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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자리송은정 문학소설 2

대대포구의 물안개는 갯내가 섞인 채 꿈꿈하게 몸으로 스몄다. 안개는 갯바닥으로 흘러든 가장 작게 부스러진 온갖 것들을 자양분 삼은 갈대잎에도 짠 이슬로 맺혔다. 마을 쪽에서 끼니때면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와 만난 안개는 피오르지 않고, 늘 눈앞 어딘가를 희부연히 떠 다녔다. 그 안개 속에서, 짜게 억세진 갈대 잎은 걸핏하면 어딘가를 스치며 쓰리게했다.

도사면까지 한참을 걸어나가 학교를 다녔다. 갯벌을 드러내며 바닷물이 저만큼 물러나 아련해지는 것을 보면서 걷다보면 동천의 민물 냄새가 났다. 줄을 맞춘 책상에 규율대로 움직이고, 한목소리로 대답하는 학교생활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질척한 뻘밭에 구불한 길을 내며 힘겹게 포구를 지나 바다로 나아가는 규칙없는 흐름도 맘에 차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선 여기에 열중하고, 저기선 저기에 맞게 행동했지만, 늘 조금씩은 불만스럽고, 불안정했고, 어설펐다.

정미소며 논 스물 댓 마지기를 부리는 부모가 뭔가 부정한 것과 모정의 결탁을 한 건 아닌가 의심을 갖기도 했고, 아직도 동생이 태어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불퉁한 내게 시집갈 나이가 되어서 그런다는 한동네 고모 말에는 눈을 흘겼지만, 어딘가로 간다면 좀 나아질 것도 같았다. 이 안개 포구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에 솔깃하기도 했다.

마침 어머니의 소신이란 것이, 이곳을 떠나봤으면 하는 나도 미처 몰랐던 내 맘을 좀 더 분명하게 깨닫게 했다. 어머니는 내가 이 대대마을을 떠나길 바라셨다. 첫딸이 시집을 어디로 가느냐가 동생들 혼처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으니 농사일에 갯일까지 해야 하는 이 촌을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셨다.

 

나를 적셔 가라앉히는 안개에서 건져줄 수 있는 혼례라면 나는 좋았다. 게다가 나의 지아비는 양복기술자란다. 그가 정미소집 큰사위가 될 수 있었던 조건이었으며, 내 마음이 쉽게 열린 이유이기도 했다. 아름답고 유용한 무언가를 지어내는 사람과 연을 맺고, 떠나고, 새로 시작한다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나는 지아비를 보기도 전에 지아비가 좋았다.

 

양복기술자인 지아비는 도사면의 대룡마을 사람이었다. 대룡마을에서 동학당으로 일제의 눈을 피해 용케 살아남으셨다가 점심 밥상 물리신 후 물 한 그릇 떠오는 사이에 앉아서 주무시듯 가셨다는 어르신이 지아비의 할아버지였다. 지아비의 아버지는 철든 이후 독립투사들을 따라 떠돌았다고 한다. 장돌뱅이 장사치로 알려졌던 그분은 어느 해 집으로 돌아와 자식 도리를 한다고 늦은 혼사를 치렀다. 부인 배가 불러오고, 아들이 태어난 후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시아버지는 훌쩍 다시 집을 나갔고, 그 자식이 돌이 되던 무렵 주검으로 돌아왔단다.

시어머니는 삼 년이 지난 후 아들 못 낳는 집에 재취자리로 재가해 갔고, 내 지아비는 그 후로 10여년을 대룡 할머니에게 맡겨져 자랐다. 그러다 심부름이라도 할 나이가 되자 어머니가 계시는 순천 매곡동 북정리로 떠났다. 벽돌공장을 하던 그이의 계부는 이미 쭈그렁허니 쫄아들어 힘을 못 썼기 때문에 지아비는 그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일손을 거들었단다. 그래도 그의 어머니가 힘을 써서 몇 년 전부터 양복기술을 배우러 다닐 수 있었고, 혼례를 치르던 열아홉 나이에는 작은 양복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혼례를 치르고도, 각자의 집에서 1년 해를 묵히는 동안 그는 모내기철이면 못줄을 잡아주러 왔고, 추수할 때는 타작을 도우러 우리 집을 찾아오곤 했다. 못줄 잡아주는 일보다 우리집 사람들은 그이의 양복기술에 더 기댔기 때문에 그가 처가에 오는 날이면 밤새 재봉 일을 해야 했다. 다음날 늘어진 이십 리 길을 걸어서 양복점에 늦게 출근했다가 혼쭐이 났다고도 했다.

식구들은 그의 기술을 자랑스러워했고, 해를 묵히는 동안 우리를 위한 집 한 채를 지어주기로 했다. 시어머니 계신 곳 근처인 순천북국민학교 앞에 들어설 양복점을 겸한 살림집이었다. 지아비는 나중에 내게 말했다. 양복점 일이 끝나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집짓기에 열심이었는지에 대해서. 우리의 집이, 둘만의 방이 생긴다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단다. 나는 그 말에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숨이 잘 안 쉬어지기도 했다.<다음호에 계속>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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