌부에 지나지 않았던 많은 민중을 증오와 원한의 격투장으로 몰아넣은 더 근원적인 가해세력을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를 증명할 명확한 자료와 기록들을 꼼꼼하게 찾아내어 세밀하게 재구성하는 것은 앞으로 구성될 위원회에서 수행할 주된 업무가 될 것이다.

참혹한 역사 속 가해 주체와 그들이 폭력과 학살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를 밝히는 것은 앞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폭력적 권력 야욕과 부당한 정권의 야만성, 인간의 타락에 경종을 울리며 민주적인 사회를 견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송은정 작가는 여순 10.19 유족들을 만나 뵙고 아픈 상처를 덧내는 것이지만 증언채록을 통해 원한의 감정, 슬픔의 비극적 정서를 시원하게 풀어내는 일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송은정 작가가 직접 증언채록을 위해 만난 유족들.

체험·기억의 서사와 기록·통계를 통한 진실규명

‘여수·순천 10·19’를 비롯한 ‘한국전쟁’ 전후에 자행된 민간인 학살은 조직적 은폐와 강요된 망각의 방식으로도 압제받아왔다. 이런 사실을 들추어내는 것 자체를 반국가적인 행동으로 여겨 탄압해 왔기 때문에, 사실을 알고 있는 당사자는 생존을 위해 침묵하였으며, 좌익 혐의를 받지 않으려고 선거 때마다 계속 여당만을 지지한 지역도 있다. 연좌제의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생존자나 유족들은 자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몸에 새겨진 충격적이고, 처절한 체험과 앎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상기될 수 있다. 체험자를 통해 전해진 말들 속에 새겨진 감정들도 전해들은 이를 통해 재생될 수 있다. 침묵의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었던 압제받은 기억을 되살려야만 역사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다. 70여 년이 지나 어렵다 해도 작은 실마리를 잡고 가닥을 붙잡아 가면 풀어질 수 있다.

채록 현장에서 만난 당시 20살 안팎이었던 한 증언자는 눈 쌓인 깊은 골짜기에서 밀고자가 선심 쓰듯 나눠줬던, 토벌대에게 보내는 신호가 되었던 담배연기의 쌉스래한 맛과 골짜기에 울리던 첫 총소리를 통해 어떤 무기였는지 가늠하던 순간, 쏟아지는 총탄에 복부를 맞아 창자를 쏟고 죽어가는 동료가 부르짖던 “아이고, 엄니” 소리, 발에 총을 맞고 골짜기를 구를 때 눈밭에 새겨지던 선명한 핏자국과 그 핏자국을 덮으며 쌓이던 눈을 하나하나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 구술의 구비구비는 절대 생략될 수 없는 것들이어서 이틀에 거쳐 듣고서야 사건 전말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였다.

또 9살이었던 소년이 직접 경험했던 것들, 거기에 할머니의 한서린 이야기로 전해진 기억들은 73년이 지났지만, 마치 지금 그 자신이 그 속에서 겪고 있듯이 진저리를 치며 재생되었다. 그 구술 속에서 그는 외할머니에게 원수의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던 9살 어린아이였고, 아이를 업고 행상 보따리를 이고 해가 뉘엿 넘어갈 때야 집으로 돌아오던 어머니이기도 했으며, 겨울에도 윗저고리를 풀어헤치고 문을 열어 심호흡을 해야 할 만큼 가슴에 불을 지닌 할머니이기도 했다. 격렬하게 몸에 새겨진 기억은 잊히기 어려운 법이다. 소중한 역사규명의 근거들로 활용되어야 할 것들이다.

더불어 여러 기관들에 남아 있는 기록과 수치, 통계들을 분석해야 한다. 어른인, 아니 현대인은 숫자를 통해 객관적인 사실을 분명하게 실감한다. 희생자들의 긴 명단, 한 집안에서 죽어간 희생자들의 이름이 페이지를 넘기며 이어지는 것을 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굳이 사건의 개요를 읽어보지 않아도 그 죽음의 숫자만으로도 참혹한 실상에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사적기록이든 공적이거나 비밀 문건이든 기록물들을 통해 사건을 정확하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제적등본이나 족보를 비교하고 확인하며, 예전 보다 접근이 좀 더 용이해진 국가기록물들, 경찰 조사 기록과 군 작전일지, 재판 기록, 미군 문서 등을 참고해야 한다. 기억이 흐릿하거나 전무하기도 한 유족들의 진실규명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여순사건위원회 측의 조사 활동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화해와 화합을 위한 진실 규명

