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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자리 -4송은정 작가 문학소설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총소리 같은디.“

아침을 지어 먹고, 지아비가 양복점에서 웃옷 마름질 하나를 끝낸 오전이었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놀라 양복점으로 뛰어 들어가니 그이는 그것이 총소리라고 했다.

"해방되고, 새로운 나라도 세워졌는데, 뭔 난리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여,“

지아비는 무심한 듯 마름질을 계속하면서 나라 돌아가는 것이 심상치 않더니 기어이 뭔 일이 터진 것 같다고 중얼댔다.

"잠깐 나가서 뭔 일인지 보고 올게.“

총소리가 더 심해지자 그는 못 참겠는지 주섬주섬 옷을 걸쳤다. 불안해하는 나를 달래듯 그이는 부드럽게 말했다.

"문 꼭 걸어 잠그고 나오지 말고 있으소. 얼른 갔다 올게."

나는 지아비 말대로 기다렸다.

지아비가 말한 얼른이란 시간이 그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감이 뚝뚝 떨어지고, 감잎이 날리는 사이 해는 금방 떨어졌다. 계절이 깊어지는 만큼 바람은 서늘해져 있었다. 그래도 온기를 나누던 지아비는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다.

다음날부터 북국민학교로 3연대니, 12연대니 하는 군인과 경찰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문을 걸어 잠그고, 물 한 모금 못 넘기고 지아비를 기다렸다. 세상이 다 꺼진 것처럼 불안했고, 겁이 났다. 지아비에게 돌아오라고 한시도 쉬지 않고 맘속으로 간청했다. 천지신명에게 지아비의 안위를 빌며 수없이 많은 약속을 했다. 그이만 돌아오게 해준다면 무슨 일도 다 하겠다고 몸부림을 치면서도 밖으로 나가 지아비를 찾으러 다닐 생각은 못했다.

그의 말을 듣지 말 것을. 평생을 기다리며 고통스러울 줄 알았더라면 그처럼 죽은 듯 기다리고만 있지 말 것을. 아니 그 전에 말렸어야 했던 것을.

그저 그렇게 나가서 끝이었다.

어쩌면 그의 끝은 내가 아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겐 그렇게 허망한 순간 뒤로 우리의 다음이 없었다. 우리의 방에서 함께 지낸 날이 200일도 채 되지 않은 1948년 10월 20일의 일이었다. 그렇게 끝이 쉬울 수는 없는데…….

재봉틀 머리를 들어낸다. 벌벌 떨리는 손이 무거워져 숨을 몇 번씩 몰아쉰다.

삼 일을 꼬박 그렇게 기다린 다음이었다. 지아비 없는 집이란 내게 너무 휑했다. 그를 더 잘 기다리기 위해서는 그곳을 떠나야 했다. 그이에게 소중할 재봉틀을 두고갈 수는 없다. 또 잃어버려선 안 됐다. 우리의 삶을 유지할 재봉틀이기도 하다.

아직 그이가 사랑땜도 제대로 못한 반짝이는 재봉틀이 너무 무겁다. 나무 함지박에 넣고, 똬리를 도톰히 해 머리에 인다. 고개도, 허리도 펴기 힘들게 몸을 짓누른다.

계엄령이란 것이 내려진 순천 곳곳엔 군모와 어깨에 흰띠를 두른 군인들이 열 지어 지나다닌다. 길가의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그 와중에 고개를 쳐들고 나무 함지박을 이고 대대포구를 향하는 걸음은 자꾸 후들거린다.

재봉틀 머리에 이고 친정으로 향하는 길은 더 늘어지고 늘어져 가도 가도 그 반가울 안개포구가 나오지 않는다.

친정에서 지아비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가 얼마나 내 지아비에 대해 모르고 있는가를 수없이 확인해야 했다.

지서에서 경찰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라진 지아비가 어디 있는지 찾아내라는 것이다. 지아비에 대해 아는 대로 다 불란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고, 내가 찾아달라고 애원해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그들에겐 그것에 대해 가장 잘 답할 사람이 나였다.

"살 섞고 산 지아비가 어디서 뭔 일을 하고 다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돼?"

눈물부터 터진다. 그이는 내 지아비 역할을 다 해주려 했는데, 나는 도대체 아는 것, 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만 같았다. 내가 알던 사람이 진짜 내 지아비인가도 싶었다.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내 지아비이고, 설령 내가 모르는 지아비의 어떤 것이 있다 해도, 나는 모르고서도 그를 온전히 감싸 안은 사람이다. 저놈들 말에 흔들리면 지는 것이다.

지아비가 재봉틀을 도둑맞고 왜 그토록 경찰들에게 화를 냈는지 이해가 되었다. 순사였던 때부터 그들은 우리의 편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들어주거나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심문자요, 고문자요, 집행자였다.

나는 지서에 끌려가 당해주는 것이 마땅한 일처럼 여겨졌고,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지아비는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이 맞으니까 이럴 테지 싶었다. 친정에서는 매번 만신창이가 된 나를 되찾아오는데 많은 힘을 써야 했다.

그들 말처럼 지아비가 14연대 군인들 따라 산으로 딸려 들어갔다 해도 처가로는 숨어들지 못할 것이다. 대대포구 근처인 우리 마을에는 몸을 숨길 높은 산등성이 하나 없으니까.

