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송은정 문학칼럼
수선화 자리 (5~7)송은정 작가 문학소설
송은정 작가(문학박사)

5

"소녀, 바람이 보여.“

 

지아비는 순천만 갈대들의 초록물결을 보면서도 내게 속삭였었다. 귓가에 맴도는 그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융단 같던 바람이 지난 이후, 텅 비어 바스락거리는 갈대들로 일어난 마른 바람은 칼끝처럼 나를 생채기내고 있었다.

쫓기던 14연대 군인으로 오랜 동안을 집안 구들장 밑에 숨어 지냈다는 옆 마을 털 덥수룩한 남정네가 찾아왔다. 1950년 대대적인 귀순공작에 따라 자수를 하고선 귀순공작대 일원으로 나다닌다고 했다. 그는 자신은 이제 당당하다는 듯 대문을 밀치고 들어온 기세와 달리 마루에 앉아 한참을 미적거리다 흘리듯 한마디 남기고 나갔다.

 

”진즉 이 세상 사람 아니오. 기다리지 마시오.“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차리기도 전에 실신해 버린다. 이후 나는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바스러져 제대로 아물지 않은 한쪽 팔로, 늘 무엇인가를 놓친다.

 

부모는 딸린 식구 없는 홀애비에게 나를 떠넘겼다.

1948년 10월에 죽은 지아비와의 연줄을 끊어야만 나는 차지하더라도 집안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

 

200여 일을 함께 산 지아비와는 상대가 안 되는 70여 년 세월을 함께 산 남편과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이 생겼다. 그러고 난 언제부터인가 나는 소녀가 아닌 소여라는 이름으로 공부에 올라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소녀(韓少女)이다. 마냥 소녀일 수는 없었으니 한소녀가 아닌 한소여라고 불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래도 내가 소녀가 아닐 수는 없었다. 한글로 호적이 정리되면서 한소여가 되었지만 호적에 한자로 처음 새겨진 한소녀(韓少女)가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이 태어나고부터 더이상 나를 소녀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헛깨비같이 산 세월이 벌써 72년이다.

그이는 돌아오지 않고, 그이가 남긴 재봉틀의 무게만이 나를 짓누르던 세월이다. 그렇게 살아내야 했다. 한소여로라도 살아남아 언젠가는…….

 

6

이제 마칠 때도 되었다. 모든 것을 정리했다. 매일 쓰던 일기랄 것도 없는 두어 줄 일상사를 적는 일도 이제는 그만두기로 한다. 돌아오면 들려주려던 그 없이 산 한소녀의 이야기를…….

요양원으로 들어가서 얼마를 더 연명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고집을 피운다. 요양원 입원 때는 내 이름을 한소녀로 써 달라고.

 

마지막으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그 바람의 골짜기를 다시 찾고 싶었다. 그러나 아흔의 노파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무 살 넘게 차이나는 막내 여동생에게 가만히 부탁해 본다. 자기도 이젠 운전 잘 안 한다며 곤란해했지만, 뜬금없는 연고도 없는 공동묘지 행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의 첫 원행지. 그곳에 활짝 핀 수선화도 심어두고 올 것이다.

 

뜻밖에 그곳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이젠 가지들이 터널을 이룰 만큼 자란 벚꽃들은 극성스럽게 탐스러웠고, 그 아래 쭉 뻗은 도로로 달리는 차들은 미련없이 꽃눈을 짓뭉개고 사라졌다. 도로는 묘지 전체를 휘돌며 이어져 너무 쉽게 우리의 바람의 골짜기를 개방시켜버렸다. 나는 더 둥글게 말린 몸으로 돌아왔지만, 이곳은 뭐든 더 반듯해져 있다. 나비잠이라도 자듯 낮은 동심원으로 퍼진 봉분들은 구획된 길들 사이에서 서로 맨질한 비석과 울긋불긋 조화들을 거느린 채 세를 겨루며 정렬해 있다. 그곳은 죽은 자들의 아파트 같은 형국으로 변해있다.

 

곁이 비어있던 그날의 묘는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가늠했던 곳을 돌고 또 돌았다. 찾지 못한 채 영원히 그곳을 헤매고 다닌 기분이다.

못찾는 것이 당연하다. 드물게 핀 제비꽃, 진달래가 그대로이고, 바람도 그때처럼 옷자락을 날린다는 것, 심지어 까마귀마저도 그대로라는 것이 더 이상할 일이었다.

 

"그 양반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언니, 총기가 떨어졌소? 70년도 전에 진즉 이 세상사람 아니었지 않소?"

"그 양반 죽었다는 통지가 있었냐? 시신을 찾기라도 했냐? 어디 이런 번듯한 묘가 있기를 하냐?"

"만에 하나 천수를 다 누렸다고 해도 아흔이 넘은 지가 언제일 것인데."

"내 맘을 네가 가늠이나 하겠냐……."

"나도 모르는 것은 아니요. 울 바깥양반도 보성에서 그 난리에 아부지를 잃었다지 않소. 요즘 들어 부쩍 아버지 없이 컸던 설움에 겨워 눈물바람입디다. 언니, 아직도 그 형부를 맘으로 기다리요?"

"나는야, 지금이라도 그 양반을 만나게 된다면……."

"만난다 해도 어쩔 것이요? 새 남편에 줄줄이 낳아 기른 자식에, 손주가 몇이요."

"그래도……. 딱 하루만이라도 같이……."

"망령 났네."

 

노란 수선화를 심지 못했다.

 

나는 종종 이곳을 떠올렸다. 더 정확히는 여기 어디쯤에 있었던 비워둔 자리가 부럽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생 이후에도 같이 할 것이라는 약속. 미리 자리를 마련해 두고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온통 그곳을 다 차지하는 존재가 있다. 누군가의 빈 곁은 기다리던 그 존재만이 채울 수 있어서, 어느 누구도, 무엇도 들일 수 없다.

 

7

요양원에서 수선화가 진다. 심지 못한 수선화를 요양원으로 들고 왔고, 수선화는 한참동안 꽃을 피웠다. 꽃은 그대로 말라 떨어지며 졌다. 투명한 유리 주스 병에 한 송이, 한 송이 마른 꽃을 모은다. 이미 생명을 다한 것을 그렇게 붙들어 두는 것이 어리석은 일인 줄 안다. 박제해 둔 아름다운 기억만으로 지금껏 버텨온 내 삶 또한 그럴지 모른다.

 

"바람이 보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았던 지아비이니, 지금껏 비워둔 내 곁의 당신 자리도 차지했겠지. 주름투성이인 지금의 나도 알아봐 주고, 손을 내밀어 주겠지.

그 손을 잡고, 그날처럼 둘만의 방으로 돌아간다.

이제부터 200일을 채워가고, 더 많은 날을 손 꼬옥 잡고 그 곁에 있을 것이다. <끝>

데스크  yeosunews@daum.net

<저작권자 © 여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