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정 작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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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아비와 200일에서 일주일이 모자란 동안을 함께 살았다.

꿈같은 세월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둘만의 방을 가지고 있던 그때도 나는 늘 지아비가 그리웠다. 지아비는 살림집 곁에서 양복점을 했지만, 나는 아침에 눈 뜨면 동네 우물에 가서 물길러 오고, 아궁이에 불 때고, 들녘과 뒷산 언저리에서 땔감을 구해오고……. 한시도 그에게서 눈을 떼고 싶지 않았지만 하루하루는 늘 부산했고, 매 순간 그의 얼굴을 못 봐 아쉬웠다.

사람 사이가 그렇게 살가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그처럼 다정한 눈길로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몸과 마음의 거리를 지을 수 있는 존재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이 과분해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겁이 났다.

내가 겁보라는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며 살아왔다. 겁낼 일이 아니라 기뻐하며 누리면 되는 것을 겁내 했다는 사실을.

내가 이렇게 예쁜 사람으로 여겨질 만한 것인가, 부족한 나를 정말로 좋아해 주는 것이 맞는가 싶어 행복함을 맘껏 표현하지 못했다. 너무 감사했고, 그럴수록 조심했다.

"그러면 좀 어뗘."

내가 겁내고 주저할 때마다 그이는 이렇게 가볍게 말해줬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의 집에서 산 지 두 달이 되던 어느 날 밤,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살림집이 아닌 양복점 쪽 벽을 뚫고, 논 두 마지기 값인 재봉틀을 훔쳐갔다. 해방 후로 삼 년째 물가가 천정부지로 솟고, 흉년이 이어지고 있던 때였다. 아직 인근에 집도 띄엄띄엄 있는 한적한 곳이었고, 당시만 해도 드문 양복점이 그런 곳에 있었으니 도둑이 들만도 했다.

도둑은 그 집에서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서, 그것을 훔쳐 간다. 딱 그런 것들을 잃게 되는 법이다.

지아비는 놀란 나를 달래며, 도둑을 잡기 위해 지서를 찾아가고 여기저기 일을 보러 다녔다.

"가만히 안 있겠어. 내 꼭 잡아낼 것이여!“

그런 지아비를 보면서 나는 도둑맞았다는 사실은 잊고, 피식피식 웃었다. '그럼 좀 어뗘.' 라는 그의 말을 떠올리면서. 우리의 일에 열성인 지아비가 그렇게 의젓하고 믿음직스럽지 않을 수 없었지만,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스무 살 지아비가 그토록 내게 어른 역할을 하는 것도 새삼스러워 자꾸 웃음이 번졌다.

"내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지아비가 맞네.“

나는 어느새 그쯤 일은 잊고, 지아비 어깨가 들썩일 소리를 했다.

친정 도움을 받아 새 재봉틀을 들였다.

나는 좋은 무언가를 잃어봐서 조금 더 겁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더 조심하려 했다. 지아비는 반대였다. 힘이 더 세진 것 같았다. 목소리도 커지고, 더 성큼성큼 걸었고, 멀리까지 나다녔다. 도둑을 잡아달라는 말에 콧방귀만 날린 경찰들을 믿을 수가 없다고 화를 냈다.

나도 변했어야 했다. 열아홉 살이지만 머리를 올렸으니 조금 더 어른이 되었어야 했다. 그래서 지아비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귀 기울이고, 함께여야 했다. 그랬다면 그를 그렇게…….<다음회에 계속>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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