기진개가 갯벌에 붉게 퍼지며 불길함을 더해간다.

오직 살아있어 달라는 기원만 주문처럼 외우며 그리움을 견디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죽은 듯이 누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지냈다.

붉던 기진개가 말라 버석거리며 해를 넘기고 있었다. 이젠 좀 잠잠해지려나 싶던 정월에 또다시 도사지서에서 경찰이 찾아왔다. 연행할 때마다 둘이 같이 다니던 것과 달리 그날은 눈자위에 그늘이 진 젊은 경찰 혼자였다. 아직 오후라지만 이미 해가 뉘엿하니 져갈 때였다. 물어볼 것이 있으니 따라나서라는 것이다. 부모님과 동네 일가들에게 도움을 청할 겨를도 없이 끌려나갔다.

지난 추석에 양복점 문을 닫고, 해거름에 친정집에 오면서 지아비와 걷던 길이다.

총부리를 겨누며, 검은 눈자위를 벌겋게 물들인 경찰은 급하게 나를 그길로 내몰아 가고 있었다. 해가 금방 떨어져 한기가 더했고, 매서운 겨울바람에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었다. 마을이 시야에서 멀어지고 대밭을 지날 때였다.

"담배 한 개비 피울라는그만. 거기 쪼매 앉소.“

지아비와 함께 달을 바라보던 자리이다. 진저리가 쳐진다.

"그냥 있을 테니, 얼른 피우시오."

추위와 두려움에 이가 덜덜 부딪힌다.

"앉으랑께!"

한바탕 윽박지르며 거칠게 담배에 불을 붙여 한모금 빨아들이더니 내 얼굴에 대고 연기를 내뿜는다. 물러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만다.

"자네, 내 말 좀 들어주소."

갑자기 무슨 작당이라도 하자는 듯 자기 말을 들어주란다.

"내 말을 쪼까 들어줄 수 있겠지?"

"어찌끄나. 내가 뭣을 들어줄 수 있다고 이러요?"

자기 말을 들어줄 수 있느냐고, 이미 내가 그 말을 다 알고 있지 않느냐는 듯 다시 요구했다.

"한 두 번 본 것도 아닌디, 내가 뭘 할랑가 모르겠는가?"

실실거리면서 목소리까지 낮춘다. 몸을 튕기듯 일어나려 했지만, 그놈은 더 빠르게 덮쳐왔다.

"어찌끄나 어찌끄나……"

다른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더러운 것을 떨쳐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친다. 기어서 도망치려는 내 왼쪽 어깨 위로 개머리판이 깨지듯 후려쳐진다.

"이년이 사람을 뭘로 보고!"

뼈가 바스러지는구나 싶은 순간 다시 그 팔을 뒤로 사정없이 젖혀 붙잡는다. 뭔가 뚝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에고, 엄니."

통증에 비명이 절로 나온다. 이런 짓을 당할 순 없다. 절박함에 짐승 같은 소리를 질러댄다. 정작 소리가 되어 뱉어지지도 못한다.

지아비를 떠올린다. 그럴수록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닫히며 비명조차 새어나가지 못한다.

"거기 누구요!"

귀에 익은 소리다. 매일 이른 아침 포구에서 잡아 올린 것들을 순천 아랫장까지 가서 팔아 넘기고, 동네 사람들 심부름 장을 봐다 주는 동네 아재다.

"아재! 아재!"

나는 온힘을 다해 숨을 내뱉으며 아재를 부른다.

"아재는 뭔 넘의 아재! 아무나 네 일가여?"

거친 숨을 몰아대는 경찰이 내 입을 막으려 했고, 나는 맹수처럼 그를 물어뜯었다. 내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몰랐다. 그 짐승 같은 놈도 아직 풋내기 경찰이었던지라 겁이 났는지 생각보다 쉽게 몸을 뺐다.

"두고 보자고! 너, 입조심하고 살아라! 네 남편 감춰뒀다가는 너뿐만이 아니라 너희 집 식구들도 끝장이여! 남편 소식 오면 바로 알려!"

그는 아재 들으라는 듯이, 경찰로서 의무였다는 듯이 큰소리 치며 꽁무니를 뺐다.

이 달뜨기대밭에서 지아비와 함께 했던 달밤이 떠오른다.

한가위를 앞두고 친정에 오던 길이었다.

대대포구에서부터 올라온 안개와 저녁연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달뜨기대밭 댓잎 맞비비는 바람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귀를 채웠다.

뿌연 안개 띠를 두른 마을 위로 개밥바라기별과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지아비가 팔을 뻗어 한걸음 뒤에서 따르던 내 손을 잡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지아비의 손을 잡는 것을 좋아했다. 혼례를 올린 뒤로는 손을 잡으며 온기를 나누는 것은 둘만의 일이어야 했다. 대밭으로 바람이 한차례 밀려오자 그이는 나를 가만히 잡아당겼다. 더 오래, 더 꼬옥 그렇게 안겨있을 것을 그랬다. 남 이목이 무섭다며 서둘러 몸을 풀지 말 것을 그랬다.<다음 회에 계속>

데스크  yeos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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