인간인데 어찌 가족을 죽인 원수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원한을 지울 수 있겠는가? 가문의 자랑이었던, 많이 배우고, 생각이 바르고, 심성이 고왔다는, 그 많은 칭찬을 한몸에 받던 사람이었지만, 그 때문에 멸문지화를 입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 버렸다면, 친인척이라 해도 어찌 그를 원망하지 않겠는가? 누군가의 말 한마디, 손가락질 한 번에 일생의 궤도 자체가 어긋나서 고생스럽고 서러웠는데, 그 누군가 혹은 가해자는 여전히 세도를 부리며 산다면 하늘이 무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살기 위해 가해자로 전락한 이들도 있고, 더 큰 테두리 안에서는 그들도 똑같은 피해자로 보아야 한다.

때문에 국민화합을 위한 여순특별법과 위원회 활동이라는 것은 서로를 적으로 몰아가게 한 더 근원적인 구조 안에서의 가해세력을 명료화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가해 세력, 폭력의 형태가 무엇이었는지,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현재까지도 문제적인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 단죄해야 할 폭력의 본질을 분명히 하는 것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지점을 분명히 하고, 바로 세워야 할 정의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슴에 남긴 앙금이 풀려야 화합과 소통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그 죄값을 치뤄야 하며, 피해자에게는 그동안의 피해에 대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 73년이 지났고, 그 희생 당사자들이 몇 남아있지 않다 해도 이 과정은 꼭 필요하다.

이청준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알레고리화 한 소설 <벌레 이야기>를 이창동 감독이 각색, 연출한 영화 <밀양>의 마지막 장면은 불가능할 것 같은 용서가 가능할 수 있는 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도연이 소설 속 알암엄마 역을 맡아 2007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것이다. 자기 자식을 유괴해 죽인 죄인이 잡혔는데, 감옥에서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자 알암엄마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자식을 죽인 용서할 수 없는 살인자이지만 신의 말씀으로 상징화된 절대적 규범은, 그것을 무조건 용서하라고 한다. 심지어 자신은 용서하지 않았는데, 자신을 초월한 존재자에 의해 이미 그 살인자는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섭리 안에서 예정된 일이니 그저 순종하라는 것인데 소설 속 알암엄마는 그런 섭리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알암엄마의 자살 시도가 미수에 그치고, 병원에서 퇴원하게 되는 날 미장원에 들렀다가 살인자의 딸과 마주치게 된다. 알암엄마는 살인자의 딸이 학교 진학을 못하고, 소년원을 거쳐 미장원에서 보조로 일하는 삶의 질곡 속에서 어쩌면 그 아비의 죗값을 대신 치르고 있음을, 또 그 딸이 그녀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방식의 사죄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전도연은 미장원에서 살인자의 딸이 머리카락을 반만큼 잘랐는데 뛰쳐나와 버리고,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며 남은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른다. 즉 국가에 의한 폭력이든, 부당한 권력에 의한 학살이든 사랑하는 이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존재에 대한 진정한 용서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가해자가 자신의 죄를 고하고, 그 죗값을 치르고, 용서를 구할 때 피해자는 그 불가능한 용서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해세력과 희생자를 나눠 언급하는 것이 갈등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읽혀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경찰과 군인, 한청대, 대한청년회 등 우익 단체와 봉기군, 빨치산, 지방 좌익 등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편의상으로라도 분명 양편으로 나눠 조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사상을 앞세운 전쟁과도 같은 정치적 셈법 속에서 불법 부당하게 자행된 폭력의 실체와 그 속성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고, 그를 통해 우리끼리의 싸움이 아닌 앞으로도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부당한 권력과 폭력에 힘을 합쳐 대항하기 위함이다.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는 군 작전 과정에, 계엄령 아래에서 이루어진 군의 ‘즉결처분권’은 법의 일반적 요건이나 정당성을 결여했다고 결정했다. 그것은 사실상 민간인을 학살한 제노사이드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역사는 되풀이 될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납득할 수 없지만, 분명 현재도 아프카니스탄에서는 참상이 진행 중이듯 언제든지 이 같은 반인륜적 폭력이 우리를 덮칠 수 있다. 때문에 아픈 역사를 바탕으로 한 성찰과 각성은 인간의 긍정적 진보에 필수적이다.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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